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 처우 제자리” VS “도크 파묻어야 할 판”
7월 24일 오후 울산 현대중공업 정문안 사거리에서 열린 노동조합 창립 27주년 기념행사에 4000여 명의 노조원들이 참석했다. 노조가 9월 3일 쟁의조정 신청을 하게 되면 본격적인 파업 수순에 돌입한다. 작은 사진은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 전경. 연합뉴스
최회장이 직면한 위기는 현대중공업의 적자만이 아니다. 최 회장의 또 다른 시험대는 노사관계에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995년 처음 무분규 타결에 성공한 이래 19년 연속 노사분규 없이 임단협을 끝냈다. 하지만 최 회장 취임 한 달도 안 돼 무분규 기록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노조·위원장 정병모)은 지난 1987년 설립됐다. 노조는 설립해인 1987년 임단협이 파행으로 치달으며 파업을 벌였고 울산시청을 점거하기까지 했다. 다음해인 지난 1988년은 128일간 파업을 이어갔다. 강성 기조는 1994년을 기점으로 변하게 된다. 그 해 격렬한 파업으로 직장 폐쇄까지 이뤄지는 등 큰 진통을 겪었던 탓이다. 강경 입장으로 치닫던 파업 방침에 의견이 갈린 조합원끼리 다퉈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회사 매출도 급감했다.
1994년 이후 현대중공업 노조 앞에 ‘강성’이라는 타이틀이 떨어져 나갔다. 1995년에는 처음으로 분규 없이 임단협을 마치기도 했다. 그런 현대중공업 노조의 분위기는 무분규 18년 만인 지난해 말 확 바뀌었다. 상징적인 사건은 노조위원장 선거였다. 지난해 10월 강성으로 분류되는 정병모 후보가 위원장에 당선됐다. 정병모 위원장 당선은 현대중공업 회사 측은 물론 노조 측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회사 측도 놀랐지만) 투표한 조합원 사이에서도 정병모 위원장 당선을 두고 놀란 분위기가 있었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정병모 위원장 당선의 원동력인 현대중공업 노조의 불만은 10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노조 관계자는 “10년 전쯤부터 임금이 제대로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 피해자는 10년 전 입사한 사람”이라며 “입사 10년차 노조원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강성 노조라는 꼬리표에 대해 노조 측은 “우리는 현대차에 비하면 강성이 아니다. 일반적인 수준이라고 본다”며 “현대중공업 노조원들 사이에서는 ‘우리가 고분고분하니까 찬밥 신세’라는 분위기가 거세다. 현대가 맏형인 현대자동차가 모범 사례로 언급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현대차는 영업이익이 많기도 하지만 강성 노조가 파업을 진두지휘하며 세를 과시하니 임금 인상폭이 더 크다는 것이다.
최길선 회장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가장 억울한 것은 지난 2009년 이래 4년간의 최대 호황 시기 임금인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009년 국내 기업들은 제2의 IMF라는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달랐다는 것. 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은 이미 받아 놓은 수주가 있었다. 이로 인해 막대한 달러가 들어왔다. 지난 2009년 경제 위기로 인해 달러 가치가 치솟자 내수기업과 달리 현대중공업은 막대한 환차익을 거둘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 2007년 현대중공업의 영업이익은 1조 7506억여 원에서 2008년 2조 2061억여 원으로 껑충 뛰었고, 2009년에는 2조 2222억여 원을 기록했다. 지난 2010년은 현대중공업이 가장 잘나갔던 한 해였다. 2010년 현대중공업은 3조 5636억여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011년에는 2조 6128억, 2012년에는 1조 2846억, 2013년 8019억의 영업이익을 냈다.
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잘나가는 시절에는 처우개선보다는 계열사를 20개가량 늘리는 경영을 하더니, 그 경영의 여파로 회사가 안 좋아지니 또 다시 처우개선이 힘들다고 사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오너인 정몽준 전 의원을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노조 관계자는 “키를 쥔 사람은 정몽준 전 의원이다. 정 전 의원이 여러 단계를 거친 보고만 듣다 보니 현장을 모르는 것 같다. 그가 현장에 와서 직접 봐야 한다”며 “회사의 대주주인 정 전 의원이 결심하면 무엇이든 안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 8월 29일 현대중공업 노조는 ‘2014년 임단투 승리를 위한 조합원 오토바이 경적 시위’를 실행에 옮겼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9월 2일이 코앞이다. 3일 쟁의조정 신청을 하게 되면 본격적인 파업 수순에 돌입하게 된다.
현대중공업 사측은 “협상이나 노조 관련 부분 모두 사측에서 알 수 있는 것이 적어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며 “다만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귀족노조 논란’ 노조 입장은? ‘10년 전이라면 모를까…’ 정병모 노조위원장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조합원 B 씨는 자신의 임금을 공개하기도 했다. 10년차라는 그는 “잔업을 꽉 채웠다고 가정해도 연봉은 5000만 원선”이라며 “10년 전 현대중공업은 귀족 노조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라고 항변했다. B 씨는 “연봉 5000만 원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물가가 비싼 울산이라는 도시를 감안했을 때 이 금액은 많지 않다”며 “울산은 뭘 하든 지출이 많은 도시”라고 덧붙였다. A 씨는 외벌이의 고단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울산은 맞벌이가 거의 없는 도시”라며 “공장이 많은 지역 특성상 여자들이 할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아이가 커 갈수록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임금은 적게 오르고, 따로 돈이 들어올 곳도 없다는 이야기였다. 실제 지난 6월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맞벌이 가구 현황’ 자료에 따르면 맞벌이가 가장 적은 도시는 36.3%를 기록한 울산이었다. 노조 관계자 C 씨는 가장 큰 문제로 기본급이 적은 것을 꼽았다. 그는 “기본급이 적은 것이 가장 문제다. 기본급이 적어 매달 월급 차이가 크고 잔업, 야근, 특근 의존도가 크게 높아졌다”고 밝혔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