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종할래 입원할래’ 그들 모두 한통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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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5월 의정부 시청 앞에서 불법 감금을 주도한 정신과 전문의 처벌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 ||
지난 10월 23일 대법원에서는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는 아내를 개종시킬 목적으로 폭행과 협박을 하고 결국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킨 남편과 목사, 신도, 정신병원 의료진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고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8년 넘게 지속돼온 피해자 정 아무개 씨의 힘겨운 법정투쟁 결과였다. 법정 싸움을 준비하면서 자신과 유사한 피해를 당한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정 씨는 정신병원피해자인권찾기모임을 결성해 정신병원 강제입원 실태를 고발하고 다른 피해자들의 피해보상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 씨가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된 이유는 ‘이단으로 지목된 종교’를 믿었기 때문이었다.
정 씨의 악몽은 1998년 당시 남편으로부터 개종을 강요받으면서 시작된다. 정 씨에 따르면 남편은 모 종교단체에 다니던 정 씨를 수차례 폭행하며 ‘정신병원에 처넣겠다’ ‘사지를 부러뜨려버리겠다’는 등의 협박을 하다 2000년 가을 이단클리닉을 운영하는 진 아무개 목사가 있는 경기도의 한 교회로 끌고 갔다. 진 목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기도 하다. 정 씨는 교회에 감금된 상태로 목사로부터 개종을 강요받았지만 이에 불응했고 그 후 협박과 폭행에 시달리다 2001년 5월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됐다. 보호자와 의사가 동의하면 강제입원이 가능한 ‘정신보건법 24조’에 의한 것이었다.
중환자들이 모여있는 폐쇄병동에 멀쩡한 사람이 갇혀 지내는 것은 정말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한다. 병원 측은 독한 약물을 입안에 강제로 털어넣기도 하는 등 인권을 무참히 유린했지만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정 씨의 주장이다. 정 씨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병원을 나온 것은 입원당한 지 71일이 지나서였다. 정 씨는 힘겨운 법정 싸움을 시작했고 결국 8년 만에 그 결실을 얻었다.
대법원 3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10월 23일 특정 교단 신도들을 교회에 감금하거나 폭력 협박 강요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개종을 강요해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진 목사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병원과 정신과전문의에게는 3200만 원의 손해배상 명령을 내렸다.
주목할 점은 대법원이 정신과 전문의와 정신병원 측의 강제입원과 감금행위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물었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병원 의사의 재량권 남용을 경계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하지만 해당 정신병원 측에서는 “의사의 재량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정신병원 의사들은 다 그만둬야 한다”며 “의사가 환자를 입원시킬 때마다 다 소송을 걸 텐데 그것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 반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른 정신병원 관계자들도 이번 판결에 대해 “자신의 증상을 인정하고 입원하는 환자는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이번 판결은 큰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다”며 적잖은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전문의에게 모든 재량권이 있다 해도 정상인을 정신병원에 가둘 권한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가장 큰 문제는 ‘개종’을 이유로 정 씨와 비슷한 일을 당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며 현재도 그러한 일들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자는 취재 당시 정 씨 외에 다른 피해자들도 여러 명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멀쩡한 사람이 정신병자로 몰리는 것은 한순간이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정 씨는 자신과 다른 피해자들의 강제입원은 ‘종교적 망상’ ‘적응장애’ ‘신경증적 장애’가 의심된다는 담당 전문의의 소견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담당의가 목사와 암묵적으로 결탁하지 않았다면 멀쩡한 사람을 입원시키진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 목사는 개종을 이유로 가족과 주변인들을 압박해 교회에 감금하게 하고 폭행과 협박으로 강제개종을 시도했다. 그래도 개종을 거부하자 진 목사는 ‘한 쪽 뇌가 이상하다’ ‘성경도 안 믿으니 미친 게 분명하다’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는 등의 말로 피해자 가족에게 압력을 넣었으며 정신과 전문의들도 특별한 진단 없이 피해자들을 줄줄이 강제입원시켰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정 씨는 A 씨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했다. ‘○○○○ 교회’를 믿는 A 씨는 진 목사로부터 개종을 강요받았지만 이에 응하지 않았고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됐다고 한다.
입원 후 병원에서 어떠한 치료도 받은 적이 없다는 A 씨는 진 목사가 정신병원으로 와서 주고 간 교리책을 달달 외워 답변하는 등 실제로 개종을 한 듯 연기한 끝에 65일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원 당시 면담을 한 전문의도 정신병 증세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고 신앙적인 부분에 대해서만 몇 가지 물어봤다고 한다.
하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치료에 필요하다고 판단돼 입원시킨 것이지 피해자들의 주장처럼 감금을 목적으로 입원부터시킨 건 아니다”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일부 교단에서 말하는 ‘이단’을 믿는 사람을 정신병이 있다고 볼 수 있느냐와, 또 개종을 목적으로 정상인을 정신병원에 감금할 수 있느냐다. 이미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왔지만 목회자들의 반응은 극히 조심스럽다.
이단 문제는 법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종교인 입장에선 신앙적인 부분이 더 많이 고려할 수밖에 없는데 그 경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이단에 빠진 사람은 잘못된 교리에 세뇌돼 다른 사람의 말은 절대 듣지 않는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제발 그 집단에서 꺼내달라’고 도움을 요청해온다. 하지만 개종 교육에 대한 당사자의 반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쯤되면 가족들도 정상적인 방법을 포기하곤 하는데 이럴 경우 도움을 요청받은 목회자가 과연 어디까지 도와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문제는 간단치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단에 빠져 심신이 망가지고 가정이 파탄나는 일은 적지 않다. 진 목사와 많은 목사들이 개종과 관련, ‘사람 하나 살리는 문제’라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개종을 명목으로 자행되는 각종 인권유린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목회자들이 개인을 개종시키려 하기보다는 ‘이단’의 실체를 밝혀내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더욱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