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이룬 기적 이젠 어른들이 지켜야죠”
최약체로 평가받던 팀을 이끌고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이란 기적을 일군 박종욱 한국대표팀 감독.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리틀야구 대표팀이 미국에 머무는 동안 미리 섭외를 한 덕분에 선수단이 귀국한 다음날인 8월 27일, 박종욱 감독과 2명의 코치를 장충리틀야구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전날 밤 늦은 시간의 귀국으로 인해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들은 그래도 행복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리틀야구대표팀을 우승으로 이끈 박종욱 감독을 만나본다.
먼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이번 월드시리즈에 참가한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은 서울지역 선수들로 구성되었다. 국내 선발전에서 서울권역 선발팀(인천 포함)이 경기, 남부(서울, 인천, 경기를 제외한 전지역)권역 선발팀들을 제치고 한국 대표로 아시아-퍼시픽 지역 예선에 출전, 우승을 차지했다. 덕분에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출전권(아시아-퍼시픽 대표)을 따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윌리엄스포트 라마데 경기장에서 벌어진 월드시리즈에 출전했다가 29년 만에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박종욱 감독은 동대문리틀야구를 이끄는 감독이다. 중앙고와 영남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프로에 지명받지 못하는 바람에 곧장 은퇴를 했다고 한다. 동기들로는 김선우 장성호 서재응 등이 있다. 은퇴 후 곧장 덕수중에서 코치를 시작하며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성동초 코치를 거쳐 광진구 리틀야구-동대문 리틀야구를 맡으며 유소년 야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박 감독은 월드시리즈 우승보다 한국 대표팀을 뽑는 선발전이 더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서울과 경기, 남부권 지역 대표팀들이 각각 경기를 치른 후 최소 실점을 한 팀이 대표팀으로 뽑히는 형식이었다. 그런데 그 세 팀 중에서 서울팀이 가장 전력이 약했다. 처음 경기와 맞붙어 2-1로 졌고, 경기와 남부가 붙어 남부가 이겼다. 그런 상황에서 남부랑 서울팀 경기에서 가까스로 이겼고, 최소 실점 3점 차이로 극적 승리를 이겼다. 세 팀 중 탈락 후보 1순위였던 서울 올스타팀이 한국 대표팀 자격으로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퍼식픽 지역 예선에 참가했고, 번번이 한국의 발목을 잡았던 대만을 물리친 끝에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출전권(아시아-퍼시픽 대표)을 따냈다.”
월드시리즈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나이 제한이 있다. 2001년 5월 1일 이후에 태어난 선수들로 만 12세 이하만이 참가할 수 있다.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2001년 4월 30일에 태어난 선수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다.
“남부권 올스타팀과 경기권은 훌륭한 선수들이 차고 넘쳤다. 서울권 올스타팀은 잘하는 선수가 약 10명 정도 되고, 나머지 3명 정도는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즉 제대로 된 라인업을 짜기가 어려울 만큼 선수 구성에 빈틈이 많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시아-퍼시픽 지역예선을 치르며 몰라보게 달라지더라. 특히 최해찬은 지역 예선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해도 실력을 인정받지 못한 3명 중 1명이었다. 그러나 월드시리즈 기간 동안에는 주장 황재영과 함께 한국팀의 마운드와 타석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일등 공신이었다. 이렇듯 13명의 선수들이 경기를 거듭할수록 한국 선발전 때와는 확연히 차이나는 기량을 선보였다. 하루 아침에 실력이 성장했다고 보기보다는 큰 대회에서 위축되지 않고 즐기면서 자신들의 실력을 마음껏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1939년 미국 펜실베니아 윌리암스포트 소재 유소년야구 3개 팀이 ‘품성, 용기, 정직’을 구호로 내걸고 리그를 시작한 이래 1947년 미국 전역에서 출전한 소년야구팀들이 자웅을 겨루는 제1회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로 성장했다. 그러다 주최측이 해외 리틀야구 대표팀의 참가를 허용하며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진정한 의미의 ‘월드시리즈’가 됐다. 이번 대회는 지역 예선을 통과한 미국 8개 지역 선발 대표팀과 국제 8개 지역 선발 대표팀(아시아-퍼시픽, 캐나다, 멕시코, 호주, 카리브해, 라틴 아메리카, 유럽-아프리카, 일본)이 각각 미국그룹과 국제그룹으로 조를 나눠 경기를 진행했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스포츠 전문채널 ESPN에서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했고, 준결승과 결승전은 지상파 4개 방송국 가운데 하나인 ABC에서 독점 생중계했다. 덕분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와 류현진도 어린 후배들이 낯선 미국 땅에서 벌인 감동의 드라마를 직접 시청했다는 후문이다
박종욱 감독은 아시아-퍼시픽 지역예선을 잡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솔직히 앞으로 다가올 리틀리그 월드시리즈가 어느 정도의 규모와 감동을 선사할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그저 29년 만에 한국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시리즈에 참가한 데 대해 더 큰 의미를 두었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무대라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 도착해보니까 한적한 시골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대회를 직접 보러 온 관광객들과 사람을 압도하는 경기장 분위기 등이 장난이 아니었다.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 대부분 미국 방문이 처음이었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대회장에 도착했고, 숙소에서 짐을 푼 이후 갑자기 현실이 느껴지면서 두렵기까지 했었다.”
