“박병호 만나도 쫄지 않아요~”
한화의 에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이태양이 인천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포함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이태양 선수와 인터뷰를 기다리는 동안 구단 홍보 관계자로부터 사전 정보를 입수한 내용 중에 최근 여성 팬들이 엄청 늘었다고 하더라.
“정말 기분 좋다. 2군에 있으면서 ‘언젠가는 나도…’ 하는 마음으로 부러움 대신 오기를 갖고 훈련에 매진했는데, 이제야 겨우 조금 빛을 보는 것 같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 팬들, 기자 분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느낌이 꽤 괜찮다. 주위에선 이런 시선들이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묻던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부담 대신 엔돌핀이 마구 솟는 기분이다. 야구는 잘 하고 볼 일이다(웃음).”
―지난 6월 27일 포항 삼성전에서 8회 117개의 공을 던지고도 9회 등판을 자처했다가 최형우로부터 솔로 홈런을 맞고 내려갔다. 판단을 잘못했던 건가.
“난 투구수가 120개를 넘어도 젊어서 그런지 힘이 떨어지지 않는다. 당시엔 더 던질 힘도, 자신도 있었다. 그리고 기존의 내 투구수를 뛰어 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정민철 코치님께서 만류하셨는데도 더 던지겠다고 말씀드린 것이다.”
―대부분의 투수는 코치나 감독의 지시를 어기지 않는다. 더욱이 1군 경험이 극히 적은 선수라면 그 상황에서 계속 마운드에 올라가겠다고 주장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맞다. 내가 이상한 놈이다. 하지만 내 선택에 대해선 미안함은 있어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미안함은 내 뒤에 올라온 불펜투수들에 대해서다. 9회에도 올라갔으면 홈런 맞지 말고 잘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결국엔 그렇지 못했고, 두 명의 불펜투수가 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좋은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승리를 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앞으로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경우,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이태양의 9회 등판을 놓고 일부 팬들은 김응용 감독이 선수를 혹사시킨다고 비난을 가했다. 그러나 그가 자청한 등판이었다. 이태양은 최근 4경기 평균 투구수가 118.5구이다. 올해 처음 선발로 뛰기 시작한 선수의 투구수 치곤 상당히 부담스런 숫자다.
―항간에선 혹사 논란도 있다.
“이렇게 계속 던지다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 지금은 젊으니까 회복 속도가 빠르지만 나이가 먹을수록 그 회복 속도가 변할 거란 사실도 잘 안다. 내가 그에 맞게 준비하면 된다. 지금 걱정할 부분이 아니다.”
―1990년생이라 제대로 학교를 다녔다면 2009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했을 텐데 2010년에 응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이태양은 2010년 5라운드(전체 36순위) 지명을 받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야구를 너무 못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유급을 했다. 2학년을 두 번 다닌 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최고의 선택이었다. 당시엔 시합에 제대로 출전도 못했고, 이대로 드래프트에 나갔다간 100% 탈락이 확실시됐다. 나름 모험을 걸었던 셈인데 작전 성공이었던 셈이다(웃음).”
“2학년 때 유급하길 잘했구나 싶었다. 당시 성균관대 진학 예정이었다. 프로에서 지명 받지 못하면 미련 없이 대학에서 야구를 하다 다시 프로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 감격은 프로 입단 후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하나의 벽을 넘으니까 또 다른 벽이 내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프로에서의 난 경기를 뛰기 어려울 정도의 몸 상태였다.”
―몸이 좋지 않았던 건가.
“쉽게 표현하면 야구선수로서의 기초체력이 부족했다. 키는 큰 편인데(192㎝) 스피드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2년 동안 뜀박질과 웨이트트레이닝에 집중했다. 프로 입단할 때만 해도 체중이 89㎏정도였다. 지금은 100㎏이 넘는다. 그리고 이전에는 볼 스피드가 130㎞ 대였다. 지금은 145㎞가 훌쩍 넘는다. 체중이 늘어난 만큼 구속도 늘었다. 그로 인해 마운드에서 자신감이 생겼다.”
―2012년 7월 18일을 기억하나?
“당연히 기억한다. 그 날이 나의 프로 첫 데뷔전이었으니까. 그때도 대구 삼성전이었다. 우리의 선발투수는 (류)현진이 형이라 내가 불펜투수로 마운드에 오를 거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형이 그날 따라 2이닝 8실점을 하며 난타를 당했다. 결국 내가 5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고, 2이닝 1K 1볼넷 3실점(3자책)하며 평균자책 13.50을 기록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을 마감하다니, 무슨 소리인가?
“그 경기 마치고 다음날 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는 얘기다. 그러나 난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2군에서 내가 부족한 걸 채우고 다시 올라가고 싶었다. 만약 그 해에 내가 1군에 있었더라면 현진 형 옆에서 많은 걸 보고 배웠을 것이다. 다음 해 미국으로 갔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
―류현진과는 친분이 있었나.
“같이 야구한 적이 거의 없지만, 대전에서 쉬는 날 다른 형들이랑 자주 어울렸다. 현진 형이 맛있는 거 많이 사주셨다. 메이저리그에서 승리를 챙길 때마다 문자로 축하 인사를 보낸다. 하지만 답장은 없다(웃음)!”
―올 시즌 1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가 시범경기가 시작되기 전,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나름 기대가 컸을 것 같은데.
