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있는데 ‘심판’ 없네
역사학자들은 “굳이 계승자를 정해야 한다면 이구 씨가 생전에 자신의 후계자를 정하는 것이 옳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기에 남은 황손들 가운데 아들-적자-연장자 순으로 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그렇게 봤을 때 생존해 있는 네 아들 가운데 이충길 씨가 가장 적격이 되는 셈이다. 종약원 측도 이 같은 점을 고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이미 일흔을 앞둔 고령인 데다가 이구 씨와 항렬이 같기 때문에 양자로 부적합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종약원과 이충길 씨가 대신 장남 이원 씨를 양자로 결정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양자 결정 과정을 소상히 알고 있다는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새로운 내막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의친왕의 손자들을 우선 대상으로 하는 가운데서도 기본적으로 해외 시민권자가 아닌 국내 국적을 가진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이런 조건을 맞춰서 볼 때 그 후보자는 두세 명 정도로 압축됐다. 거기서 또 중시한 조건은 학력과 병역 의무였다. 상징적인 황실의 후계자이지만 그 품위와 국민의 정서를 고려하기 위한 까닭이었다”고 전했다.
그런 면에서 이원 씨는 이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는 것.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씨는 서울에서 태어나 상문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주립대를 졸업했다고 한다. 병역의무도 마쳤고 미국시민권도 1989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종약원의 결정에 반발하는 측은 “굳이 이구 전하의 양자 형식으로 후위를 이을 필요가 없다. 영친왕계는 이미 대가 끊겼으니 생존해 있는 의친왕계 아들들이 그 뒤를 이으면 된다”고 반발했다. 이석 씨를 지지하는 후원회 측에서는 “생존해 있는 4명의 아들 중 이충길 씨를 비롯한 3명은 모두 미국으로 건너가 생활했기 때문에 유일하게 국내에 남아서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황실복원 사업을 펼치고 있는 이석 씨가 가장 적격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종약원과 이석 후원회의 대립 속에서 황족회는 또 다른 새로운 명분으로 이해원 씨를 내세웠다. 이성주 대변인은 “현재 생존하고 계신 황손들 가운데 ‘당호’를 받은 의친왕 부인의 자손으로는 해원 옹주님과 해춘 옹주님(87·의친왕 3녀)만 계신데 두 분 중 서열이 높은 해원 옹주님이 가장 정통성을 인정받는다”고 밝혔다. 당호란 정식부인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라고 한다.
하지만 황족회의 명분이 빈약하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충길, 이석 씨 등 아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조선왕조에 단 한 번도 없었던 옹주를 황제로 내세울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황족회 측에서 주장하는 당호라는 것도 이미 조선 왕조가 폐망한 이후여서 공식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주장이다.
갑작스런 이해원 여사의 대관식 파문으로 황손들 간의 다툼이 심화되자 이충길 씨가 조만간 한국으로 귀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한 측근에 따르면 “실질적인 황실의 가장 어른이 되는 이충길 님께서 사분오열된 황손들의 이합집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조만간 한국으로 귀국해서 최고 서열자답게 이를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의 귀국은 황손들 간에 또 다른 분열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이런 가운데 이구 황세손의 양자로 결정된 이원 씨 또한 얼마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황실의 대통을 잇는 공부를 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그들만의 ‘황위 다툼’은 당분간 진통을 계속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