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잡고 싶다면… 자존심만 세워주쇼”
지난 11일 한국시리즈 6차전 삼성과 넥센의 경기에서 삼성이 넥센을 11 대 1로 꺾고 우승을 차지한 후 안지만이 트로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그동안 부상도 있었고, 1군이 아닌 2군에 머물렀던 적도 많았고, 또 불펜투수는 등록 일수를 채워야 하는데 그걸 못 채운 해가 세 번 정도 있었다. 그렇다보니 FA가 되기까지 12년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선발 투수의 FA 자격 충족 요건은 규정이닝의 ⅔이닝 이상을 채워야 하지만 불펜요원(마무리 등)들은 그 규정이닝의 ⅔ 이상을 채우는 게 어렵다. 그래서 1998년부터 투수가 던진 이닝과 관계없이 1군 등록 일수가 145일이 넘어가면 FA 자격 요건 시즌을 충족시킨 것으로 간주한다.)
―선수들로선 연봉 협상 때마다 구단 관계자와 부딪히는 부분이 여전히 어려운 숙제일 듯하다. 특히 FA 협상을 직접 한다는 것은 메이저리그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연봉 협상은 에이전트가 해줘야 한다. 해마다 연봉과 관련해서 구단과 의견 차이를 보일 때 결국 손해 보는 건 선수다. 기사에 ‘연봉 협상 결렬’이란 내용이 뜨면 해당 선수는 돈밖에 모르는 나쁜 놈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구단의 결정에 응하자니 자존심이 상한다. 그래도 마지막은 선수가 접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지난 해에도 연봉 협상 때 구단과 트러블이 있었다. 괌에 일찍 들어가 운동을 시작하려 했던 계획이 틀어졌다. 주위에선 ‘한 번 갈 데까지 가보라’며 응원을 보냈지만 끝까지 버티질 못했다. 여론이 악화되고, 구단에서 눈치주고, ‘에이 그냥 내가 참자’며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연봉 협상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 무엇인가.
“역시 지난해의 일이다. 단장님과 마지막까지 실랑이를 벌이다 구단의 요구에 사인하는 대신 단장님으로부터 이 말 한 마디 듣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동안 누구보다 출전 이닝 수도 많고, 팀을 위해 노력을 다했다. 그러니 고생했다라고 말 한 마디 해 달라. 그 말 한 마디 해주시면 깔끔하게 사인하겠다’고 했지만 끝까지 안하시더라. 그 말 들을 때까지 사인 안하고 버티다 막판에 사인한 것이다. 물론 ‘고생했다’라는 인사는 듣지 못했고. 연봉 계약서에 사인하고 돌아오면서 생각해봤다. 구단 단장이 선수에게 시즌 마치고 연봉 계약하면서 ‘고생했다’라고 말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인가? 그게 단장의 자존심을 훼손시키는 말인가? 정말 그런가? 많이 서운했었다. 물론 지금 그 단장님은 팀을 떠나셨고, 시즌 중에 새로운 단장님이 오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기대를 하고 있다.”
―FA 선수이자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FA 행보에 대해 어떤 계획을 세웠나.
“내가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지 않는 한 국내 무대에서 뛴다면 삼성 유니폼을 계속 입고 싶다. FA 협상에서 다른 전략은 없다. 이전처럼 내 자존심만 건들지 않는다면 사인할 것이다. 흔히 구단에선 계약을 앞둔 선수에게 ‘넌 우리 팀 아니면 갈 데 없어’라는 시각으로 접근한다. 그런 태도 대신 ‘넌 우리 팀 선수잖아’라고 품어 주면 나로선 끝이다. FA에 선수들이 원 소속팀과 계약하지 못하고 타 팀으로 옮기는 건 돈의 많고 적음보다 이 팀이 나를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인격적으로 날 존중해주는지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금액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는 한 삼성과 계약할 것이다.”
―한국시리즈 얘기를 해보자. 6차전까지 오는 동안 가장 긴장됐던 경기가 언제였나.
