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 긴급회동 후 연락두절 ‘뒷거래’ 있었나
▲ 김영삼 전 대통령(사진)의 ‘숨겨진 딸’을 낳았다고 주장하며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했던 이경선 씨가 지난 12월 소를 취하해 그 배경에 관심을 쏠리고 있다. | ||
이 씨는 지난 2005년 9월 ‘YS가 무려 43년 동안 친생 여식 인지를 방기, 모녀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며 김 전 대통령을 상대로 서울가정법원에 친생자 확인소송과 함께 서울중앙지법에 위자료 30억 원 중 1억 원을 우선적으로 청구하는 소송을 낸 바 있다. ‘천륜을 인정하라’는 이 씨의 요구는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YS의 숨겨진 딸의 존재 유무를 둘러싸고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 이 씨의 소 취하로 YS의 숨겨진 딸의 존재는 다시 ‘미제’로 남게 됐다.
그간 변호인을 통해 “유전자 감식을 통해서라도 친자 여부를 밝히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혀왔던 이 씨가 갑자기 소를 취하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12월 20일 이 씨의 대리인이었던 용태영 변호사(78)를 만나 그간의 내막을 알아봤다.
‘자신의 친생자인 여식의 일생을 망친 지도 어언 43년, 이제는 참지 못할 지경에 당도했다. 이 소장을 받고서도 친생자임을 부인한다면 DNA 유전자 감식으로 주○○가 피고의 자식임을 밝힐 수밖에 없다….’
2005년 9월 이 씨 측에서 YS를 상대로 낸 소장 내용의 일부다. 소장의 내용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씨가 소송을 시작한 이유는 ‘핏줄을 외면한 데 대한 한’이다. YS가 대통령 임기를 마친 지 십수년이 지났음에도 ‘침묵’하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던 셈이다.
주위에 따르면 이 씨의 딸 주 씨는 호적입적을 하지 못해 30년 이상을 사생아 신세로 살다 세 번이나 국적과 이름이 바뀌는 기구한 삶을 살아왔으며 이 씨 역시 두 명의 남성과 재혼과 사별을 거듭하는 등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무려 30억 원이라는 거액의 위자료 소송에 대한 세간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특히 이 씨가 그간 대여섯 차례에 걸쳐 21억 5000만 원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도 또 다시 거액의 위자료를 청구한 것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 씨의 ‘의도’에 의구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간 이 씨는 ‘소송을 낸 것은 노후를 보장받고자, 또 가오리의 신분관계 정리를 마치고 출가시켜야 할 의무감으로 출생사실 확인을 받고자 하는 취지’라며 자신의 분명한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소송이 시작된 지 1년 3개월 만에 소는 취하된 상태다. 그 사이에 두 모녀에게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05년 8월 이 사건을 수임해 법적 절차를 진행해왔던 용 변호사는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산더미 같은 소장에 파묻혀 지내고 있었다. ‘법조계의 전설’로 통하는 그는 요즘도 전국을 오가며 사건을 수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9월에는 법조인의 영예로 불리는 ‘명덕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주 아무개 씨의 어릴 적 모습. 사진제공=LA선데이저널 | ||
그는 “가오리(딸 주 씨)가 개입하지 않은 상황에서 이 소송은 위자료 소송의 성격을 띨 뿐 친자확인소송이 될 수 없었다”는 말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친자확인 소송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모친인 이 씨가 아니라 소송 당사자 격인 주 씨가 직접 나서서 DNA 검사를 해야 했다는 말이다. 이 씨가 처음 용 변호사를 찾아왔을 때도 이 씨는 딸 주 씨를 설득해 소 당사자로 끌어들일 수 있다고 자신했고, 용 변호사는 본인이 나설 경우 ‘승산’이 있다고 판단해 사건을 수임하게 됐다는 것이다.
용 변호사는 이 씨에게 “위자료라면 과거에 이미 받을 만큼 받지 않았느냐. 지금 와서 거액의 위자료 소송을 하면 승산이 없다. 핵심은 친생자 여부를 가리는 것이지 위자료 소송이 아니다라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씨의 말과는 달리 딸 주 씨는 사건에 개입하려 하지 않았다. 이유는 이들 모녀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용 변호사는 “모녀 간의 앙금이 심각할 정도였다”면서 그 배경 중 하나로 금전 문제를 꼽았다. 과거 이 씨가 YS로부터 받았다는 돈 문제 때문에 두 모녀 사이가 틀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이 씨는 그간 주 씨의 양육비와 생활비 등을 목적으로 YS로부터 총 21억 5000만 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씨가 이 돈의 상당 부분을 양아들의 사업비용과 자신의 빚을 갚는 데 소진하고 아무 계획 없이 쓰는 바람에 정작 주 씨에게 사용된 돈은 1억 5000만 원에 불과했다는 것.
