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급 뱅커 VS 내부 실력자 ‘안갯속’
KB금융지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는 앞으로 세 차례 정도 더 회의를 열고 복수의 회장 후보자를 확정한 뒤 10월 말 최종 후보자를 정하기로 했다. 사진은 KB국민은행 본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KB금융지주는 지난 9월 19일 이사회를 열어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를 구성하고 해임된 임영록 전 회장의 후임 선임 절차에 들어갔다. 이날 열린 첫 회추위는 김영진 사외이사를 위원장으로 선임했고, 1주일 뒤인 26일 열린 두 번째 회의에서는 후보 선발 원칙 등을 정했다.
회추위에서 가장 먼저 논란이 된 사안은 신임 회장의 임기다. 새 회장이 2016년 7월까지인 임 전 회장의 남은 임기를 이어받을지, 아니면 새롭게 3년 임기를 시작할지 고민이 깊다. 갑론을박이 오갔던 금융지주 회장의 은행장 겸임 여부는 당분간 분리체제를 유지키로 잠정결론을 내렸다. 일단은 새로운 회장 선임에 집중한 뒤 나중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회추위는 앞으로 세 차례 정도 더 회의를 열어 복수의 회장 후보자를 확정한 뒤 10월 말 최종 후보를 정하기로 일정을 잡았다. 초미의 관심사인 차기 회장에 관해서는 원칙적으로 두 부류의 인물군이 후보에 포함된다.
일단 ‘최고경영자(CEO) 승계 프로그램’에 따라 KB금융 계열사 상무 이상 임원들에 잠정 후보군 자격을 준다. 여기에 헤드헌팅 업체 등이 추천하는 외부 후보를 포함해 서면평가, 평판조회, 심층면접 등을 거쳐 후보군을 좁힌다.
‘낙하산’ 논란 때문에 우선순위에서는 다소 밀리고 있지만 중량감 면에서는 결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외부 출신 거물급 뱅커들이 주목받고 있다.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 우리은행장을 지낸 이종휘 미소금융재단 이사장, 신한은행 출신인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등이 하마평에 오른 인물들.
이들은 모두 30년 넘게 은행에 몸 담았던 데다 재임기간 각자가 이끌던 은행이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리더십을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비록 외부 출신이지만 금융에 관한 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전문가들이자, 업계 원로인 만큼 이들은 KB금융 회장 후보로 손색이 없다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세 사람 가운데 이종휘 이사장과 이동걸 전 부회장이 근소하나마 앞서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은행원부터 시작해 최고위층 자리에 오른 만큼 금융 조직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금융당국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왔다는 점에서 흐트러진 KB금융을 추스를 적임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두 사람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창에다 한일은행 입행 동기라는 인연도 갖고 있다.
이들 세 사람은 모두 차기 KB금융 회장으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이들은 “현안이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인 만큼 아직 거론할 단계가 아니다”며 “순리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국민은행 노조는 내부 인사 중심으로 차기 회장 선임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종현 기자
KB금융 내부 인물로는 윤웅원 KB금융지주 부사장,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 등이 유력 후보군으로 꼽힌다. 윤 부사장의 경우 회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만큼 이번 사태를 잘 마무리하면 ‘직무대행’ 꼬리표를 뗄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된다. 비상상황을 연착륙시키는데 성공한다면 내부 조직과 금융당국의 신뢰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김옥찬 전 부행장도 뒤지지 않는 유력주자다. 금융공공기관 CEO로 거론될 만큼 당국의 신뢰가 두텁다는 평을 듣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레이팅스의 부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국제감각을 갖췄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이밖에 계열사 사장 출신인 정연근·이달수 전 KB데이터시스템 사장 등의 이름도 거론되지만 금융지주 회장 후보로는 다소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도 있다.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당국이 또 다른 낙하산을 내려 보내는 자충수를 둘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정권창출 등에 공을 세워 보은인사를 해줘야 하는 인물들이 여전히 대기 중인 만큼 이들의 임명을 밀어붙일 수 있다는 예상이다.
하지만 금융권은 이에 대해 ‘설마’ 하며 고개를 가로젓는 분위기다. 한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KB금융이 난장판이 된 것은 낙하산 때문이 아니냐”고 반문하며 “이를 수습해야 하는 마당에 그런 어리석은 선택을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민은행 노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성낙조)가 변수로 떠올랐다. 노조는 외부 출신 중 회장 후보로 거론되는 조준희 전 은행장, 이동걸 전 부회장, 이종휘 이사장 등에게 KB금융의 상황과 내부인사 출신 중용의 중요성을 담은 편지를 보내 “용단을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사실상 후보 사퇴를 요구한 셈이다. 노조 측은 적합한 후보가 누군지는 검증을 거쳐야 하겠지만, 일단 내부 인사를 중심으로 차기 회장 선임이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회장 선임 당사자인 회추위에도 강력한 압박을 가하고 있다. 노조 측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통해 차기 회장을 선임하는 일이야말로 KB금융그룹 사외이사들의 마지막 본분임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공정하지 못한 결과가 나올 경우 사외이사 해임을 추진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렇듯 KB금융 차기 회장 선임은 아직은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안개가 걷혀갈수록 논란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