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대문에 꽂힌 식칼의 의미는?
유병언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별장 대문에 식칼이 꽂혀 있어 그의 죽음에 조폭이 연관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돌고 있다. 오른쪽은 경찰관이 지난 7월 23일 별장에서 통나무 판자로 위장된 비밀 공간을 공개하는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현재까지는 유병언 전 회장의 사망 원인으로 가장 낮게 추정되는 것이 ‘자살’이다. 유 전 회장의 평소 성격을 비춰 볼 때 자살을 할 이유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정황은 유 전 회장 전 측근들의 증언을 통해 상당 부분 드러난다. 유 전 회장의 전 측근은 “평소 자신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이다. 오대양 사건 때도 그렇게 버텼는데 쉽게 자기 목숨을 끊을 사람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유 전 회장이 생애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에서도 이러한 정황이 포착된다. 유 전 회장이 지난 5월 말에서 6월 초 사이에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자필메모에서는 대통령과 참모진, 언론에 대한 불만이 구구절절 담겨 있다. 그리고 메모 말미에는 ‘이 순진무구한 아해의 자존심 억눌러 세계들의 시간 안에 분침 되어 큰 바늘을 대신해 내는 소리. 생존 마디마디 초초초 분 시 숨 쉬고 있음을 이 늙어진 몸에 넋은 결코 비겁자 아님을….’, ‘내 노년의 비상하는 각오와 회복되는 건강을 경축하며…’라고 적혀 있다. 수사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유 전 회장이 도피 중에도 자신의 건강과 생에 대해 강한 집착을 갖고 있는 모습이라 분석한다.
유 전 회장의 사체와 함께 발견된 각종 유류품들도 미스터리다. 특히 유 전 회장이 먹고 마신 물품들에 대한 의문점들이 증폭되고 있다. 육포 두 봉지와 콩 20알, 치킨 머스터드 소스, 술병 등이 대표적이다. 기자와 직접 만난 한 구원파 신도는 “유 회장님은 육포와 치킨을 입에 대지도 않는다. 술도 마찬가지다. 유 회장님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전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유 전 회장이 산길을 헤매다가 빈 술병을 주워 물을 담아 마신 게 아니냐는 추측도 일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사체를 처음 발견한 박윤석 씨는 “술병이 이미 다 비워져 있었다. 분명 어디서 마시고 이곳으로 온 것”이라고 전했다.
함께 발견된 스쿠알렌, ‘꿈같은 사랑’ 가방 등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서는 마치 누군가가 유 전 회장임을 나타내기 위해 일부러 갖다 놓은 것 같다는 시각을 내놓고 있다. 유 전 회장의 사체가 누웠던 자리의 풀의 모습, 운동화의 위치 등도 의혹의 대상이다. 박 씨는 “사체가 누웠던 자리만 풀이 가지런하게 뉘어져 마치 누울 자리를 일부러 깐 것 같다”며 “운동화 위치도 발끝에 가지런히 있었다”고 전했다. 운동화가 벗겨지고 발끝에 놓여진 것은 누군가 일부러 유 전 회장이 자살을 한 것처럼 연출하려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처럼 유 전 회장의 생전 모습, 미스터리한 유류품 등으로 미뤄 볼 때 유 전 회장이 자살이 아니라 ‘타살’을 당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일고 있다. 검찰의 추적을 당하고 있던 유 전 회장을 제거해야 했던 ‘제3의 인물’이 있지 않느냐는 가정에서다.
타살 가능성 중 가장 설득력 있게 제기되는 시나리오는 바로 제3지대에서 유 전 회장을 살해하고 매실 밭으로 옮겨 놓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같은 시나리오는 사체의 첫 목격자 박 씨의 증언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 있다. 박 씨는 “고추밭에서 계속해서 농사를 지었지만 사체가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다. 냄새도 나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고추 밭은 매실 밭에서 아래로 불과 5m가량 떨어져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 정도 떨어진 상황에서 사체가 부패할 때까지 냄새가 나지 않았다는 것은 의심스럽다는 시각이 높다.
