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 김경희 “티켓 없어 못가, 여기저기 손 벌려 봤지만…”
정주영 전 회장 막내딸 엘리자베스 결혼식 청첩장과 엄마 김경희 씨가 딸의 결혼식에 가기 위해 현대가 사람들에게 쓴 편지.
말년에 정주영 전 회장은 막내딸인 엘리자베스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정 전 회장이 환갑도 넘겨 얻은 자식이라 더 애착을 가졌다는 것. 지난 17, 19일 <일요신문>과 마주한 김경희 씨는 “회장님이 아이들 걱정을 많이 했다. ‘내가 가면 자식들이 어떻게 살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청첩장을 꺼내며 안타까워했다. 바로 딸인 엘리자베스의 결혼식 초청장이었다. 김 씨는 “여기저기서 구해보려고 하는데 비행기 티켓 값을 구할 수 없어 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6월 <일요신문>에 의해 처음 알려졌듯 김 씨는 정 전 회장과 만나기 전부터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다. 하지만 세상 물정 모르던 김 씨에게 사기꾼이 달라붙기 시작하면서 그 많던 재산은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이제 김 씨에게 남은 재산은 거의 없다. 딸의 결혼식에 갈 항공권마저 구하기 힘든 수준이 됐다. 지난해 기자가 김 씨를 처음 만났을 때보다 재정상황이 더욱 악화됐던 것이다. 김 씨는 “사기 당해 재산을 모두 날리고 남아있던 부스러기(재산)마저 생활비로 다 쓰고 지금은 정말 돈이 없다”며 “딸 결혼식을 보기 위해 남들에게 돈을 빌려보려고 해도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정주영, 김경희(옛 사진).
이번에 결혼하는 엘리자베스는 도요타의 미국 광고를 대행하는 회사에 근무하고 있다. 김 씨는 “남편이 될 사람은 동갑내기로 엘리자베스와는 일하면서 만나게 된 사이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결혼식에 꼭 가고 싶어 주위에 손도 벌려 봤지만 돈을 구할 수 없어 현대가 사람들에게 직접 편지를 돌렸다고 한다. 김 씨는 범 현대그룹 오너 일가의 회사 주소와 자택 주소를 수소문해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냈지만 대부분 반송돼 돌아오고 있다.
그렇게 시간만 보내다 결국 김 씨는 딸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 김 씨는 “돈 많은 현대가에서 회장님의 피가 섞였는데 비록 이복동생이라도 결혼식을 올린다고 하면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현대가에 속았다. 가족 같은 대우를 해준다고 해서 재산분할 소송에 합의해줬는데 법적인 결정사항도 지키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엘리자베스가 그린 그림.
미국에서 자란 엘리자베스는 한국어를 거의 못한다고 한다. 엘리자베스의 결혼 상대도 미국인이다. 한국말에 익숙하지 않은 엘리자베스가 미국에서 결혼까지 하면 ‘현대의 나라’인 한국과 엘리자베스는 사실상 완전히 단절될 가능성이 높다.
김 씨는 “집도 절도 없는 상황 때문에 결혼을 서두르지는 않았을까를 생각해보면 눈물만 난다”면서 “회장님 막내딸인 엘리자베스가 그림 솜씨가 좋다며 그냥 도와주기 힘들면 이걸 산다는 구실로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어렵게 사는 두 딸에게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며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경희 씨의 고된 인생역정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