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변호사 선임도 강요” 부글부글
▲ 5·31 지방선거에서 부산 금정구청장 후보(무소속)로 출마한 김문곤 씨가 지난 5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박승환 의원 측이 공천 조건으로 충성서약서와 함께 10억 원 차용증 작성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제공=국제신문 | ||
부산 금정구 현지에서는 박 의원 측의 공천헌금 비리설이 구체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박 의원 측이 공천을 대가로 관내 업체들을 상대로 고문변호사 선임을 강요했다” “박상규 구의원 당선자도 박 의원 측이 개입된 공천비리에 연루되어 자살했다”는 주장까지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는 것.
급기야 최근 금정구내 지역 인사들이 중심이 된 ‘금정구바로세우기연대’가 출범, 박 의원 본인의 의혹을 규탄하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지는 한나라당의 공천장사 몸통이 밝혀질 경우, 김덕룡 박성범 의원에 이은 세 번째 공천헌금 비리사건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5·31 지방선거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지만 공천비리 의혹으로 얼룩진 부산 금정구 일대는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현지에서 만난 구민들은 이미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 한결같은 목소리로 “공천장사는 뿌리 뽑히지 않는 정치판의 고질병”이라며 “반드시 터질 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의원 측의 공천비리 의혹은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구의원에 재선된 박상규 씨가 실종 29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발단이 됐다. 현지에서는 박 씨가 생전에 공천과 관련된 소문에 휘말렸다는 점에서 그의 죽음과 공천비리에 얽힌 숱한 소문들이 회자되고 있는 상태.
당시 구내에서는 박 씨가 공천과 관련해 박 의원 측에 3억 원을 건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고 한다. 이 소문이 선거 운동 과정에서 집중적으로 불거지자 박 씨는 검찰수사에 대한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것. 박 씨가 선거 기간 중에 유서 한 장도 남기지 않은 채 스스로 목을 맨 것은 단순 자살로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다는 것이 현지 관계자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현지에서는 박 씨가 자신의 목숨과도 맞바꿀 정도로 비밀에 묻히기를 바랐던 뭔가 중요한 커넥션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하다.
이번에 아무개 후보의 선거운동에 참여했다는 금정구의 한 주민은 “기초의원은 5000만~7000만 원, 광역의원은 8000만~1억 원 선, 기초단체장은 2억 원 선이 정찰가라는 것은 선거판에 있었던 사람은 웬만큼 다 아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에서 구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한 후보는 “구체적인 액수까지 나돌았던 판이니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실제 공천 비리 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박 씨의 죽음이 단순 자살이 아니라 공천문제와 연루되어 있다는 의혹도 이러한 정황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 부산 금정구 현지에서 전해지는 지역구민들의 박 의원 측에 대한 의혹과 비난 수위는 자못 심각한 수준이었다. 현지에서는 “공천자들 중 박 의원 측에게 돈을 안 준 사람이 없다” “공천을 줄 듯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부당한 요구를 해왔다”는 얘기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 박 씨의 죽음과 관련해서도 구민들은 “공천헌금 소문이 파다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천까지 받아놓고 자살할 이유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구 여론은 박 씨의 자살에 이어 김 구청장의 폭로가 터지자 더욱 격앙된 분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한 구민은 “금정구가 공천비리의 온상으로 각인됐다”며 “만약 박 의원이 연루된 것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구청장의 폭로로 구속된 박 의원의 동생은 현재 부산지방경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며 박 의원 역시 김 구청장을 명예훼손으로 부산지검에 고소했다.
▲ 지난 5월 24일 박승환 한나라당 의원이 “공천 조건으로 충성서약서와 10억 원 차용증 작성을 요구했다”는 김문곤 금정구청장 후보 측의 주장을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 의원 측은 김 구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사진제공=국제신문 | ||
그에 따르면 “내부적으로 공천이 확정됐다”며 박 의원의 동생이 축하주까지 마시고 간 지 불과 일주일여 만에 공천자가 바뀌었다는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 즉 구청장 공천을 두고 형제 간에 어떤 얘기가 오갔을 것으로 보이며 동생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에 대해 ‘괘씸죄’가 적용됐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 김 구청장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 측에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다. 변호사 신분으로 그런 일을 꾸몄을 리가 있겠나”라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박 의원의 최측근은 “그동안 쌓아온 명성에 치명적”이라는 말로 억울함을 피력했다. 동생 일과는 절대 무관하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가만히 앉아서 당한 꼴’이라는 것. 김 구청장을 고소한 것도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명예훼손’이라는 게 박 의원 측의 주장이다.
박 의원 측을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비단 동생 구속 건만이 아니다. 현지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천대가 고문변호사 선임 강요’ 의혹에 대해서도 박 의원 측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부산 금정구에서 한나라당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공천을 신청한 이들 중 일부는 “박 의원에게 공천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전달한 후 박 의원 측으로부터 고문변호사 선임을 권유받았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고문 변호사는 필요도 없지만 행여 공천에 지장이 있을까 싶어 자문비 명목으로 매달 50만원씩 송금했다”며 “공천 희망자에게 고문변호사비 명목으로 받는 돈은 공천헌금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의원 측의 고문변호사 강요 의혹은 구민들 사이에서도 이미 확산되고 있었다. 기자와 만난 한 구민은 “가스 배달업을 하는 A 씨가 박 의원 측으로부터 구의원 제안을 받은 뒤 고문변호사 권유를 받았다고 한다. 도대체 가스 배달업체에 고문변호사가 왜 필요한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박 의원 측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악성루머”라며 “(받은 돈은) 엄연히 자문 비용이었을 뿐 공천과는 아무 상관없다. 공천에서 제외된 것은 그들이 자격 면에서 부적절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박 의원 측의 강력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점점 어려운 국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난 22일에는 금정구내 전직 구의원과 시의원, 5·31 지방선거 공천탈락자와 낙선자, 지역 각계각층의 지도자 등 70여 명이 모여 금정구바로세우기연대(금바연)를 출범시켰다. 금바연 한 관계자는 “박 의원 측의 참을 수 없는 비리 행태를 바로잡아 공천비리로 얼룩진 금정구의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출범 취지를 밝혔다.
금바연 측은 노비문서에 비유되는 충성서약서와 10억 원 차용증, 관내 10여 개 기업에 고문변호사직을 강요한 것을 거론하며 금정구 내에서 불거진 공천비리 건에 박 의원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박 의원의 사무실에서 총무실장으로 근무하며 회계총책임자의 자리에 있던 동생의 구속과 관련, 박 의원은 개입 여부를 떠나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마땅하다는 것. 금바연 측은 “불의와 거짓의 중심에 있는 박 의원이 한마디 사과도 없이 정치적 쇼와 거짓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부산지방경찰청 수사과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박 의원의 동생은 메모초안 작성에 대해서는 시인했지만 형인 박 의원의 지시나 개입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천 비리의 핵심이라는 의혹에 대해 박 의원 측은 “지금으로선 억울할 따름이지만 검찰 조사가 끝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부산=이수향 기자 lsh@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