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비노 충돌… ‘평형수’ 줄줄 샌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30일 정치혁신실천위원회의 1차회의에서 혁신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여론은 이미 우리 편이다. (야당이) 본회의장에 들어올 수밖에 없지 않겠나.”
지난 9월 30일 2시. 본회의장에 들어서기 전 한 새누리당 의원이 한 말이다. 이에 앞서 27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여당만 참여한 본회의를 산회하고 30일 본회의를 마지노선으로 야당에 기회를 줬다. 당내에서는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더 이상 국회 일정을 지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던 것에 비해 강경파인 문재인 정세균 의원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이며 갈등을 겪었다.
정세균 의원은 30일 오전 비대위 회의에서 합의안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히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지만 문 의원은 지켜보기만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날 오후 이완구 박영선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을 극적 타결하며 본회의는 정상화됐다.
여야 원내대표의 합의안에는 기존 2차 협의안을 그대로 수용하되 특검 후보의 경우 여야 합의로 4인의 특검 후보군을 추천하기로 하고 유가족의 참여는 추후 논의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이 합의안이 “새누리당의 승리”라는 아쉬움과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측근인 한 초선 의원은 “지금 상황에서는 다들 합의를 보고 국회로 들어가는 것이 옳다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박 전 원내대표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 내용은 아쉬움이 많다. 오히려 2차 합의보다 후퇴했다. 전략이 실패해 새누리당이 원하는 대로 해준 꼴이 됐다”면서도 “박 전 원내대표도 억울한 부분이 많다. 지금 비대위는 정세균계와 친노계가 꽉 잡고 있다. 협상 등이 틀어지자 박 전 원내대표를 밀어줬던 초·재선들이 대부분 그쪽으로 옮겨갔다”고 귀띔했다.
박 전 원내대표도 지난 2일 사퇴의사를 밝히며 당내 계파싸움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직업적 당 대표를 위해서라면 그 배의 평형수라도 빼버릴 것 같은 움직임과 일부 극단적 주장이 요동치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며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한 지금 우리 당이 겪고 있는 고통은 치유되기 힘들다는 것을 어렵사리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친노계 수장인 문재인 의원도 이번 세월호 특별법 합의에서 어느 정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가족 단식에 참여하면서 세월호 특별법의 중심에 섰던 그다. 하지만 문 의원은 합의 이후 “세월호 특별법은 우리 당이 패배했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선을 긋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렇게 평가했다.
“문재인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1년여 휴식기를 가졌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단식에 참여하며 정치 중앙으로 복귀했다. 문 의원이 나서면서 당이 장외투쟁으로 넘어가기도 했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도 최대 계파인 문 의원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상돈 비대위원장 선임 문제도 문 의원과 논의하지 않았나. 비대위 자체에서도 받아들여야 하는 분위기인데 문 의원이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비판하는 것은 박 전 원내대표와 차별화를 둬 자신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다.”
차기 원내대표로 비노계에서는 이종걸·김동철 의원 등이, 친노계는 우윤근·최재성 의원(왼쪽부터) 등이 거론되고 있다.
당권을 노리는 정세균 의원도 세월호 특별법에 있어 강경한 스탠스를 취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정 의원이 문 의원과 달리 세월호 참사 문제와 거리감이 있어 크게 불리할 만한 입지는 아니라고 보고 있다. 거꾸로 당내에서 정 의원의 행보에 대해 전략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의 새정치연합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활동하지 않던 정 의원이 갑자기 비대위에 들어와서는 선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라며 “정작 중요할 때는 왜 조용했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비대위 내에서 비주류를 대표하는 박지원 의원은 든든한 지지기반을 잃게 됐다. 박지원계로 분류되는 박영선 의원이 원내대표와 비대위원장을 동시에 맡을 당시까지만 해도 박지원 의원의 당권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했다. 비대위원인 인재근 의원의 김근태(GT)계는 아직 공식적인 당권주자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비대위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결국 박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비대위 내에서 강경파의 힘이 더 강화된 셈이다.
김한길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비대위원직을 고사하며 조용했던 비주류계의 반격도 시작됐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특별법 합의로 오는 9일 차기 원내대표 선거부터 시작해 세월호 특별법 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선정 등의 일정을 남겨두고 있다. 비주류 대표 모임으로는 지난 9월 ‘문희상 비대위’가 꾸려지자 비주류 인사들이 친노가 중심이 된 비대위에 맞서 결성한 ‘구당구국 모임’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해당 모임에는 정대철 이부영 정동영 천정배 등 원외 인사들과 추미애 이종걸 강창일 주승용 문병호 노웅래 등 20여 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현재 차기 원내대표로 비노계에서는 이종걸 김동철 의원 등이, 친노계는 우윤근 최재성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어 주류-비주류 간 격돌이 예상된다.
앞서의 정치평론가는 “그동안 혁신을 이루지 못한 야당에서는 전당대회 때 강한 야당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결국 당권주자들은 ‘강한 야당’에 맞는 강경한 행동으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며 “세월호 특별법도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하는 용도로 사용해 한 목소리로 강하게 나갈 것이다. 비주류들은 문재인 의원의 세월호 특별법 책임론 등을 들며 계속 비토를 놓아 자신들이 들어갈 자리를 마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다영 기자 lata13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