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취약 원인으로 농협중앙회 인사 개입 꼽아…‘협동조합 특성 반영해야’ 관치 금융 우려도
금감원은 4월 22일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에 대한 사전검사를 시작했다. 금감원은 5월 중순부터 정기검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주요 대형은행에 대해 2년마다 정기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농협금융지주와 농협은행은 2022년 5월 금감원의 정기검사를 받았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의 이번 정기검사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 4월 24일 “정기검사를 통해 농협금융지주 및 농협은행의 경영 전반 및 지배구조 취약점을 종합 진단해 개선토록 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농협은행 A 지점의 한 직원은 부동산 브로커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후 이들과 사문서 위조·행사 및 담보가액 부풀리기를 통해 거액의 부당대출을 취급했다. 또 농협은행 B 지점 직원은 고객 동의 없이 펀드 2억 원을 무단 해지했다. B 지점 직원의 경우 내부감사에서 다른 사건으로 적발된 바 있지만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추가사고가 발생했다고 금감원은 설명했다.
금감원은 농협은행 내부통제 취약 원인으로 농협중앙회의 인사 개입을 꼽았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 출신 직원이 시·군지부장으로서 관할 은행 지점의 내부통제를 총괄함에 따라 내부통제 체계가 취약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 NH투자증권 대표이사 선임 과정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는 지난 3월 임기만료로 퇴임했다. NH투자증권은 후임 대표 후보로 윤병운 NH투자증권 사장, 유찬형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 사재훈 전 삼성증권 부사장 등 3명을 선정했다. 이 중 유찬형 전 부회장은 증권 관련 경력이 전무하다. 대신 유 전 부회장은 지난 1월 농협중앙회장 선거 당시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 선거 캠프에서 일했다. 자연스럽게 강호동 회장의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따라붙었다.
강호동 회장은 NH투자증권 대표 선임 과정에서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과 충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박근혜 정부 시절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했고, 윤석열 대선 캠프에서도 활동했다. 현 정부와 인연이 깊은 인물인 셈이다. 강 회장은 유 전 부회장의 대표 선임을 밀어붙이려 했지만 금감원이 검사를 예고하면서 한 발 물러났다는 후문이다. NH투자증권 이사회는 지난 3월 11일 신임 대표이사로 윤병운 사장을 선택했다.
사실 지분만 놓고 보면 농협금융지주가 농협중앙회 입김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 지분 100%를 갖고 있고, 농협금융지주는 농협은행 지분 100%를 보유 중이다. 농협금융지주는 농협생명보험, 농협손해보험, NH저축은행, NH농협캐피탈 등의 지분 100%도 갖고 있으며 NH투자증권 지분 56.82%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농협금융지주는 독립성 강화를 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농협중앙회와 농협금융지주는 인사권 및 경영 방향 등을 놓고 크고 작은 갈등을 겪어왔다. 신동규 전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2013년 농협중앙회와 갈등 끝에 자진 사퇴하기도 했다. 신 전 회장은 사퇴 당시 “농협금융지주는 제갈량을 데려와도 안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농협금융지주는 농협중앙회가 지분 전량을 갖고 있으므로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농협중앙회장의 경영 개입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농협중앙회, 농협금융지주, 농협경제지주 간 인사이동으로 인력의 전문화가 지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지주회사법에는 “은행지주회사의 주요출자자는 은행지주회사의 이익에 반해 주요출자자 개인의 이익을 취할 목적으로 인사 또는 경영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다. 은행법에도 비슷한 내용의 조항이 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농협중앙회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농협금융지주나 농협은행 인사에 관여할 수 없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3월 21일 한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농협의) 신용, 경제 사업이 구분은 돼 있지만 리스크가 명확히 구분되느냐는 고민할 지점이 있다”며 “금산분리 원칙이나 내부통제와 관련된 합리적인 지배구조법상 규율 체계가 흔들릴 여지가 있는지 챙겨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의 경쟁력을 악화시킨다는 여론도 나오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지난해 농협금융지주로부터 농협지원사업비(명칭 사용료) 명목으로 4927억 원을 받았다. 이와 별개로 농협중앙회는 농협금융지주 배당금으로 7000억 원을 수령했다.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로부터 받은 돈이 1조 원이 넘는다. 농협금융지주의 지난해 영업이익이 3조 8476억 원이었다.
한편에서는 금감원이 사기업 경영에 간섭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특히 농민들 사이에서는 협동조합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는 성명을 통해 “농협은 농민 조합원의 출자를 통해 설립된 국내 유일의 금융기업으로 관련 수익은 농업·농촌 발전을 위해 활용돼야 하고, 농촌 현장에서는 농협중앙회의 직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며 “금감원은 이러한 농심을 외면하지 말고 농협 경영 개입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강호동 회장은 취임 당시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부문을 독립시켜 제1금융권 수준의 경쟁력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했다. 아직까지 상호금융 독립과 관련한 가시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상호금융 사업이 농협중앙회로부터 분리되면 농협금융지주 자회사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금감원 검사가 농협중앙회 상호금융 독립 작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이와 관련해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