“내가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의 기량 차이가 심한 편이다. 김응용 감독님께선 그 차이를 줄이길 바라셨고, 나도 죽기살기로 노력했지만 간격을 좁히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하진 않았다. 머지않아 곧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다. 캠프 기간 동안 정민철 코치님으로부터 집중 지도를 받았고, 평소 내가 존경했던 분이고 투구폼도 비슷한 스타일이라 코치님의 조언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2군에서 코치님의 조언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반복 연습하고 체력을 키우면서 ‘때’를 기다렸다.”
“내 야구인생의 전환점이 된 경기였다. 7이닝 동안 안타 5개, 삼진 6개, 볼넷 1개를 내주며 113개의 공을 던졌다. 우리가 9-3으로 승리하며 2010년 프로 입단 후 42경기 만에 첫 승을 거뒀다. 그 경기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 드디어 이태양이 한화의 붙박이 선발투수로 인정받은 경기였다. 그 경기 후 지금까지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고, 승리를 챙기며 선발투수의 요건인 퀄리티스타트(6이닝 3자책)를 이어나갔다.”
이태양이 투구를 한 뒤 김태균과 주먹을 맞부딪치는 모습(왼쪽)과 6월 1일 SK전에서 데뷔 첫승을 한 뒤 인터뷰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부모님이 일을 하시는 바람에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들었다.
“난 부모님에 대한 기억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훨씬 깊고 진하다. 두 분은 여수에 살고 계시는데, 손자가 1군 마운드에 오르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셨다. 내가 프로 입단 후 아주 오랫동안 1군 무대에 서지 못했기 때문에 가슴앓이가 심하셨을 것이다. 지금은 제대로 효도하고 있는 것 같아 정말 기분이 좋다.”
―프로 경험이 짧다 보니 상대팀의 강타자를 상대할 때 좀 더 긴장을 하게 될 것 같다. 타석에 이승엽, 박병호 등이 들어서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내 손에서 공이 떠난 이후에는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 된다. 내가 던진 공을 상대 타자가 받아서 안타를 만들거나 홈런을 치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집중해야 하는 건, 포수의 사인이고, 포수가 원하는 곳에 자신 있게 던지면 된다. 내 손을 떠난 공의 결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10승을 올리면 여자친구와 결혼하기로 약속했다는 얘긴 무슨 소리인가.
“아, 그건 정말 잘못 알려진 내용이다. 여자친구가 있는 건 맞지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이제 겨우 스물 네 살의 나이이고, 앞으로 야구에 더 집중해야 할 때이다. 10승을 올리면 정말 좋겠지만, 그 숫자가 다가와도 결혼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결혼은 내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나이가 들었을 때 가능한 부분이다.”
7월 3일 잠실에서 열린 한화-LG전 선발은 이태양이었다. 이날은 이태양의 24번째 생일. 경기 전부터 LG 양상문 감독이 이태양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김응용 감독도 팀의 4연패를 끊어줄 유일한 투수라고 기대감을 높였다. 이날도 이태양은 이날 6⅔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잡아내며 3실점, 6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를 펼쳤다. 7회 2사 2루에서 승리 투수 요건을 갖춘 채 마운드에서 내려왔고, 이때만 해도 의미 있는 생일 선물을 품에 안는 듯했다. 그러나 LA다저스의 불펜처럼 한화 불펜도 만만치 않았다. 역전을 허용하며 4-5패로 한화는 5연패의 늪에 빠졌고, 이태양은 우울한 생일을 맞이했다.
경기 후 이태양은 “승리를 떠나서 팀이 이기지 못하게 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승리를 지키지 못한 불펜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태양한테서 왜 류현진의 향기가 난다고 말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아시안게임 엔트리에 이름 오를까 지금처럼만 하면… 무조건 무조건이야 과연 이태양은 오는 8월 15일 발표되는 아시안게임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 최근 류중일 감독은 예비 엔트리 60명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왼손 투수는 많은데 오른손 투수가 없다”고 걱정했다. 류 감독의 말대로 삼성 장원삼을 비롯해 KIA 양현종, SK 김광현, 롯데 장원준 등은 왼손 에이스들이다. 올 시즌 왼손 에이스들이 다승과 평균자책점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것. 류 감독은 “아시안게임 동안 전부 왼손을 선발로 내세울 수 없다. 그렇다고 눈에 띄는 오른손 투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젊은 오른손 정통파 투수의 등장은 류 감독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이태양은 지난 6월 27일 삼성전에서 9회까지 마운드에 오르며 류 감독 앞에서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포스트 류현진’이라고 불릴 만큼 타고난 배짱과 자신감은 국제무대에 올려도 손색이 없다는 게 야구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태양은 이런 시선들에 대해 다소 조심스런 입장을 나타냈다. “아시안게임에 올라간다면 말 그대로 ‘가문의 영광이다. 욕심도 나고,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나의 모든 것을 다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프로 경력이 미천한 선수가 벌써부터 대표팀을 운운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본다. 난 시즌 동안 최선을 다할 뿐이고, 우리 팀의 승리를 위해 뛸 것이다. 대표팀은 그 다음 문제이다.” 하지만 한화 구단 입장은 다르다. 팀의 젊은 에이스가 대표팀을 경험하고, 좋은 성적까지 올리고 온다면 금상첨화이다. 더욱이 금메달을 획득할 경우 병역 면제의 혜택까지 주어진다. 어떻게 해서든 이태양이 대표팀에 승선하기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 류중일 감독은 최종 엔트리 선발 조건으로 “이름값, 병역 필 유무를 떠난 실력”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병역미필자는 60명 중 18명. 김인식 기술위원장이 “투수와 포수 중 오른손 투수가 부족해 고민이 많다”고 말한 만큼 이태양의 대표팀 승선 여부는 8월 중순까지의 남은 경기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