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구인’ 망신 후 ‘검찰 손보기’ 준비
비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이 8월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자진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8월 20일 검찰 내부엔 온종일 비장한 기운이 감돌았다. 수뇌부는 전날인 19일 자정 무렵 정치권이 임시국회 소집을 공고한 데 대한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새정치연합은 검찰이 19일 밤 9시 30분 입법로비 혐의를 받고 있는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두 시간여 만에 단독으로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했다. 세월호 특별법 통과를 위한 것이란 핑계를 댔지만 사실상 방탄 국회를 열며 검찰의 선공에 맞불을 놓은 것이다. 역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현룡 박상은 의원의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이 펼친 기습 작전을 방기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통상 검찰은 현역 의원이나 대기업 총수 등 신분이 확실한 유력 인사는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자진 출석을 기다리는 게 관례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인사는 “(영장이 청구된) 의원 모두가 21일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에 나오지 않고 임시국회가 열리는 22일까지 버틸 것이란 첩보를 받았다. 그러면 또 체포동의안 절차를 거치는 등 번거로울 뿐 아니라 봐주기 수사라는 뭇매를 맞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검찰이 먼저 움직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이 제기됐다”고 귀띔했다. 영장이 청구된 의원들이 임시국회가 열리는 22일부터 ‘회기 중 불체포 특권’이라는 든든한 방어막을 확보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설명이다.
검찰은 영장실질심사 당일이던 21일 오전 6시 검사 3명과 수사관 40명을 국회로 보냈고, 10시부터 강제구인에 나섰다. ‘설마 국회 내로 들어오기야 하겠느냐’며 마음을 놨던 의원들 예상을 깬 검찰의 깜짝 승부수였다. 현역 의원들을 강제 구인하기 위해 국회 내로 검찰 수사관들이 대거 파견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앞서의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방탄 국회에 대한 엄청난 비난 여론이 우리에겐 오히려 큰 힘이 됐다. 정치권 수사는 이제 시작일 뿐인데 초반부터 밀려선 안 될 것이란 판단도 있었다”면서 “현역 의원들 강제구인에 나선 것은 그만큼 우리가 혐의 입증에 자신감이 있다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검찰로부터 불의의 역습을 당한 비리 의혹 의원들은 종적을 감추거나 사무실 문을 걸어 잠근 채 구인장 집행에 응하지 않았다. 박상은 새누리당 의원은 사무실에 휴대전화를 켜놓고 나간 것으로 알려져 ‘도주설’까지 나돌았다. 같은 당 조현룡 의원도 차명으로 개통된 전화를 꺼놓고 숨었다. 김재윤 신계륜 새정치연합 의원은 자리를 비웠고, 유일하게 의원실에 머물던 신학용 의원은 검찰과 대치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검찰은 보일러실과 화장실을 비롯한 의원회관 곳곳을 수색했고, 심지어는 CCTV까지 확인했다. 그래도 의원들이 나타나지 않자 검찰은 “도피 조력자도 처벌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이날 현장에 있었던 당직자와 보좌관들은 <일요신문>에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회가 검찰로부터 굴욕을 당했다. 방탄 국회를 열어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겠지만 검찰이 작정을 하고 들어온 것 같다” “조력자를 처벌하겠다니, 유병언급으로 매도되고 있다. 비참하다” 등등의 말을 쏟아내며 참담해했다. 방탄 국회를 믿고 하루만 버티려 했던 의원들은 싸늘한 여론과 검찰의 강한 압박에 백기를 들고 결국 자진출석해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박상은 조현룡 김재윤 의원은 영장이 발부돼 바로 구치소에 수감됐고, 신계륜 신학용 의원은 기각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다.
정치권을 향해 강력한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검찰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영장심사를 받았던 5명 외에 현역 의원이 무더기로 검찰 수사선상에 올라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 정권 들어 국정원 댓글 사건 축소 의혹을 비롯해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논란, 유병언 검거 실패 등 체면을 구길 때마다 정치권으로부터 수모를 당했던 검찰은 복수를 벼르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의 음란행위 의혹이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어느 때보다 수사의 결과물이 중요한 때이기도 하다. 정치권이 우려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권대우 정치평론가는 “솔직히 입법로비나 청탁에서 자유로울 의원들이 누가 있겠느냐. 검찰이 꽃놀이패를 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치권은 검찰이 출판기념회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려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신학용 의원이 지난해 9월 출판기념회 때 특정 단체로부터 받은 돈을 문제 삼고 있다. 이를 대가로 올해 이 단체에 유리한 법안을 발의해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 의원은 “출판기념회 축하금이 대가성 로비자금이 될 수 있는가는 법적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반박했다. 법원 역시 신 의원이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돈의 성격은 다퉈볼 여지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이 8월 21일 국회의원회관으로 수사관을 보내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신학용 의원 강제 구인을 시도하는 모습. 의원실에 머물던 신 의원은 검찰과 대치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출판기념회가 검찰의 사정권 안에 들어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출판기념회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려왔던 의원들이 발칵 뒤집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지금까지 기소한 전례도 없고 정치자금법 규제대상도 아닌 출판기념회를 빌미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번 수사가 특히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검찰이 신 의원 출판기념회 축하금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해 기소한 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 향후 엄청난 파장이 불가피한 까닭에서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출판기념회 축하금은 신고 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대부분 현금으로 들어오기에 흔적이 남지 않는다. 의원들이 이를 악용해 부적절한 돈을 챙기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로 통했다.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검찰 수사가 (출판기념회로) 확대될 경우 정치권은 그야말로 쑥대밭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정치권은 검찰의 움직임에 대해 일단은 예의주시하면서도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새정치연합은 야당탄압저지대책위원회(위원장 조정식 사무총장)를 꾸리며 대응에 나섰다. 조 위원장은 신계륜 신학용 의원의 영장 기각을 거론하며 “얼마나 부실한 표적수사였는지 입증하는 것이다. 검찰총장은 야당을 탄압하고 국회를 짓밟은 행위에 대해 엄중히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박범계 원내대변인도 “야당 의원 체포를 위해 의원회관에 아침 일찍 군사작전 하듯 들어온 검사와 수사관, 모든 장면을 생중계하는 방송, 그 안에 유일하게 있었던 신학용 의원 영장은 기각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새정치연합은 이번 수사가 정권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기획 수사로 받아들이고 있다. 배후에 검찰을 움직이고 있는 ‘컨트롤 타워’가 따로 있을 것이란 얘기다. 법사위 소속의 한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 정도 규모의 수사를 검찰이 독립적으로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여야 균형을 맞추는 것도 그렇고….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를 밝혀내야만 우리가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조차 이러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언급한 새누리당 중진 의원은 “남의 일이 아니지 않느냐. 민생 법안을 하나도 처리하지 못하며 표류하고 있는 정치권을 향해 박근혜 대통령이 경고장을 날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러나 이런 식의 공포 정치를 통해 여의도와 척을 지게 되면 박 대통령으로서도 이로울 것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검찰을 상대로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점차 확산되고 있다. 박범계 원내대변인이 “(국회가) 이제 본격적으로 검찰 개혁 논의에 나서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풀이된다. 또 강신명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검·경 수사권 조정에 대해 질의하며 경찰 편을 드는 듯한 취지로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각에선 김수창 전 제주지검장 사건을 계기로 검찰을 감시하고 견제할 독립적인 외부 특별기구 신설과 기수 중심의 인사제도 개혁 등과 관련된 파격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검찰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들을 꺼내며 반격에 나선 것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