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운동’ 뿌리 뽑힐라
일례로 총학생회 등에서 학기 초 대자보 등을 만들기 위해 함께 밤을 새던 일이 잦았기 때문에 성추행이 가끔 발생했다. 운동권 출신의 한 사회복지사는 “복학생 학생회장이나 간부가 저학년 여학생의 ‘순결’을 빼앗는 일이 비일비재 했으나 상명하복, 남성우월문화에서 어린 여학생들은 복학생 ‘오빠’들에게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운동권 인사들의 필독 소설이라 불릴 만큼 베스트셀러였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작가 박일문 씨(45·본명 박인수)는 지난 1999년 4월 함께 술을 마시고 만취한 여대생을 성폭행하고, 이후 수차례 혼인을 빙자해 간음한 혐의(준강간·혼인빙자간음 등)로 불구속 기소돼 2003년 7월 11일 형이 확정되자 잠적했다. 그러나 지난 2006년 결국 검거돼 실형을 살고 있다. 당시 박 씨의 사례는 운동권 관계자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줬다.
2000년에는 전국 40여 개 대학 학생들로 구성된 PD계열 학생운동단체인 전국학생회협의회 중앙집행위 소속 김 아무개 씨가 한 모임에서 다른 대학 여학생을 성추행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쉬쉬하던 운동권 내의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들어서부터다. 당시 여성 운동가들이 중심이 돼서 만든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100인위원회)’는 자신들이 제보받은 17건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하고 운동권 내에서 암암리에 발생하던 성폭력을 고발, 운동권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이들은 당시 “(운동권 내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문제조차 은폐됐으며, 심지어 피해자에게 협박과 함께 2차 폭력이 가해졌다”고 폭로했다.
물론 2000년 들어서도 운동권 내부의 성폭력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에서 주로 일어나던 성폭력이 시민사회운동으로 확산됐다.
대표적인 것이 한 시민단체 유력 인사가 내부 여성 직원을 추행했던 사건. 이 사건은 시민사회 운동에 큰 충격을 던져줬고 시민운동의 도덕성에도 큰 타격을 줬다. 이 인사는 결국 공식적으로 시민사회에 아직까지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있다.
박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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