“난 이상하게 내가 마운드에 오를 때는 전혀 긴장되지 않는데, 벤치에서 경기를 지켜보는 건 미칠 것 같다. 보는 게 너무 힘들다. 차라리 내가 올라가서 던지는 게 낫지. 내가 오르지 못하고 지켜본 모든 경기가 긴장된다.”
―별명이 ‘만루변태’이더라. 3루까지 꽉 채워놓고 승부를 거는 스타일로 인해 팬들이 붙인 별명인데, 본인 스스로도 이런 상황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난 어떤 상황에서도 잘할 자신이 있다. 1점차 승부이고 8회 만루 상황에서 안타 1개만 나오면 역전이 되는, 그런 경기를 좋아한다. 물론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미디어데이 때 선수가 선수에게 질문하는 순서가 있었다. 그때 넥센 이택근 선배가 내게 강정호와 승부할 때 초구는 직구를 던질 것이냐고 묻더라. 순간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왜냐하면 몸 상태가 온전치 않았기 때문이다. 담이 걸린 상태로 훈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그걸 외부에 알리지 않은 터라 거짓말하면서 ‘무조건 직구를 던질 것이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계속된 추궁에 직구를 던지겠다고 말하고선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몸 컨디션이 좋았다면 자신 있게 초구 직구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난 이런 승부를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시리즈에서 강정호를 상대하진 못했다.
“그래서 1차전 때 불펜에서 몸을 풀며 극도의 긴장과 두려움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당시 불펜에서 몸을 풀고 있었지만 우리가 넥센한테 2-4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감독님은 날 마운드에 올리지 않으셨다. 내 몸 상태를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을 풀고 있는 나로선 언제 투입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칫 강정호를 만나게 된다면 난 미디어데이에서 약속한 대로 초구는 무조건 직구를 던져야만 했다. 컨디션은 안 좋고, 직구는 던져야하고, 지고 싶진 않고, 이런 고민과 갈등 속에 있다가 1차전 패배로 경기는 끝나고 말았다.”
지난 9월 인천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전에서 안지만이 8회말 2사 후 대만 타자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제공=삼성 라이온즈
―오승환이 한신 타이거스에 입단하면서 올 시즌 안지만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다. 오승환의 공백에 대해 걱정이 되진 않던가.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자신 있었다. 스프링캠프를 치르며 (임)창용이 형이 (미국에서) 돌아올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부담되지 않았다.(웃음) 난 창용이 형이 오면 힘이 돼주고 싶었지, 짐이 되고 싶진 않았다. 창용이 형이 우리 팀에 합류한다면 나도 형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메이저리그에 오르지 못하고 돌아왔지만, 시즌 개막 후 임창용을 반기는 삼성 팬들의 환호와 응원이 대단했었다.
“대구구장이 난리가 났었다. 역시 임창용은 임창용이구나 싶더라. 나도 형처럼 팬들의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가 봐도 창용이 형은 정말 멋진 사람이다. 야구도, 인간적으로도.”
―투수라면 누구나 선발을 꿈꾼다. 그런데 선발이 아닌 불펜에 머물렀다. 선발투수로 활약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이었나.
“삼성은 선발 투수 자원이 넘쳐났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내 투구 수의 한계였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그걸 극복했어야 하는데, 잘 안됐다. 어렸을 때는 선발투수가 제일 쉬워 보였다. 일주일에 한두 번 던지는 데다 몸 관리 제대로 할 수 있고, 연봉도 많이 받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선발투수가 부럽기도 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까 너무 힘들었다. 패하면 다음 경기를 기다릴 때까지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불펜투수가 내게 맞는 자리였다. 편했다. 중간도 해보고, 마무리도 맡아봤는데 중간 보다는 마무리 투수의 부담이 두세 배 이상은 컸다. 선발과 중간계투가 잘 만들어 놓은 점수를 마지막에 좋은 결과로 완성시켜 한다는 책임감이 상당했다. 경험에 의하면 난 중간 계투 역할이 잘 맞는 것 같다.”
―해외 진출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나?
