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하면 ‘컴백홈’ 중국 빨대 ‘경계령’
EXO의 또 다른 중국인 멤버 레이는 SNS를 통해 “루한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응원의 글을 남겼다. 오른쪽은 탈퇴 소송을 제기한 루한.
그동안 아이돌 그룹 안에서 멤버가 탈퇴하는 일은 종종 벌어졌지만 엑소처럼 외국인 멤버들이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통해 불만을 제기하고 곧장 중국에서의 활동을 준비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케이팝 인기가 높아지고 그 영향력 또한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면서 나타난 부정적인 현상이란 지적 속에 결국 ‘중국만 좋은 일 시켰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루한이 왜 소송을 제기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앞서 크리스가 주장한 내용처럼 루한은 수익배분을 포함한 그룹 내 ‘처우’를 문제 삼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즉 자신의 활동 분량에 비해 돌아오는 수익이 불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중국 매체 등에 따르면 지난해 1년 동안 루한이 회사로부터 건네받은 수익 배분금은 정확하지 않지만 약 5억 원대로 알려졌다. 다른 아이돌 그룹과 비교해서도 적지 않은 금액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중국 측 시각은 긍정적이지 않다.
이번 사태가 크리스와 루한의 탈퇴로 그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엑소의 또 다른 중국인 멤버 레이는 루한의 소송이 알려진 직후 중국에서 사용하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루한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란다”는 글을 썼다. 함께 활동한 동료가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돌연 팀 활동을 중단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를 응원한 꼴이다.
중국인 등 외국인 멤버가 포함된 아이돌 그룹은 엑소뿐 아니라 에프엑스, 미쓰에이, 2PM 등 여럿이다. 하지만 유독 엑소 내 중국인 멤버들의 이탈이 잦은 이유는 이 그룹이 가진 특수성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12인조로 출발한 엑소는 한국인 6명으로 이뤄진 ‘엑소케이’와 중국인 4명이 포함된 또 다른 6인조 ‘엑소엠’이라는 소그룹으로 나뉘어 있다. 이들 중 ‘엑소엠’은 중국 현지서 주로 활동한다는 계획 하에 구성됐다. 4명의 멤버를 중국인으로 채운 이유도 현지화 전략을 추진하려는 복안이었다.
크리스 탈퇴 이후 11명으로 활동하고 있는 EXO.
SM의 계획은 초반엔 주효했다. 엑소는 2012년 데뷔해 불과 2년여 만에 중국서 가장 인기 있는 그룹으로 떠올랐다. 케이팝 열풍이 다소 주춤해진 일본과 달리 중국은 최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급속한 팽창 속에 엑소를 중심으로 케이팝 가수들이 활약도 늘고 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 것 같던 높은 인기는 결국 멤버의 이탈이란 복병을 만나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에 이르렀다.
연예계에서는 이번 사안을 단순한 가수의 팀 이탈 문제로만 보지 않는다. 최근 중국이 자국 내 엔터테인먼트 산업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해외 스타는 물론 각종 콘텐츠와 제작 인력까지 빠르게 흡수하는 점에 비춰, 크리스와 루한에 그치지 않고 제3의 상황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중국 연예 매니지먼트 업계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한국뿐 아니라 대만, 홍콩 등 중국 주변 국가에서 영향력 있는 스타들을 빼와 자국 회사에 귀속시키는 사례가 부쩍 많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럴 경우 소송을 제기한다고 해도 상대 나라와 법적인 해석의 차이가 강해 사실상 활동에 제약을 가할 법적인 근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아직까지 정확하지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국 내 ‘보이지 않는 손’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SM은 이번 루한 사태를 두고 “주변의 배후 세력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을 포함한 해외 파트너 및 법률 전문가들과 함께 적극적이고도 다각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엔터테인먼트 강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산업 팽창의 속도가 빠른 만큼 이를 채워줄 콘텐츠도 절실한 상황이다. 이를 ‘기회’로 삼아 케이팝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들까지 중국시장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기회가 많은 만큼 리스크도 높다. 단순히 멤버들의 이탈에 따라 소속사 내 갈등이 빚어지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두 나라 사이에 한류 콘텐츠를 둘러싼 ‘불신’을 만들 우려와 함께 실제 투자자들에겐 엔터테인먼트 기업 주가 하락에 따른 손해까지 입힌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루한의 소송으로 인해 중국을 겨냥한 케이팝의 현지화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중국 시장은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특수성이 있는 만큼 그에 맞는 계획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