개막식 전날 선수들은 카퍼레이드를 경험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이라 이 조용한 곳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겠나 싶었지만, 카퍼레이드가 시작하자 거리에는 약 4만 명 가량의 사람들이 몰려나와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며 함성을 질렀다고 한다.
“선수들을 태운 트럭이 5km 정도의 거리를 지나가는 데에만 2시간이 걸렸다. 거리의 사람들은 선수들에게 사탕을 던져주고 각 나라의 국기를 흔들며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우리 선수들은 고사하고 나도 태어나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오후 2시부터 경기가 열리면 오전 10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어느 순간 내 마음 속에는 승리에 대한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미국에 도착할 때만 해도 1승이나 2승만 올려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대회 규모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직접 보고 느끼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코리아의 자부심을 제대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개막전이었던 체코와의 경기에서 치열한 승부를 벌일 수 있었다.”
한국 리틀야구대표팀은 유럽 대표팀 체코를 맞아 3-3 동점까지 내달리다가 벤치의 노련한 작전과 선수들이 투타에서 신기에 가까운 플레이를 펼치는 바람에 10-3으로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감동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경기장에서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찬호까지 직접 현장에서 관전한 강호 푸에르토리코와의 경기는 5회까지 1-5로 지고 있다가 4-5까지 따라 붙은 6회 초, 위에서 언급한 최해찬이 무사 1, 3루 상황에서 우전 안타를 터뜨려 5-5 동점을 이끌었다. 이때 3루 주루코치를 맡은 박종욱 감독은 1, 3루에 있는 선수들에게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작전을 지시했다. 바로 더블 스틸이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루 주자 최해찬은 일부러 한 박자 늦게 도루를 시도했고, 푸에르토리코 포수는 당연히 2루로 송구했다. 도루가 실패한 것처럼 보였지만, 1루 주자 최해찬이 런다운에 걸린 척하며 오락가락할 때 3루 주자 윤진혁(대주자)이 홈으로 달려들었다. 그 순간 푸에르토리코 내야진은 홈 송구는 고사하고, 2루 베이스를 밟는 최해찬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6-5, 대역전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한국 선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숙적 일본과는 두 번이나 맞대결을 펼쳤다. 일본에는 일본 리틀야구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다카하시 다쿠마가 존재했다. 한국대표팀으로선 다카하시를 제대로 공략해야 결승에 오를 수 있었다. 결과는 한국이 이겼고, 일본은 패한 후 패자부활전을 거쳐 다시 국제그룹 결승에서 한국과 맞붙었지만, 한국은 투구수 제한을 유리하게 이용한 반면, 일본은 그 계산에 실패한 나머지 결승에서 그들의 자랑인 다카하시를 마운드에 올릴 수 없었다.
“리틀리그 월드시리즈는 어린 선수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투구수 20개 이하일 땐 연투 가능, 21개서부터 35개는 하루 휴식, 36개서부터 50개는 이틀 휴식, 51개서부터 64개는 사흘 휴식, 66개부터 85개(한계 투구)는 나흘을 쉬도록 강제 규정해 놓았다. 패한 팀은 승리한 팀보다 패자부활전을 통해 올라와야 했기 때문에 주력 투수들의 투구수 제한 규정을 잘 이해해야만 했다. 그런데 일본은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다카하시를 무리하게 등판시켰다가 투구수 제한에 걸려 이후 국제그룹 결승전에서는 다카하시를 출전시킬 수 없었다. 일본의 패인은 아마도 그 부분이 아닐까 싶다. 투구수 제한 말이다.”
