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로 받고 ‘말’로 주겠네
박삼구 회장은 ‘모태 기업’인 금호고속 인수를 벼르고 있지만 인수가격이 치솟지는 않을까 긴장하는 모습니다. 서울고속터미널 호남선 승차장에서 출발 대기 중인 금호고속 버스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금호고속이 2년 만에 매물로 나온다. 금호고속 최대주주인 IBK투자증권-케이스톤파트너스 사모펀드(PE)는 최근 금호고속을 매각하기 위해 매각주관사로 BoA메릴린치를, 회계자문사로 안진회계법인을 선정했다. 또 기업과 사모펀드를 포함해 여러 곳에 티저 레터(Teaser Letter·투자 유인서)를 발송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고속의 시작은 고 박인천 금호 창업주가 1948년 설립한 광주여객자동차다. 박인천 창업주는 이를 기반으로 사세를 확장, 금호그룹을 일궜다. 즉 금호고속은 금호그룹의 모태기업인 것이다. 박삼구 회장이 금호고속 인수 의지를 천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버지가 설립한 기업이자 그룹 모태기업을 되찾아오겠다는 것이다.
2년 전 금호그룹은 눈물을 삼키며 금호고속을 매각했다. 워크아웃 중이던 금호산업의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금호고속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38.7%, 대우건설 지분 12.3%와 묶어 패키지로 매각했다. 금호그룹 한 인사는 “팔고 싶어서 판 게 아니라 자산 매각을 원활히 하기 위해 알짜인 금호고속을 다른 지분들과 패키지 딜로 해야 했다”며 “대신 반드시 되찾아오겠다는 조건을 달고 매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 인사들에 따르면 서울고속터미널과 대우건설 지분 매각이 쉽지 않자 금호산업 채권단이 알짜기업인 금호고속에 이들을 묶어 판 것으로 전해진다. 금호 측이 말하는 ‘조건’이란 우선매수청구권을 일컫는다. 금호고속을 인수한 사모펀드가 나중에 되팔 때 금호그룹에 먼저 인수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이다. 금호고속 우선매수청구권은 현재 금호터미널이 보유하고 있다.
금호그룹은 그동안 금호고속을 인수하기 위해 준비해왔다. 금호산업이 갖고 있던 우선매수청구권을 지난해 11월 금호터미널이 인수했으며 인수 자금도 마련해놓은 상태다. 금호 관계자는 “지난해 광주신세계와 장기임대차계약을 통해 금호고속을 되찾아올 자금을 충분히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금호그룹은 초조한 기색이 역력하다. 다른 기업이 인수전에 뛰어드는 것을 경계하는가 하면, 사모펀드 등 제3자가 금호고속을 탐내는 것도 지역·임직원 정서 등을 거론하면서 “별 실익이 없을 것”이라며 인수전에 참여하지 말 것을 종용하고 있다. 금호그룹 측은 “모든 상황을 종합해볼 때 제3자가 이번 딜에 참여해봐야 실사 비용, 자문료 등 비용만 발생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쓸데없이 돈만 쓰는 우를 범하지 말고 그냥 우리(금호그룹)가 인수할 수 있도록 놔두라는 의미다.
금호고속은 여러 기업들과 사모펀드에 매력적인 매물로 인식되고 있다. 금호고속은 매년 수백억 원의 이익을 내고 있으며 현금창출력 역시 매년 4~5%씩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외 진출에 성공한 운송회사인 데다 해외 자회사에서 받는 배당금도 쏠쏠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탐내는 곳이 많으면 많을수록 경쟁은 격화한다. 경쟁이 격화하면 매각 가격이 올라간다. 시장 일부에서는 금호고속 매각 가격을 6000억 원 이상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재계 일각에서는 박삼구 회장이 인수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이상 다른 기업들이 ‘예의상’ 인수전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금호그룹 역시 이 같은 기업 간 예의·의리를 바라는 눈치다. 하지만 생각이 다른 사람도 적지 않다. 재계 고위 인사는 “야속하기는 하겠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 예의와 의리를 바란다면 순진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고위 인사는 “채권단이 매각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PE가 매각하는 것이어서 무조건 비싸게 팔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인수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문제는 가격”이라고 말했다. 금호 관계자는 “2년 전 금호고속을 3300억 원에 인수한 사모펀드가 인수 후 자산담보대출 등으로 회수해 실질적으로 들인 돈은 1100억 원가량에 불과하다”며 “담보대출로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대출 이자도 금호고속에서 계속 내왔는데 매각가 6000억 원 운운하는 것은 과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생각하는 금액은 있으나 밝히기는 힘들다”고 했지만 이러한 말을 종합해보면 대략 2000억~3000억 원 수준으로 짐작된다.
한 가지 의문은 금호그룹이 왜 훗날 사모펀드가 매각할 때 경쟁입찰 전 먼저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경쟁입찰 후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을 택했냐는 점이다. 앞의 재계 고위 인사는 “금호의 경우 콜옵션(특정 자산을 만기일이나 만기일 이전에 미리 정한 가격으로 살 수 있는 권리)이 아니다”며 “왜 콜옵션 방식을 택하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칼자루를 PE가 쥐고 있어 금호가 휘둘릴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한 M&A 전문가는 “(우선매수) 권리를 가진 기업이 나중에 되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이를 잘 알고 있는 PE들은 인수할 때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자 우선매수청구권이라는 장치를 활용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금호로서는 또 하나 걸리는 부분이 있다. 금호산업 등이 워크아웃 중이라는 사실이다. 금호고속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인수한다면 ‘쓴소리’ 들을 것이 뻔한 상황이다. 금호 관계자는 “워크아웃 중인 금호산업이나 금호타이어가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금호터미널이 인수하는 것이기에 워크아웃과 연결시키기는 무리”라면서 “모태기업을 되찾겠다는데 안 좋게 볼 이유가 없다”며 인수 의지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과연 금호그룹이 모태기업을 순조롭게 되찾아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