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경남 통영의 한 야산에 파묻혀 있던 수십기의 삼도수군통제사 비석에 대한 비밀이 풀렸다.
지난 7일과 8일 경남 통영에서 고성으로 향하는 옛 고갯길에서 24기의 삼도수군통제사 비석이 발굴됐다.
대한민국 최대규모인 옛 통제사 비석이 땅속에서 발견되자 그 배경을 두고 학계와 시민들의 관심이 쏠렸다.
경상, 전라, 충청 삼도수군을 지휘하던 삼도수군통제사비가 발굴된 장소는 조선시대 한양과 통영을 오가던 통제사길이었다.
발견된 비석에서 실명이 확인된 통제사는 65대 이세선(李世選), 79대 이창조(李昌肇), 110대 이의풍(李義豊), 120대 이윤성(李潤成), 139대 이방일(李邦一), 145대 이윤경((李潤慶), 169대 이완식(李完植)), 182대 이희경((李熙絅) 통제사로 모두 전의이씨(全義李氏) 집안이다.
비석의 주인이 확인되면서 한꺼번에 매몰된 이유도 밝혀졌다.
사연은 이지형 통제사 집안의 족보, 전의이씨효익공파보(全義李氏孝翼公派譜) 전성이씨비각사적(매치비, 全城李氏碑閣事跡, 埋置碑)편에서 확인됐다.
순조(純祖) 3년, 서기 1803년 이윤겸 통제사때 전의이씨 집안의 통제사 비석을 한꺼번에 묻게 된 경위는 ‘나라(조가, 朝家)에서 선정비와 비각을 세우는 것을 금하는 영(금령, 禁令)에 따라 철거돼, 세월이 오래되면 티끌과 흙이 될까 하여 옛 6기와 합쳐 14기의 비석을 묻는다’고 기록했다.
통제사 비석을 묻고, 매치비를 세운 까닭에 대해 이윤겸 통제사는 “이것은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후손으로 선세 통제사의 비가 묻힌 곳이 여기임을 알게 함이로다”고 족보에 남겼다.
선정을 베푼 관리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선정비(善政碑)는 조선후기 당초 그 목적을 잃고, 비석을 만드는 비용과 노동을 고스란히 백성들이 부담하면서 심각한 폐단이 발생했으며 심지어 살아있는 인물을 추모하는 사당, 즉 생사당(生祠堂)까지 건립될 정도에 이르자 조정에서 금령(禁令)까지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학계에서는 통제사비의 매치비와 족보에 그 기록을 남긴 만큼, 후대에 조정에서 금령을 내렸을 때 당시 6대 8명의 통제사를 배출한 명문 전의이씨 집안에서 앞장서 선정비를 철거해 묻었거나 1895년 통제영 폐영 시기에 추가로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통제사비는 통영시가 밭 언덕에 세워져있는 열녀비와 효열비 를 정비하기 위해 조사를 벌이다 발견했다.
서용찬 기자 ilyo33@ilyo.co.kr
[부산시] 박형준 시장, ‘국내1호 낙동강하구 국가도시공원’ 지정 촉구 결의 外
온라인 기사 ( 2024.09.26 13: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