“만약 일본에서 제의가 있다면 가고 싶긴 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그러나 내게 관심이 있는 팀이 있을까 싶다. 만약 있었다면 에이전트가 귀띔이라도 해줬을 텐데 아직까진 감감무소식이다. 메이저리그는 중간계투의 선수가 가서 제대로 대우 받고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다. 거기서 거기라면 아예 안 가는 게 낫다.”
―김광현은 샌디에이고가 제안한 포스팅 금액 200만 달러를 받아들였다. 만약 안지만이 이런 상황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지 궁금하다.
“나 같았으면 그 정도의 포스팅비를 받고선 가지 않을 것 같다. 외국 선수를 영입하는데 몸값을 낮춰서 데려간다면 그 선수는 즉시 전력보다는 1~2년 이후의 상황을 염두에 둔 영입이기 때문에 그 이후 선수의 성적에 따라 계속 가든가 아니면 팀을 떠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난 광현이가 제대로 대우 받고 갔으면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광현이의 생각을 존중하고 응원하고 싶다. 그 또한 경험이고, 후배들에게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안지만은 자신의 천적으로 김동주와 장성호를 꼽았다. 이유를 묻자, “홈런 포함해서 그 두 선배들에게 정말 많이 맞았어요”라고 답한다. 그런데 그의 천적들은 둘 다 올 시즌 소속팀을 떠났다. 새로운 팀에서 다시 안지만을 상대할지, 아니면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대구=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윤성환 오승환 안지만 ‘동거’ 시절 이야기 “게으른 막내 땜에 형들이 고생 좀 했죠” 윤성환, 오승환, 안지만은 2008년 말 대구구장의 인근 빌라에 전세를 얻어 2년여간 동거 생활을 했었다. 한 살 터울씩인 세 사람은 서로 필요에 의해 자연스레 한 집에서 ‘살림’을 차렸는데 막내 안지만은 두 형들로부터 원성을 샀던 동생이었다.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지난 7일 한신 오승환이 서울 목동구장을 방문했다. 왼쪽부터 윤성환, 오승환, 안지만, 임창용. “내가 좀 게으른 편이다. 형들이 뭘 시키면 제대로 해놔야 하지만,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엔 형들이 하게끔 만들었다. 그래서 그들의 불만이 많았다. 문제는 그런 따가운 시선조차 개의치 않았던 내 태도였다. 2년 정도 지나서 승환이 형이 자취를 한다고 집을 나가면서 3인방의 동거가 막을 내렸다. 성환, 승환이 형은 각각 집을 구해 나갔고, 난 부모님 집으로 들어갔다. 막상 집에서 살아보니까 그 생활이 정말 편하더라. 형들 눈치 안보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어서(웃음).” 안지만은 임창용과 함께 대구 ‘4인방’의 추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었다. 투수들만이 공유하는 끈끈한 정이 이들 사이에 깊숙이 자리해 있는 듯하다. 그래서 물었다. 안지만에게 ○○○이란? ―안지만에게 윤성환이란? “좋은 형! 이 형은 정말 좋은 형이다. 아무리 오래 만나도 절대 나를 버리거나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다.” ―안지만에게 임창용이란? “나의 롤 모델. 형을 보고만 있어도 행복하다. 만약 창용이 형이 여자라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걸 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형은 그냥 ‘맨’, ‘남자’이다.” ―안지만에게 오승환이란? “친구같은 형? 가끔 농담하다가 반말을 하며 무지 화를 내는, 편한 옆집 형 같은 스타일이다.” 안지만은 운동면에선 윤성환을, 내용적으론 오승환을, 질적으론 임창용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임창용이 일본과 미국에서 활약할 때 오승환, 윤성환, 안지만은 스프링캠프에서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서로 개인 운동 안하는 척하다가 몰래 운동을 했고, 결국엔 서로에게 걸리는 상황의 연속이었다는 것. 두터운 형제애를 나누는 선수들도 야구와 관련해선 치열하게 경쟁했고, 앞으로도 경쟁을 멈추지 않는 동료, 형, 그리고 동생 사이인 것이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