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나라는…왜 있는 겁니까”
대법원이 지난해 1월 오원춘(44)에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과 별도로 유가족 4명이 국가를 상대로 3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것은 경찰의 부실수사 책임을 묻기 위해서였다. 오원춘에 납치돼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급박한 상황에서 피해자인 곽 아무개 씨(여·당시 29)는 경찰에 필사적으로 신고를 했는데도 출동한 경찰은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다. 경찰은 피해자와의 통화가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추후 피해자와 경찰의 통화 시간이 7분가량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오원춘이 피해자를 집으로 끌고 가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TV를 확보하고도 1주일 넘게 분석하지 않은 부실수사 정황도 드러났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 곽 씨 사망에 대한 위자료와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를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가가 유족에게 1억 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지난 3일 서울고법 민사8부(부장판사 이규진)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잘못은 있지만, 이 정보가 제대로 전달됐더라도 피해자가 무사히 구출될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생존해 있는 피해자를 발견했더라도 오원춘의 난폭성과 잔인성을 고려하면 생존 상태에서 구출할 수 있었을지 여부도 장담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국가가 피해자의 사망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볼 수 없다”면서 피해자의 사망으로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위자료는 인정하지 않고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청구만 받아들여 국가배상금을 2130만 원으로 낮췄다.
2012년 4월 1일 오원춘 사건 당시 현장을 조사하는 과학 수사팀의 모습.
‘오원춘 사건’ 유가족들의 심리치료를 맡았던 경기대 공정식 교수는 “유가족들이 국가책임에 대한 부분이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유가족들이 상고할 것으로 알고 있다”며 “피해자 유가족 입장에서는 돈이 중요하지 않다. 이 경우 피해자가 굉장히 잔혹하게 살인을 당했다.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하더라도 공황상태와 우울상태가 일정기간 지속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피해자 곽 씨의 가족은 지난 3년 가까운 시간을 고통 속에서 지냈다. 곽 씨의 부모는 사건 이후 생업을 포기했고, 언니는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살던 동네에서 이사를 했다. 곽 씨의 남동생은 제대 후 복학을 포기하고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공정식 교수는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에 대한 국가의 피해구제도 충분한 것은 아니지만 살인 강도 방화 치사와 같은 강력범죄 피해자들은 구제 범위의 사각지대에 있다. 피해자가 사망하고 나면 피해 실체가 없다는 이유로 구제를 받기 어려워진다”며 “범죄 이후 고통과 분노가 가족들에게 이어지지만 이들을 구제할 시스템은 굉장히 미비하다. 이 때문에 소송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공정식 교수는 이번 판결에 대해 “훈련되지 못한 112의 대응으로 신고를 한 피해자를 구제하지 못한 중대한 과실이 있다. 하지만 ‘출동해도 사망했을 것’이라는 이번 판결은 경찰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범죄를 예측해서 예방하지 못하고 신고해도 구조할 수 없다면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할 명분도 없다.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형사사법기관의 책임을 묻고 충분한 배상이 됐더라면 경찰도 경각심을 가지게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
‘무기징역’ 오원춘 근황 ‘빠삐용 요새’ 수감… 감방 동기들 사이 ‘왕따’ 지난해 1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된 오원춘(44)은 현재 경북북부제1교도소(청송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청송교도소는 아동 성폭행과 살인 등을 저지른 흉악범죄자나 다른 교도소에서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킨 요주의 수형자들이 수용돼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현재 김길태와 조두순, 신창원 등 악명 높은 수형자들이 이곳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오원춘은 청송교도소로 이감된 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 아무 작업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원춘은 사건 발생 전 일용직을 전전하면서도 근태문제로 고용주와 잦은 갈등을 보였다. 실제로 오원춘은 수감 중에도 강제작업을 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히 근태문제는 아니었다. 청송교도소 관계자는 “오원춘이 초범이라 하더라도 부도덕한 범행수법과 가장 나쁜 죄인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때문에 수용자들의 비난이 있었다”며 “오원춘이 사형을 면한 것은 다행으로 생각했을지는 몰라도 큰 죄를 저질렀다는 자격지심이 있는지 수용자들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했다. 수감자들도 함께 작업하는 것을 꺼리고 언어 등의 문제도 있어 현재는 작업 등에 동원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원춘은 작업에 동원되지 않는 것 외에는 규칙적인 식사와 하루 1시간 정도의 운동은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청송교도소 관계자는 “젊은 수감자의 경우 공부를 원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원춘은 딱히 원하는 교육은 없다고 했다. 운동을 한 시간 정도 하는 것은 규율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청송교도소는 열악한 교통수단과 요새와 같은 지형에 위치해 탈옥이 불가능한 ‘빠삐용 요새’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 2010년 8월 지역 이미지의 훼손을 우려한 주민들의 명칭 변경 요구를 수용해 경북북부교도소로 이름을 변경한 바 있다. [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