한국과의 1차전에서 패한 일본대표팀 숙소는 눈물바다를 이뤘다고 한다. 그런데 2차전에서마저 패한 다음부터는 한국팀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는 후문이다.
“이전의 한일 대표팀 선수들이 아니었다. 2차전이 끝난 후론 서로의 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아주 친하게 어울렸다. 일본 선수들은 미국과의 결승전에 나선 한국대표팀을 위해 우리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 나와 열심히 응원전을 펼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감동이 물밑 듯했다.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감독은 결승전은 이전 경기들보다 오히려 더 수월하게 치렀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완전히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고, 자신감이 하늘을 뚫을 기세라 자신은 오히려 선수들이 흥분하지 않고 침착하게 경기를 치를 수 있게끔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고 몸을 낮춘다.
“결승전에서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어렵다는 일본도 꺾었는데, 미국은 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물론 중심 타선에서 엄청난 타격감을 뽐내는 팀이라 방심했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었지만 아이들에게 약간의 긴장감과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져도 좋다. 대신 후회 없이 해보자’라고 얘기했는데, 아이들은 지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웃음).”
29년만의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안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선수들은 우승 세리머니로 우사인 볼트의 번개 세리머니를 흉내 내며 기자들에게 깜짝쇼를 선보였다. 국민들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월드시리즈에서 보인 드라마같은 역전 승부에 열광했고 감동했다. 하지만 박 감독은 또 다시 현실과의 싸움 앞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우승을 하고 돌아왔지만 리틀야구의 현실은 그대로다. 전국에 7개의 리틀야구장이 있지만 서울은 장충리틀야구장 외엔 단 한 곳도 없다. 팀들마다 각 학교의 운동장을 빌려 쓰며 여기저기로 옮겨 다니는데 이젠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것도 지쳤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우승에 도취하지 말고 힘 있는 정부와 야구인들이 나서 아이들을 위해 리틀야구장 건립에 적극 힘써주길 바란다. 공부를 병행하는 아이들이 제대로 뛰고 달릴 수 있는 야구장이 세워질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 같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뒷이야기 #두 공중파의 치열한 중계 싸움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한국대표팀이 참가할 때만 해도 방송사는 물론 언론사에서도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박종욱 대표팀 감독이 미국으로 출국할 때 단 한 명의 기자도 인천공항에 나오지 않았다고 말할 만큼 철저히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이 전승 가도를 달리며 일본과의 1차전에서 승리를 거두자, 24일,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국제그룹 결승전에서 맞붙는 한일전을 앞두고 SBS 스포츠와 MBC 스포츠플러스에선 발 빠르게 생중계를 준비했다. SBS측에선 미국의 에이전트를 통해, MBC 스포츠플러스 측에선 미국의 ESPN과 접촉에 나섰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SBS 스포츠에선 23일 프로야구 중계에 ‘단독’이라는 문구와 함께 리틀야구 생중계 관련 안내 자막을 내보냈고 심재학 넥센 코치 등 해설위원 섭외까지 나섰다. 그러나 실제 중계는 MBC스포츠플러스에서만 진행됐다. 이유가 무엇일까. 당시 양측의 협상 과정을 전해 들었던 리틀야구연맹의 한 관계자는 “SBS에서는 에이전트 섭외를 잘못하는 바람에 레터 전달에 실수가 있었던 것 같고, MBC에선 ESPN과 직접 협상에 나서 시간을 다투는 싸움에서 중계권을 따올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SBS에서는 단독중계라는 자막까지 내보내며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생중계를 대대적으로 광고했다가 결국엔 중계가 되지 않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셈이 됐다. 또한 SBS스포츠에서 섭외했던 심재학 코치는 MBC스포츠플러스에서 리틀야구 생중계에 해설위원으로 참여했다. 심 코치는 1985년 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서 한국대표팀 선수로 참가, 우승을 거머쥔 주역이었다. #박찬호보단 류현진이 더 좋은 리틀야구 선수들 한국 리틀야구 대표팀이 지난 18일 깜짝 스타를 만났다. 전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월드시리즈 현장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이날 시구자로 예정돼 있어 LA에서 후배들을 만나기 위해 기꺼이 펜실베니아까지 날아갔다.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감동을 전해주려 노력했지만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에 의하면 어린 선수들은 박찬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후문. 그들은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류현진 추신수는 알아도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올린 화려한 성적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참고로 류현진은 자신의 통역을 돕는 마틴 김을 통해 리틀야구 후배들에게 용품과 싸인볼, 그리고 모자 등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한다.[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