딸 주 씨는 이 씨가 자신을 빌미로 거액을 받았음에도 자신에게 돌아온 혜택이 별로 없다는 사실에 분노했고 이로 인해 모녀관계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특히 주 씨는 40세가 넘도록 혼인도 못한 채 빠듯하게 살아가는 자신의 기구한 처지를 모친인 이 씨의 책임으로 여겼던 듯하다. 주 씨는 이 씨의 이번 소송이 자신의 친자확인을 빌미로 대가를 챙기려는 행태로 인식하고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딸 주 씨가 나서지 않자 이 씨는 다급한 마음에 2005년 11월 주 씨를 만나러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러나 며칠 만에 어렵게 만난 주 씨의 첫마디는 “여긴 뭐하러 왔냐”였다고 한다. 친자확인 소송과 관련해 설득을 했지만 주 씨의 반응은 싸늘했다고 한다. 딸의 냉담한 반응에 이 씨는 결국 쫓겨오다시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주 씨의 반응에 절망한 이 씨는 용 변호사에게 발을 동동 구르며 ‘큰일났다’며 읍소했다고 한다. 생각 끝에 이 씨는 최후의 수단으로 딸에게 서신을 써서 보내줄 것을 용 변호사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딸 주 씨가 어머니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접고 친자확인 소송 당사자로 나서게끔 마음을 돌려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용 변호사는 ‘소송 당사자로 나서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시집을 가겠다고 하지 않았나. 어머니를 믿지 못해 소송에 나서지 않는 것을 안다. (승소할 경우) 내가 돈을 받아서 당신에게 직접 주겠다’는 내용의 서신을 써서 보냈다는 것.
그러나 두 달이 지나도 주 씨로부터는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지난 1월 이 씨에게 주 씨로부터 갑작스레 서신이 왔다. 항공권과 교통비 등 넉넉한 자금과 함께 ‘할 말이 있으니 급히 들어오라’는 내용이었다. 이 씨는 딸이 소송에 나설 결심을 했다고 판단, 급히 출국했고 용 변호사는 딸 주 씨가 직접 들어오지 않을 경우에는 영어·중국어·일본어·한국어 등 4개 국어로 위임장을 받아오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 어머니 이경선 씨의 모습. 사진제공=LA선데이저널 | ||
그러나 용 변호사는 이를 거절했다. 이 무렵 용 변호사는 그간 지켜봐온 결과 이 씨에 대한 신뢰가 무너져버린 상태였다고 전했다. 용 변호사는 “나 모르게 이들 모녀 사이에 분명 어떤 얘기가 오갔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소 취하에 관한 것으로 추측했다고 한다.
용 변호사는 빠듯하게 겨우 생계를 꾸리던 딸 주 씨가 갑자기 목돈과 비행기 티켓을 보내면서까지 이 씨를 급히 불러들인 이유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냈다. 주 씨에게 갑자기 큰돈이 생겼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할 말 없으니 돌아가라’고 냉담한 반응을 보이던 주 씨가 두 달 전과 달리 이 씨를 갑작스레 불러들인 것은 변호인의 입장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만약 용 변호사의 서신을 받고 마음을 돌린 것이라면 즉시 입국하거나 위임장을 보내겠다는 의사를 전달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씨는 보름간이나 연락 두절 상태로 있다가 ‘3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이는 이 씨가 딸 주 씨로부터 송사와 관련된 ‘어떤 말’을 들었음을 시사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와 관련해 ‘상도동’ 측에서 주 씨에게 유·무형의 압력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도움이 있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얘기가 나오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상도동 측은 이번 소송에 대해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확실히 단언할 순 없지만 정황상 상도동 측에서 가오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물밑접촉에 들어가지 않았나 싶다”는 것이 용 변호사의 조심스런 의견이다. 용 변호사의 서신을 받고 주 씨의 마음이 동하자 이를 알게 된 상도동 측에서 주 씨와 직접 접촉하지 않았겠냐는 것. 일각에서는 상도동 측으로부터 무언가 언질을 받은 주 씨가 어머니 이 씨에게 ‘소 취하’를 요구했을 것이고 모녀 간에 어떤 합의점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이 씨가 용 변호사에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을 거라는 추측도 내놓고 있다.
이 씨가 용 변호사에게 요구한 3개월의 시간 동안 모녀 사이에, 아니면 주 씨 혹은 이씨와 상도동 측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용 변호사는 돌아가는 정황상 주 씨가 이 사건에 절대로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하에 이 씨 측에 3월 2일부로 사임을 통보, 사건에서 손을 뗀 상태다. 의뢰인을 더 이상 믿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사임에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사건을 맡고 있던 당시 용 변호사는 이 소송에 대해 “그동안 설로만 떠돌아 논란만 증폭시키던 ‘YS의 친자’에 대한 법적 확인 절차가 시작됐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용 변호사가 사임하자 이 씨는 또 다른 변호인을 찾아나섰고 어렵사리 사건을 수임한 아무개 변호사가 조정에 나섰지만 쌍방 의견이 너무도 팽팽했다는 후문. 결국 조정은 성립되지 않았고 그후 지난 12월 초 이 씨 측의 소 취하가 이뤄지게 된 것이다.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YS 친자 논란은 결국 이 씨 측이 송사를 포기함으로써 수면 아래로 다시 가라앉게 됐다. 그동안 진실 유무를 떠나 숨겨진 자식에 대한 루머로 적잖이 골치를 썩어왔던 YS 측도 한시름 놓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씨가 소를 취하하게 된 진짜 이유 및 배경을 두고 여전히 뒷말이 무성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 씨와 딸 주 씨, 그리고 상도동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