사체를 처음으로 수습하고 옮긴 순천장례식장 이명수 대표는 “발견했을 때 사체의 부패된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났다”라고 전했다. 최초 발견자와 사체 수습자의 증언이 엇갈리는 셈이다. “부패된 시신이 매실 밭에 유기된 지 얼마 안됐을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프로파일러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부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신이 발견된 매실 밭과 민가와의 거리는 30m 정도밖에 안 된다. 또 300평이 넘는 공장이 50m 이내의 거리에 있다”며 “민가에는 개들도 있다. 보통 마을에 낯선 외부인들이 나타나도 짖는 게 개들이고, 또 개들은 시신의 썩는 냄새에 민감하다. 그런데도 개가 짖지 않았다는 것은 시신의 썩는 냄새가 일정하게 사라진 이후에 시신이 발견지에 유기되었을 가능성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타살 시나리오를 가정한다면 자연스레 누가, 왜 유 전 회장을 살해했는지에 대해서도 궁금해진다. 이와 관련 유 전 회장이 잡힌다면 뒤가 켕기는 정치권 유력인사로부터의 타살설부터 ‘회장님의 수갑 찬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구원파로부터의 타살설, 유 전 회장의 돈을 노린 측근으로부터의 타살설까지 갖가지 추측이 난무한 바 있다.
<일요신문>은 이 과정에서 “순천 지역 조폭이 연계됐을 가능성이 높다”라는 전언도 포착했다. 구원파 내부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유병언의 죽음에는 분명 ‘작업’이 들어갔을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유병언의 오래된 최측근 중에 목포, 순천 등 전남 조폭을 관리하는 거물이 있다. 해당 인사가 ‘제3의 인물’은 아닌지 추적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 중 유 전 회장이 숨어 있던 순천 ‘숲속의 추억’ 별장 입구에 꽂혀진 ‘식칼’을 발견한 바 있다. 해당 식칼은 유 전 회장이 별장을 떠난 시점인 지난 5월 30일 무렵에는 취재진에게 포착되지 않는 물품이다. 이후 식칼이 별장 입구에 꽂혀 있다는 점에서 유 전 회장의 죽음, 조폭 연계설 등 갖가지 의혹과 연관되어 있는 ‘의미심장한 물품’이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잇따른다.
한편 ‘자연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유 전 회장이 별장을 떠날 무렵, 측근이자 운전기사인 양회정 씨를 기다리다가 홀로 남겨져 숲길을 헤맨 게 아니냐는 시나리오다. 실제로 양회정 씨는 검찰이 ‘숲속의 추억’ 별장을 수색할 당시, 순천에서 전주로 이동해 자신의 지인에게 “회장님이 위험하다. 구하러 가야 한다”고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바 있다. 이후 양 씨는 전주에서 경기도 안성 금수원으로 바로 이동해 유 전 회장을 보필할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 관계자는 “양 씨가 홀로 전주에 간 것이 포착됐지만 현재로서는 유병언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선 양 씨의 행적을 쫓는 게 급선무다. 양 씨의 행적은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양 씨가 다시 순천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당시 유 전 회장 옆에는 측근들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상당하다. 결국 유 전 회장이 직접 숲속의 추억 별장에서 도피 물품을 챙겨 스스로 몸을 숨겼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유 전 회장과 함께 발견됐던 육포와 스쿠알렌, ‘꿈같은 사랑’ 가방 등은 별장에 있던 물품과 일치한다. 별장에서 매실 밭까지는 2.5km가량의 거리. 유 전 회장이 73살의 고령인 점과 평소 약간의 고혈압을 앓고 있었던 점을 유추해 볼 때 더운 여름 날씨에 산길을 헤매다 정신을 잃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순천은 5월 말에 30도가 넘는 폭염이 3일간 지속됐었다.
이처럼 여러 사망 원인을 추론해 볼 때 자살보다는 타살이나 자연사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시나리오를 뒷받침해 줄 이렇다 할 핵심적인 증거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황제도피’를 벌였던 유 전 회장의 비참한 말로를 밝혀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정밀한 수사가 필요할 것 같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