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사람 마음 훔치는 무역인”
▲ 사진=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주로 사회 거물급들을 범행대상으로 귀중품들을 훔치는 등 과감한 범행수법으로 인해 ‘대도’로 불렸던 조 씨. 그는 지난 2000년 16세 연하의 이은경 씨(54)와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손을 씻은 듯했다. 하지만 가정을 꾸리고 기독교에 귀의, 새 출발을 선언한 후에도 조 씨는 범죄의 유혹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불미스러운 일로 뉴스에 오르내리곤 했다.
2005년 3월 서울 마포구에서 또다시 절도행각을 벌인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지난 3월 말 출소한 조 씨는 현재 사업가이자 무역회사 CEO로 변신, 마지막 인생역전을 꿈꾸고 있다. 지난 10일 조 씨의 아내가 법사로 있는 천상암에서 이들 부부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조 씨 부부를 만난 날은 부부가 사업차 속초에 들렀다가 급히 올라오던 날이었다. 얼굴에 함박웃음을 띄우며 나란히 들어오는 부부의 모습이 무척이나 다정하고 행복해 보였다.
조 씨가 ‘바깥세상’에 나온 지 어언 6개월. 회색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조 씨는 한눈에도 일흔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하고 건강해보였다. 우선 안부부터 물었다. 조 씨는 일본에서 체포될 당시 총에 맞은 오른팔이 조금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원래 저처럼 수감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은 잘 늙지를 않아요. ‘안’에서는 단순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잖아요. 또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도 별로 없고 신경 안쓰고 지낼 수 있으니까 주름이 생길 이유가 없어요.”
가장 궁금한 것은 부부가 새롭게 시작했다는 사업이었다. 아내 이 씨야 일찌감치 의류업에 뛰어들어 유능한 여성 CEO로 사업수완을 발휘해오고 있지만 조 씨의 무역회사 사장 변신은 다소 뜻밖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남편을 위해 준비해둔 아내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조 씨가 다시 검거되던 날, 이 씨도 원망과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자신의 꿈이었던 음반제작을 위해 모아놨던 3000만 원을 ‘나쁜 남편’의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내놓았다. 이 씨가 정식 가수를 꿈꿀 만큼 뛰어난 노래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지금 아니면 기회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 당시에는 서러웠다”는 것이 이 씨의 고백이다.
하지만 이 씨는 3년 후 출소하게 될 남편을 위한 일생일대의 이벤트에 착수했다.
“아이도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는 상황에서 남편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많이 생각했죠. 저는 원래 사업했던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남편이 나오면 마음 붙일 수 있는 사업을 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처음에는 아예 외국에서 할 수 있는 아이템을 물색했어요. 국내에 있으면 또 엉뚱한 짓을 할까봐서요.”
조 씨가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이 씨는 갖가지 연구를 통해 몇 가지 사업구상을 하게 됐고 결국 무역업을 잘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와 중국 등지에서 수산물과 송이버섯 등을 수입하는 회사를 차리게 됐다.
현재 이 회사는 투자자도 나서는 등 사업전망이 상당히 밝다고 한다. 이 씨가 수년 동안 동분서주하면서 이뤄놓은 결과다. 하지만 대표이사는 이 씨가 아닌 조 씨다. 이 씨는 그 이유를 담담히 설명했다.
“제가 힘들게 이뤄놓은 사업을 남편에게 넘겨주기로 한 것은 지아비를 다듬어서 끝까지 같이 가겠다는 ‘각오’인 동시에 다시 출발해야하는 우리 부부 스스로에게 각인시키는 희망의 메시지였죠.”
▲ 출소 후 무역회사 CEO로 새 삶을 살고 있는 조세형 씨와 아내 이은경 씨. | ||
인터뷰 와중에도 이 씨에게는 상담 예약을 원하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다. 이미 알려진 대로 이 씨는 2005년 6월 면목동에 ‘천상암’을 열고 법사(출가하지 않은 재가불자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과 정진은 계속하는 승려)의 길에 들어섰다. 천주교 모태신앙이었던 그녀가 법사가 되기까지는 엄청난 고통과 시련이 뒤따랐다. 이때는 조 씨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목포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몇 해 전 아내가 찾아왔어요. 신이 내렸다고 하면서 삭발을 하고 출가를 해야겠다는 거예요. 저 때문에 가톨릭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인데 갑자기 신이 내렸다고 하니 눈앞이 캄캄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는 스님께 여쭤보니 꼭 머리를 밀고 출가를 해야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어쨌거나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저로서는 그런 아내를 받아들이기가 참 힘들더라구요.”
종교로 인해 한동안 심각한 갈등을 겪었다는 조 씨는 이제 ‘법사’ 아내를 인정하고 있다. 반복되는 절도와 수감으로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도 아내는 한결같이 조 씨의 곁을 지키며 눈물로 기도해온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한사코 거부했던 법사의 운명을 받아들인 아내의 속사정과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가족이 조화를 이루며 사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종교로 인한 갈등은 점차 소멸됐습니다”라고 고백했다.
한편 조 씨는 출소 후 조용히 지내왔다고 한다. 벌써 6개월이 흘렀지만 언론들의 인터뷰는 물론 교계와 여러 단체에서 빗발치는 강의 요청도 모두 거절하고 사업에만 몰두해 왔다고 한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두렵고 염치가 없었기 때문이란다.
“저를 믿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준 분들을 생각하면 고개를 들 수 없어요. 당당한 무역인으로 재기해서 진정한 새삶을 이룬 뒤 사람들 앞에 다시 서고 싶습니다.”
새로 시작하는 이들 부부가 힘들 때마다 다잡아 주는 단단한 고리가 있다. 바로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들이다. 조 씨는 “몇 년 새 몰라볼 만큼 훌쩍 자랐어요. 사실 예전엔 가장이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게 없었는데 이번에 나와서 아이를 보니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이젠 부모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이에게 한 점 부끄럼 없는 부모가 되자고 아내와 약속했습니다. 이 나이에 무역업에 뛰어든 이유도 사실은 아이를 위해서였죠”라며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인터뷰 내내 아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낸 조 씨는 무역업자로 새로운 스타트라인에 섰다는 것을 ‘공언’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하게 됐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집사람을 만난 것은 내 삶의 가장 큰 축복이자 행복입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을 넘어서 존경합니다. 앞으론 불미스러운 일로 뉴스에 오르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아내가 마련해준 사업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동안 저를 믿고 도와준 사람들에 대해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경영학 공부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이제 대도 조세형은 잊고 무역인 조세형을 지켜봐 주세요.”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