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PD수첩’도 반전 성공할까
▲ 여의도 KBS 앞에서 황우석 지지자들이 문 PD의 <추적60분> 방영을 요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문제의 본질을 떠나 사건이 확대된 데는 KBS의 방송불가 판정과 취재를 담당했던 문형렬 PD의 돌출행동이 큰몫을 차지했다. 비록 11일간의 잠행을 마치고 지난 14일 문 PD가 KBS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미 그는 방송불가 판정을 받은 동영상의 일부를 공개하고 방송 대본을 인터넷에 유포한 뒤였다. 그의 말마따나 그의 출근은 ‘또 하나의 투쟁’일 뿐인 상황이다.
문제는 얼마간 사그라든 듯 보였던 ‘황빠’(황우석 지지자), ‘황까’(황우석 비판론자)들의 집단행동이 문 PD의 행동으로 다시 시작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느낌마저 주고 있다는 점이다. 황우석 지지자들은 문 PD의 취재 내용을 공개할 것을 요구하며 벌써 20여 일째 여의도 KBS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고 몇몇 지지자들은 분신자살을 기도하는 극단적인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이처럼 논란을 재점화시킨 문 PD의 취재 내용은 무엇이며 그 내용은 과연 이런 소동을 벌일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일까.
KBS 간판 시사프로그램인 ‘추적60분’이 황우석 논문 조작 의혹에 대한 반박 보도를 준비한다는 소문이 퍼진 건 지난 1월이었다. 서울대 조사위의 발표가 있던 지난 1월10일 기자회견장에서 문 PD가 정명희 조사위원장과 설전을 벌인 후 언론을 중심으로 “KBS가 황우석 관련 보도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던 것. 당시를 기억하는 한 기자는 “문 PD가 사석에서 ‘새로운 내용을 확보했다. 지금까지의 논란을 뒤집을 새로운 팩트(사실)가 곧 공개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예고된 거나 다름없던 문 PD의 취재내용은 그로부터 석 달이 넘도록 알려지지 않았다.
문제가 터진 건 지난 4일이었다. KBS 측이 문 PD가 취재한 ‘섀튼은 특허를 노렸나’편에 대해 방송 불가 결정을 내린 것이 발단이다. 문 PD는 즉각 언론을 통해 “이번 주 안으로 인터넷을 통해 (취재내용을) 공개하겠다”며 취재한 동영상을 가지고 잠적해 버렸다. 문 PD가 최근 3개월 이상 ‘섀튼은 특허를 노렸다’ 제작에만 몰두했다는 사실도 이때 처음 알려졌다. 이러한 소식이 전해지자 황우석 지지자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방송을 요구하는 시위가 본격화됐고 급기야 황우석 지지자의 분신이 이어졌다.
문 PD가 취재한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이미 지난 11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바 있는 섀튼의 특허권 관련 의혹 부분이고 또 하나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줄기세포 1번의 진위와 관련된 것이다. 이와 관련, 문 PD는 지난 13일 인터넷신문 ‘폴리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달 21일 밤 7시 세 번째 영상물(NT-1의 진위공방)을 공개할 계획이다”고 밝혀 이를 확인하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제3의 카드’를 담은 영상물도 공개할 계획이다. 여론과 검찰 수사를 뒤집는 핵폭탄이 될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 황우석 박사(왼쪽)와 섀튼 교수. | ||
다음달 2일 공개 예정인 ‘제3의 카드’ 내용도 서서히 알려지고 있다. ‘황우석 사태와 관련한 미국의 외압설 및 음모론’이라는 것. 문 PD 측의 한 관계자는 14일 한 언론을 통해 “‘제3의 카드’는 황우석 박사와 관련한 일련의 사태에 미국 정부기관이 외압을 행사한 의혹이 있다는 점을 다뤘다”고 밝힌 바 있다.
11일간이나 연락을 끊었던 그는 지난 14일 ‘정상’ 출근을 시작했다. “출근을 하는 것도 투쟁”이라는 게 그의 설명. 그러나 그는 이미 지난 7일 시사정보팀에서 TV제작본부 프로그램 전략기획팀으로 옮겨져 대기 발령을 받은 상태다.
그가 공개한 동영상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비로소 진실이 밝혀진다”고 흥분하는 네티즌들이 있는 반면 “새로운 것이 없다. 오히려 취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자인한 것밖에 안 된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특히 그가 공개한 동영상 내용 중 ‘통신전문가와 5일간 패스워드를 찾고자 노력한 끝에 패스워드를 찾아냈다’며 해킹을 암시한 부분이나 섀튼 교수 측의 반론을 싣지 못한 점 등이 전문가들의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인터넷 공개’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KBS에 복귀한 지난 14일 그는 ‘국민의 방송인 KBS에 복귀하며’라는 글을 통해 “법적 분쟁의 소지 때문에 방송할 수 없다는 KBS의 논리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며 “‘추적60분’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조국을 사랑하고 정의와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프로그램이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방송이 나가야 한다”고 까지 주장했다.
이번 사태와 관련 KBS 시사정보팀 소속 한 PD는 “오랫동안 동료로 일해 온 사람이 관련된 일이어서 뭐라고 한마디로 이번 사태를 말하기는 곤란하다”면서 “그러나 아무리 회사의 방침에 문제가 있다고 해도 회사의 지적재산물인 방송 원본을 들고 나가 이런 식으로 공개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는 입장을 밝혔다. KBS의 또 다른 관계자도 “이미 밝힌 바와 같이 KBS는 문 PD에 대해 민형사상의 손해배상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며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다”고 밝혔다.
과연 문 PD의 행동은 진실 규명 차원인지 아니면 소모성 논란의 재점화 차원인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
이번 파문의 장본인 문 PD는 1993년 KBS에 입사한 이후 주요 프로그램을 두루 거친 13년차 베테랑 시사교양 PD다. 시사보도팀과 시사정보팀, 교양정보팀 등에 몸담으며 ‘아침마당’ ‘KBS 역사스페셜’ ‘생방송 시사투나잇’ 등 주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맡아왔다.
한상진 기자 sjin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