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입막음…우릴 두 번 울렸다”
▲ ‘정명석(원 안)의 대리인’을 자처한 김 씨가 합의를 바라며 남기고 간 편지. | ||
하지만 선고공판이 예정돼 있던 2월 5일 항소심 재판부는 선교회 측 관계자 5명이 제출한 ‘선고기일연기신청서’를 받아들여 선고기일을 오는 10일로 연기했다. 피해자와 피고 간에 합의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일요신문>은 이날 모처에서 정 씨를 기소한 피해여성 4명으로부터 선고기일이 미뤄진 배경과 논란이 일고 있는 ‘합의’ 여부를 둘러싼 진실에 대해 들어봤다. 피해여성들은 하나같이 “정 씨 측의 거짓말로 진실이 묻히고 있다.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사건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듯 이날 법정에는 무려 2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이날 정 씨 측 변호사는 재판부에 선교회 측 관계자 5명이 작성해 제출한 ‘선고기일연기신청서’와 관련, 선고를 늦춰줄 것을 요청했다.
“정 씨는 분명 죄가 없지만 피해자들과 원만히 합의하려 하고 있다. 현재도 피해자들과 합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으로 피해여성 4명 중 일부는 합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기한을 좀 더 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 정 씨 측 변호사의 얘기다. 정 씨 역시 “나는 무죄지만 하나님을 믿는 교인으로서 화해와 화평을 중시여겨왔다. 이번 처사 역시 그들을 위로하려는 취지다”라고 진술했다.
이에 잠시 고심하던 재판부는 ‘마지막’이라는 전제로 5일간 선고를 늦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정 씨 측의 주장과는 달리 피해여성들이 정 씨와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으며 합의가 진행되고 있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이날 재판은 공개로 진행됐기에 수 백 명의 선교회 측 관계자들이 집결한 재판정에 피해여성들은 나올 수 없었다. 보다못해 이날 참석한 피해여성 측 법률사무소 관계자가 “현재 피해여성들과 합의가 진행 중이라는 정 씨 측 변호인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선고를 늦출 경우 피해여성들이 더 큰 고통을 겪게 된다”고 항변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와 관련 피해여성들은 “피해자들이 그 자리에 없다는 이유로 정 씨의 변호사는 반선교회 단체인 ‘엑소더스’가 선임한 변호인이라 피해자들과 의견이 다른 것 같다’는 식의 거짓말까지 했다”며 “우리가 신뢰하는 변호인을 졸지에 엑소더스의 꼭두각시 취급을 했다”며 분을 억누르지 못했다.
도대체 합의를 둘러싼 진실은 무엇일까. 피해여성들에 따르면 선교회 측에서는 그동안 끈질기게 합의를 요청해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의 합의요구는 태도만 수그러졌을 뿐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한다.
이날 피해여성 4명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정 씨 측에서는 피해자 중 일부와 합의가 막바지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는데 도대체 우리 중 누구와 합의를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이들은 그동안 ‘합의’와 관련 자신들과 선교회 측 관계자들 사이에서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생생히 들려줬다.
A 씨는 “선고를 눈앞에 둔 1월 말경부터는 선교회 핵심 관계자인 김 아무개 씨가 여러 차례 집으로 찾아와 ‘합의’를 요구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수시로 찾아와서 만나줄 것을 요청했다. 내가 만나주지 않자 가족과 친지들까지 접촉하더라. 심지어 그는 친언니의 신혼집까지 찾아갔다. 내 주변인들의 주소를 불법조회해서 찾아간 것도 용서할 수 없지만 무엇보다 두려웠던 것은 내가 당한 사실이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 김 씨가 피해여성의 집에 찾아온 모습. | ||
면담을 거절하고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는데도 계속 초인종을 눌러 A 씨는 결국 경찰을 불렀고 그 사이에 김 씨는 서신을 두고 갔다고 한다.
김 씨가 두고 갔다는 서신에는 합의를 간곡히 요청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대략적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다음 주가 선고공판이고 지금 합의를 본다 해서 선고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은 피해자분들도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중략) 모든 합의가 다 되는 것도 아니고 일부라도 합의해 형량을 조금이라도 낮춰보려는 것이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중략) 마음 아프시고 힘드신 것 다 책임질 순 없지만 제가 최선을 다해 물질적으로나마 마음의 상처를 보상하고 싶습니다. (중략)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사죄를 드립니다.’
서신 말미에는 ‘변호사를 동행하라하시면 동행하겠습니다’ ‘기타 요구사항이 있으시면 원하시는 대로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문구도 있었다.
A 씨는 “서신에서 김 씨는 ‘선교회와 상관없이 개인적으로 원만한 해결과 보상을 해주려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정 씨 대리인으로 왔다’는 멘트를 녹취해뒀다”고 전했다.
이는 비단 A 씨만 겪은 일이 아니었다. 피해여성 B 씨는 “김 씨 등은 장사를 하는 외삼촌의 가게로 찾아가 돈가방을 보여주며 노골적으로 중간에서 설득해줄 것을 요청했다. 게다가 엑소더스가 돈을 노리고 하는 것이라며 이간질을 했다. 심지어 설날 때 모든 친지들이 모인 자리에까지 찾아와서 ‘OO가 우리 교주에게 성폭행당했다’는 것을 폭로하기도 했다. 가족들과 친지들이 까무라친 것은 당연하다. 이 말을 듣고 격분한 외삼촌이 ‘내 딸이었다면 당신은 내 손에 죽었을 것’이라는 격한 말을 하기도 했다. 주변인들과 접촉하면서 합의를 강요하는 이들의 태도는 ‘더이상 망신당하기 싫으면 합의에 응하라’는 무언의 협박이나 다름없었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다른 피해여성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피해여성 C 씨는 “하도 찾아오기에 경찰에 신고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형사들과 경찰서장까지 출동해서 ‘찾아오지 말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괴롭히냐’고 제지했지만 김 씨는 오히려 ‘당신이 뭔데 그러냐’고 따지며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피해여성들의 입장은 ‘합의가 될 것 같다’는 정 씨 측 변호인의 얘기와는 전혀 달랐다. 이들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심 재판 때부터 합의가 진행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합의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분명히 했다.
피해여성 중 한 명은 “김 씨 등의 태도는 진정으로 합의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돈을 찔러줄 테니 조용히 입 닫고 있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정 씨 측은 법정에서는 우리가 돈을 노리고 자신을 음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돈을 노렸다면 여기서 끝내지 뭣하러 그들을 피해 다니겠나. 진정으로 죄를 뉘우친다면 왜 공개적으로 사과하지 못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선교회 측은 엑소더스 관계자에게도 접촉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이날도 선교회 측의 김 씨는 엑소더스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청하고 “5분만 통화하자. 꼭 할 말이 있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현재 피해자들은 면담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김 씨를 대전지검에 고소한 상태다.
피해자들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김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피해자들을 찾아가 합의를 요청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 의도에 대해서는 피해자들과 다른 입장을 표했다.
우선 김 씨는 피해자들과 접촉을 시도한 자신의 행동이 정 씨의 부탁이나 지시에 의해 이뤄진 행동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김 씨는 “나는 재판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 분(정 씨)을 믿고 모셔온 교인의 입장에서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 답답할 따름이다. 이 사태로 인해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이런 저런 말이 많은데 서로에게 좋을 것이 없지 않은가. 이왕이면 원만하게 마무리지어 보려는 생각에서 취한 순수한 행동이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