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반납…다신 도망 안가요” ㅋㅋ
사진제공=SBS
새로운 출발에 어렵게 나선 한예슬의 선택은 ‘셀프 디스’다. 다시 말하면 자기를 비하하는 발언과 행동이다. 심각하다기보다는 코믹한 쪽에 가깝다. SBS 예능 프로그램 <런닝맨>에 나와 “이젠 도망치지 않을 거야”라고 외치더니 <미녀의 탄생> 제작발표회에서도 그 분위기를 이어갔다. 연출자인 이창민 PD가 한예슬의 여권을 손에 든 채 취재진 앞에 나서 “촬영하는 동안 도망가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공언했다.
그동안 물의를 빚고 활동을 중단한 여러 연예인들 가운데 한예슬 같은 ‘엉뚱한’ 방식으로 복귀를 선언한 스타는 없었다. 눈물의 사죄로 면죄부를 얻으려 하거나 TV 프로그램에 나와 구구절절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이들이 많았다. 얼렁뚱땅 드라마나 영화로 복귀를 시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들과 비교해 한예슬은 ‘노골적’이었고 한편으론 ‘유쾌’했다.
한예슬의 공백 원인은 전적으로 그 자신에게 있다. 3년 전.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그는 돌연 이탈해 도망치듯 고향인 미국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촬영 일정이 빠듯하다는, 그래서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생방송에 가깝게 촬영되던 당시 현장에서 여주인공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제작진은 ‘패닉’에 빠졌다. 드라마는 결국 결방됐다. 주인공이 도망치면서 벌어진 초유의 사태였다.
한예슬은 미국으로 떠난 지 며칠 만에 돌아와 결국 나머지 촬영을 소화했다. 하지만 후폭풍은 거셌다. 당시 전속계약이 아닌 에이전시 형태로 그를 돕던 회사(싸이더스HQ)는 사실상 속수무책이었다. ‘관리’가 안 되는 상황에서 한예슬은 당시 모델로 활동하던 다양한 브랜드의 광고주들로부터도 수억 원대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할 위기에 처했다. 1년에 수십억 원을 받는 CF스타에서 도망자로 추락한 꼴이었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한 방송 관계자는 “<스파이 명월> 제작사도 한예슬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준비하는 등 굉장히 민감한 상황이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한예슬을 도왔던 연예 관계자들의 조력과 그가 오랫동안 모델을 맡았던 브랜드들의 양해 덕분에 거액의 소송은 막을 수 있었다.
한예슬의 드라마 복귀작 <미녀의 탄생> 제작발표회 현장.
그때부터 한예슬에겐 일이 끊겼다. 드라마 제작사나 방송사들은 ‘결방사태’를 초래한 배우에게 출연 제의를 하는 걸 꺼렸다. 사건 직후 방송가 곳곳에선 ‘위험 요소가 크다’는 말도 나왔다. 한예슬이 지난 3년 동안 무려 3곳의 매니지먼트사를 전전하며 자리를 잡지 못한 이유다.
<스파이 명월> 사태가 잠잠해질 즈음 한예슬은 자신을 연예인으로 발굴해준 매니저의 곁으로 돌아갔다. 가장 익숙하고 편한 사람 곁에서 활동하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기대처럼 ‘방송가 민심’은 바뀌지 않았다. 특히 <스파이 명월> 방송사인 KBS에서는 사실상 한예슬의 출연을 불허했다. 비공식 출연금지 상태였던 셈이다.
그동안 한예슬이 바란 건 ‘드라마 출연’이다. 지난해 12월 드라마 제작사 베르디미디어가 세운 매니지먼트사 에스비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맺은 이유도 그런 배경이었다. 베르디미디어는 드라마 <야왕> 등을 만든 굴지의 제작사다. 한예슬 영입 당시 “2014년 상반기에 지상파 방송을 목표로 준비하는 작품의 주연으로 한예슬을 기용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하지만 이 드라마 편성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성사되지 않았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한예슬의 스타성에 기대 캐스팅을 시도한 드라마도 있었지만 본인이 여러 조건을 꼼꼼하게 따진 측면도 있다”며 “아무래도 과거 사건의 여파를 우려해 신중한 선택이 필요한 시점이라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예능프로에 출연한 한예슬은 엽기 표정을 짓는 등 몸을 사리지 않았다.
<미녀의 탄생>에서 한예슬의 활약은 그의 출세작이기도 한 MBC 드라마 <환상의 커플>을 떠올리게 한다. 발랄하고 엉뚱한 매력에, 어딘지 모르게 보호해주고 싶은 귀여운 모습이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다. 3년 전보다 더 돋보이는 외모 역시 시청자들의 시선을 빼앗는 요인이다.
한예슬은 “3년의 공백은 긴 시간이었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성숙한 시간이었다. 뻔하게 들릴 수 있지만 그 말은 사실이다. 살다보면 인생에 시련이 온다.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악재가 있다”고 했다. “나는 어린 나이에 피할 수 없는 일을 겪었고 지금 중요한 건 앞으로의 활동이다. 시련을 딛고 재정비해서 지금 이렇게 섰다. 자신 있게 나서고 싶다”는 다짐도 내비쳤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