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모토와 협력 시도, 일본 멤버 밀어주기 논란…“잇단 의혹으로 미운털, 민심 회복 쉽잖을 듯”
최근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퍼진 르세라핌 논란에서 네티즌들은 크게 두 가지를 지적했다. 하나는 이들이 올랐던 미국 최대 음악 축제 중 하나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Coachella Valley Music and Arts Festival) 무대에 일장기를 연상케 하는 무대효과가 사용됐다는 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들의 정규 1집 앨범 ‘언포기븐(Unforgiven)’ 수록곡 ‘번 더 브리지(Burn the Bridge)’의 뮤직비디오에 이들의 일본 편향과 한일 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메타포가 담겼다는 것이다.
코첼라 무대 일장기의 경우 르세라핌의 로고를 이용한 다양한 색의 무대효과가 펼쳐지는 가운데 붉은색만을 노린 ‘억지 까임’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금방 사라진 의혹이 됐다. 그러나 ‘번 더 브리지’ 경우는 한 네티즌이 프레임별로 분석한 내용이 비슷한 생각을 가진 다른 네티즌들에 의해 유포되고 있다. 대형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타고 삽시간에 유포돼 그 세를 불려 나가기 시작한 상황이다.
해당 네티즌은 ‘번 더 브리지’ 뮤직비디오의 도입부에 붉은 액체가 하얀 바닥 위로 퍼져나가는 장면이 일장기를 연상케 하고, 붉은 액체가 스며든 탁자에 푸른 옷을 입은 멤버가 검은 운동화를 신고 하얀 접시를 밟아 깨트리는 장면은 태극기를 훼손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짚었다. 또 후반부 물속에서 일본인 멤버 미야와키 사쿠라의 옆모습이 떠오르는 것을 두고는 “독도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네티즌은 초단위로 뮤직비디오의 타임라인을 정리해 “일제강점기의 내선일체 선전, 친일제국주의 레퍼토리”라며 “일본의 국책 문화지원사업 ‘쿨재팬’의 일환으로 쿨재팬의 목적은 일본 국가브랜드를 강화해 국제관계에서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현재 민간업체에 돈을 주고 미디어 제작 하청 중”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과장된 해석처럼 보이는데도 많은 네티즌들의 옹호와 공감을 받은 데엔 하이브에게 최근 쏟아진 비난 여론에 르세라핌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비호감 여론’이 더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4세대 최상위권 걸그룹으로 꼽히는 이른바 ‘뉴아에르(뉴진스, 아이브, 에스파, 르세라핌)’에 속해 있긴 하나 르세라핌에 대한 국내 대중들의 반응은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여기에는 인기 멤버인 미야와키 사쿠라의 ‘우익 성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고, 동시에 하이브 방시혁 의장이 보인 ‘일본 편향’ 행보도 대중들의 반감에 기름을 부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본 인기 걸그룹 AKB사단의 후쿠오카 하카타 지역 로컬 그룹인 HKT48으로 데뷔한 미야와키 사쿠라는 2018년 한일 합작 프로젝트 그룹 아이즈원으로 성공적인 국내 데뷔를 마친 뒤, 2022년 르세라핌으로 재데뷔해 국내외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일본 현지에서도 ‘K팝 최상위권 걸그룹의 최고 인기 멤버’로 주목받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는 미야와키 사쿠라에게 반감을 느끼는 대중도 적지 않다. 그가 광복절을 두고 전쟁 가해국인 일본을 전쟁의 피해자로 여긴다는 함의를 내재했다는 지적을 받는 용어인 ‘종전기념일’로 칭하고, 일본의 대표적인 정한론(19세기 말 일본에서 퍼진 일본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사상 또는 신념)자로 분류되는 사이고 다카모리를 위인으로 존경한다는 취지의 글을 과거에 올린 것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이미 아이즈원 데뷔 전부터 지적돼 왔던 지점이지만 르세라핌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어떤 해명이 없어 ‘괘씸죄’까지 걸렸다는 분석도 있다.
유독 자사 소속 그룹에 일본인 멤버와 일본인 프로듀서를 두고 ‘일본스러운 느낌’을 내고 싶어 하는 하이브 방시혁 의장의 ‘일본 편향’도 국내 K팝 팬들 사이에선 비판의 대상인 동시에 우려스러운 지점으로 지적돼 왔다. 방 의장은 2018년 방탄소년단(BTS)의 일본 싱글 앨범 수록곡을 AKB사단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에게 맡기려다 팬들의 거센 비판을 맞닥뜨려 철회한 바 있다. 아키모토 프로듀서 역시 소속 그룹의 논란만큼이나 우익 성향이 강한 인물로 국내에 알려져 있다.
당시 협업을 반대한 방탄소년단 팬들이 가슴을 쓸어내린 건 이 이후 방탄소년단의 위상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국내 가요계 관계자는 “최근 일본에서는 상위권 K팝 그룹에 일본인 멤버가 있는지, 있다면 몇 명인지, 그룹 내 인기 상위권인지 등을 분석해 해당 그룹이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으면 이 인지도를 J팝에도 적용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며 “만일 당시 방탄소년단의 음반에 아키모토 프로듀서가 협업했다면 현재의 위치에 있는 방탄소년단의 위세와 아키모토 프로듀서의 능력이 얼마나 부각됐을지 상상해 보라”고 짚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K팝의 음악적 성향과 제작 시스템 등을 벤치마킹한 뒤 이를 그대로 활용해 일본 그룹을 만드는, 이른바 ‘JK-팝’의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현지에서의 시도로 그친다면 산업 확장의 일환으로 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 같은 시도의 발판으로 국내외에서 이미 인기를 끌고 있는 K팝 그룹이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점이다. 르세라핌이 다소 부당하게 의혹과 논란의 중심이 된 것도 K팝 최상위권 그룹인 이들을 이용해 일본인 멤버를 부각시켜 마치 이들의 성공이 ‘일본의 성공’인 것처럼 보이게끔 한다는 점에서 국내 대중들이 공분한 탓이 크다.
이에 대해 또 다른 가요계 관계자는 “다른 그룹에도 일본인 멤버가 있지만 유독 르세라핌에게서만 일색 논란이 크게 불거져 왔기 때문에 대중들이 소속사의 성향이나 일본 시장과의 관계 등을 놓고 여러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전에는 그룹 자체에만 비판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소속사도 대중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상태다 보니 팬덤을 제외한 대중적 인기를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지 우려되는 지점”이라고 짚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