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 중엔 ‘무리수’ 안둔다고?
최태원 회장. 임준선 기자
그런데 SK㈜는 지난 자사주 매입 때도 현금이 부족해 사실상 회사채까지 발행해 자금을 충당했다. 지난 5월 30일 SK㈜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제263-1회 및 제 263-2회 회사채 투자설명서를 보면 “자기주식을 취득할 목적으로 보유 현금을 사용했으며 이에 따라 상시 보유 현금 수준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기주식 취득 대금 중 2500억 원을 회사채 발행을 통해 운영자금으로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SK㈜의 자사주 매입 발표 이후 주가는 급등하고 있다. 3760억 원으로 235만 주를 사들이려면 평균 매입단가가 16만 6000원 아래여야 한다. 지금처럼 주가가 높으면 적게는 수백억 원, 많게는 1000억 원 가까이 더 필요할 수 있다. 또 빚을 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굳이 빚을 내면서까지 자사주를 매입하다 보니 그 배경을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이 SK C&C와의 합병 사전 정지작업이다. SK그룹은 지주사인 SK㈜를 최태원 회장이 직접 지배하지 않고 SK C&C를 통해 간접 지배한다. 이 때문에 양사 간 합병을 통해 지배구조를 단순화시키고 최 회장의 그룹 지배력도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익명의 펀드매니저는 “최근 SK C&C 주가는 급등한 데 반해 SK㈜ 주가는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이대로 양사가 합병하면 SK㈜의 대주주(지분율 7.13%)인 국민연금은 상당히 불만일 수밖에 없다. 자사주를 매입해두면 추후 지배력 강화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결국 2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달래고 향후 지배구조도 강화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지난 5일 종가기준으로 SK㈜가 SK C&C를 합병할 경우(1 대 1.34755) 합병법인 지분율은 최 회장이 19.41%,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6.19%, 자사주 16.85%가 된다. 그리고 이 합병법인을 다시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주주구성이 동일하게 기업을 둘로 분할)하면 새 지주회사의 최 회장 지분율은 33.51% 이상, 최 이사장 지분율은 10.69% 이상이 된다. 그리고 이 새 지주회사는 분할회사 지분을 42.45% 이상 보유할 수 있다. 현재 최 회장의 SK C&C에 대한 지배력이 그대로 새 지주사에 대한 지배력으로 바뀌면서 새 지주사 아래에 SK C&C를 재편시키는 효과가 발생하는 셈이다.
한 가지 걸림돌은 있다. SK C&C가 최대주주인 SK증권이다. 비금융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소유할 수 없는 현행 법체계상 SK㈜와 SK C&C가 합병할 경우 SK증권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러나 SK C&C가 가진 SK증권 지분 10%의 가치는 340억여 원에 불과하다. 최 회장이나 일가가 개인 자금으로도 충분히 매입할 수 있다.
최근 SK㈜는 SK C&C와의 합병설에 관한 조회공시에 부인하는 답변을 내놓았다. 최 회장이 영어의 몸인 상황에서 그룹 후계구도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양사 간 합병을 단행할 경우 ‘감옥에서까지 재산에 집착한다’는 비판에 직면, 보석이나 사면의 가능성을 더욱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SK㈜가 적어도 최 회장 수감 중에는 무리하게 합병을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