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캐스팅 난항 반면 케이블은 스타들 몰려 ‘드림팀’ 구성
지상파 드라마가 부진한 시기와 맞물려 새롭게 부상한 곳은 케이블채널이다. tvN을 중심으로 OCN이 화려한 라인업을 구축해 시청자를 사로잡았고, 최근에는 종합편성채널 jtbc까지 가세해 매력적인 드라마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유료가입자를 상대로 시청률을 집계하는 탓에 이들 채널의 드라마는 보통 6~7%를 기록하지만,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다. 요즘 지상파 미니시리즈 가운데 시청률이 3%까지 곤두박질 친 작품도 나온다.
# 스타들의 관심…지상파 떠나 케이블채널
지상파 드라마가 ‘지고’ 케이블채널 드라마가 ‘뜨는’ 분위기는 각 방송사 드라마들이 내세운 주연 배우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더 두드러진다. 제작 환경 변화와 대중의 반응에 누구보다 민감하고 예민한 스타들이 최근 지상파 출연에 거리를 두는 대신 약속이나 한 듯 케이블채널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로 영화에 주력할 뿐 드라마 출연에 인색한 이병헌부터 차승원은 물론 최근 군 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이승기까지 일제히 케이블채널로 향한다.
스타들이 몰리다보니 소위 ‘드림팀’을 꾸린 드라마들도 등장한다. 당장 12월 방송을 시작하는 tvN 드라마 <서유기>의 주인공은 차승원과 이승기. 이번 작품을 통해 케이블채널 드라마를 처음 경험한다. 내년 방송을 준비하는 tvN의 또 다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주인공은 이병헌과 유연석, 변요한, 김태리 등이다. 블록버스터 영화 캐스팅을 방불케 하는 조합이 케이블채널 드라마에 몰리면서 톱스타들의 달라진 태도를 엿보게 한다.
SBS 법정드라마 ‘이판사판’의 주인공 연우진과 박은빈. 사진=‘이판사판’ 홈페이지
반면 비슷한 시기 지상파 3사 미니시리즈 주연으로 나서는 배우들의 면면은 다소 의아스럽다. 이달 22일 시작하는 SBS 법정드라마 <이판사판>의 주인공은 박은빈과 연우진, 동하, 혜령 등이다. 비슷한 시기 방송하는 KBS 2TV 미시시리즈 <저글러스>의 주인공은 최다니엘과 백진희가 맡았다. 지상파가 가장 높은 광고료를 받는, 밤 10시대 미니시리즈 주연을 맡기엔 인지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편성은 받았지만 정작 주연진 캐스팅에서 난항을 겪는 드라마도 여러 편이다.
사실 얼마 전부터 지상파 드라마에서 신인을 적극 발굴해 주연을 맡기는 사례가 늘어나는 배경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 톱스타들을 케이블채널 드라마에 빼앗기면서 주연을 맡길만한 후보군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 제작진 사이에서는 궁여지책 ‘새로운 얼굴을 찾아 드라마로 키우자’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배우를 전문으로 하는 한 매니지먼트사의 이사는 “신인에게 기회를 주려는 시도는 긍정적으로 보지만 소위 ‘급’이 되는 배우들 사이에서는 지상파보다 경쟁력이 강한 케이블채널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아무래도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케이블채널 드라마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어 배우들의 마음도 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 탁월한 기획력·물량공세…케이블채널 드라마 강세
최근 tvN 드라마 주연으로 참여했던 한 배우는 종영 이후 인터뷰에서 “앞으로 웬만하면 지상파보다는 케이블채널 드라마에 출연하고 싶다”는 희망을 드러냈다. 촬영장 여건이나 상황이 지상파 드라마 현장과 비교해 “탁월하게 좋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반응은 사실 케이블채널 드라마에 참여한 배우들이 이구동성 꺼내는 말이기도 하다. 배우들이 직접 체감한 현장은 금방 입소문으로 퍼졌고, 케이블채널에 대한 톱스타들의 선호도까지 올려놓았다.
케이블채널 드라마의 성공을 이끌고 있는 양대 채널인 tvN과 OCN이 기업 CJ E&M 계열사라는 사실도 주효하게 작용한다. 여러 규제와 제약이 심한 지상파와 비교해 다양한 창작 시도가 가능하기 때문. 배우 출연료와 제작비 면에서도 ‘유연하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방송사 드라마에서 배우 캐스팅을 전담하는 한 캐스팅 디렉터는 “톱스타를 캐스팅하기 위한 출연료 지불에서 케이블채널이 지상파에 비해 아무래도 제약을 덜 받는다”며 “드라마 제작비에서도 케이블채널이 비용에 대한 부담을 적은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2017년 화제 드라마인 tvN ‘비밀의 숲’. 조승우와 배두나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이병헌이 주연하는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경우 1900년을 배경으로 하는 시대극인데다 해외 로케까지 진행해야 하는 제작 규모 탓에 지상파 방송사에서는 선뜻 편성을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tvN이 드라마 편성을 확정해 내년 상반기 방송을 준비하고 있다. <미스터 선샤인>은 전체 방송사를 통틀어 2018년 나오는 드라마 가운데 최고 기대작으로 꼽힌다. 화려한 출연진은 물론이고 앞서 <태양의 후예>와 <도깨비>로 신드롬을 만든 김은숙 작가의 차기작이란 사실에서 대중은 물론 관련 업계의 관심까지 집중되고 있다. 내년에도 드라마 업계의 중심은 tvN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기획력에서도 지상파는 케이블채널에 선수를 빼앗기고 있다. 최근 2~3년 동안 드라마 유행 흐름을 주도한 곳은 tvN과 OCN이라는 데 이견을 갖기 어렵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1990년대 등을 다룬 시대물의 인기, <미생>로 대표되는 직장인들의 삶을 다룬 오피스드라마, <시그널>이나 <비밀의 숲> 등 사건을 추적하는 추리물이나 법정극까지 유행 드라마 장르는 대부분 케이블채널이 먼저 시도해 성공을 거둔 뒤 지상파가 뒤따라 시도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지상파가 중간광고를 도입하면서 드라마 시청률은 더 곤두박질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케이블채널 시청자에 비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지상파 시청자들이 중간 광고 도입에 따라 시청권을 방해받고 있다는 지적을 꺼내고 있다. 최근 지상파 미니시리즈에서 최저 시청률 기록이 연이어 등장하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9월 막을 내린 KBS 2TV 미니시리즈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은 시청률 3.1%(닐슨코리아·이하 동일기준)라는 믿기 어려운 기록을 세웠고, 현재 방송 중인 MBC <20세기 소년소녀>는 톱스타 한예슬을 주연으로 내세우고도 시청률 3~4%에 머물고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