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썸남썸녀’ 안 보이고 ‘맛집 순례자’만 득실
지난 12월 20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새미프 신촌 산타마을’에 참가자들이 줄지어 접수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솔로대첩’으로 불린 이날 행사에는 남녀 1000여 명이 참가했다.
지난 2013년 여의도 솔로대첩을 적확하게 묘사한 명언이다. 솔로대첩을 가겠다고 친구들에게 알리자 하나같이 “남자들밖에 없을 텐데 거길 왜 가”라는 반응이었다. 어떤 기획도, 조직도 없이 장소와 시간만 정해두는 바람에 ‘남탕’을 이룬 전년도 솔로대첩을 연상한 까닭이었다.
하지만 올해 진행방식은 완전히 바뀌었다. 사전참가신청으로 남녀 성비를 맞췄고, 사전 섭외된 신촌 지역 18개 식당을 돌며 2:2 미팅을 하는 방식이다. 대회 한 달 전부터 받은 참가신청에는 사람들이 몰려 목표 인원인 남녀 각 500명을 채웠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12월 10일에는 각 100명씩 추가신청까지 받았다.
기자에게 떨어진 발등의 불은 친구 섭외였다. 2인 1조로 참가해야 하기에 취재라는 참가의 목적을 아는 친구가 필요했다. 20대 후반의 나이인지라 대부분의 친구가 남자친구가 있었고, 무엇보다 솔로대첩에 나올 남성들에 대한 기대감이 전혀 없었다. 사정사정 끝에 솔로인 친구 강 아무개 양을 신촌으로 불러냈다.
당일 신촌 젊음의 거리 일대는 흡사 짝짓기 철을 맞은 ‘세렝게티’ 같았다. 남성들은 행사가 시작하기 전부터 먹잇감 사냥에 나선 사냥꾼들 같았다. 일찌감치 나와 참가자임을 알리는 손목밴드를 받고 ‘수질’을 살폈다. 현장 분위기를 살피려 한쪽에 서 있던 기자에게도 한 남성이 다가와 “저, 4시 이후에 시간 좀 내 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근래 경험한 어떤 집단보다도 목표성취 의식이 뚜렷한 집단이었다.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지나가던 남성 둘은 “야 이건 전쟁이야, 전쟁”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기자도 현장접수를 위해 등록 부스를 찾았다. 현장접수를 하려는 여성은 우리 일행이 처음인 듯했다. 난색을 표하던 진행요원은 “정말 참여할 의지가 확고하느냐”고 정색하며 물었다. 접수해놓고 나오지 않은 여성참가자들이 너무 많아 특별히 받아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에게 11번 식당으로 가라고 안내했다. 나이순으로 식당을 배치한 것으로 보아 20대 후반인 기자 일행은 ‘노땅’ 축에 속했다. 접수를 받은 진행요원도 “아무래도 20대 초반 참가자가 가장 많다”고 설명했다.
안내받은 식당으로 가 잠시 기다리자 두 명의 남성이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아 테이블에 합석했다. 편의상 한 명은 딱따구리남, 다른 한 명은 침착남이라고 해두자. 다른 소개팅과 다른 점은 이름과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자가 앉은 테이블에서 누구도 상대의 이름을 묻지 않았고, 그건 옆 테이블도, 그 옆에 있는 테이블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딱따구리남은 자리에 앉자마자 랩에 가까운 속도로 질문을 퍼부어댔고, 그의 난데없는 랩에 기자는 진땀을 흘리며 대답하기 바빴다. 회사 얘기부터 맛집 얘기, 음식에 대한 평가, 가족 얘기까지 두서없이 자신의 얘기를 쏟아냈다. 그 모습이 딱따구리를 연상시켰다. 그의 기세에 눌려 침착남은 기자와 친구 강 양이 질문할 때 빼곤 발언권을 얻지 못했다.
서로 직장의 위치와 집의 위치를 공유하며 접점을 찾으려 애썼다. 서울 명동 근처가 직장이라는 딱따구리남은 시청역 인근이 회사라고 밝힌 기자 일행에게 명함을 건네며 “꼭 한 번 밥을 살 테니 연락하라”고 말했다. 기자와 강 양에게도 명함을 요구했지만 핸드백 속에 넣어둔 명함지갑은 비밀로 하고 “오늘은 명함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고 둘러댔다.
더 있다가는 딱따구리남의 쉴 새 없는 랩에 멘탈이 산산조각 날 것만 같았다. 음식이 남은 상태에서 주섬주섬 외투를 챙기자 딱따구리남과 침착남은 “먼저 일어나도 괜찮다”며 기자 일행을 순순히 보내주었다. 두 남자의 지나친 ‘배려’에 그들이 왜 솔로인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식당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데 골목에 서성이던 남성 한 명이 기자 일행에게 다가왔다. 손목에 찬 팔찌를 확인하곤 “솔로대첩 오셨나 봐요.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번호 좀 교환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했다. 그의 손목에는 솔로대첩 참가자임을 알리는 팔찌는 없었다. 정중하게 거절하고 뒤돌아서며 내심 우쭐했지만 그런 기분은 몇 초 가지 못했다. 그 남성은 지나가는 또 다른 여성일행에게 같은 수법으로 다가가고 있었다. 참가비는 내지 않고, 솔로 표식을 하고 다니는 여성을 찾으려는 ‘무임승차족’이었다.
순진남은 벙찐 얼굴로 직장인의 세계에 대해 물었다. “직장인들은 모두 명함을 갖고 있느냐”, “무슨 과를 나와야 그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느냐” 등의 질문이었다. 사촌 남동생이라도 만난 기분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이번이 세 번째 테이블이라는 두 사람의 얼굴엔 벌써부터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건방남은 “친구들은 참가비가 비싸다고 같이 가기 싫어했다. 나와 보니 낸 만큼의 결실은 없는 것 같다”며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는 대화주제도, 만남을 이어갈 열의도 없었다. 나온 치킨이 채 식지 않은 상태에서 자리를 떴다. 건방남은 심지어 인사도 없이 식당을 나갔다.
두 시간 남짓 체험한 솔로대첩은 승자 없는 전쟁이었다. 맛집탐방을 주 목적으로 나온 여성들도, 짝을 찾기 위해 나온 남성들도 실망한 분위기였다. 섭외한 식당의 음식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고, 메뉴 선택권조차 없었다. 그나마도 정식 메뉴라기보단 급조한 티가 역력한 적은 양의 음식이 나왔다.
남성들 역시 정해진 식당에서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찾아갈 수 없었다. 입장한 순서대로 현장 스태프들이 좌석을 배치해줬다. 식당에 입장한 남성 둘이 안내받은 테이블의 여성을 보고 그냥 돌아 나가는 장면도 목격했다. ‘3포세대’의 연애를 위한 축제라는 행사 취지가 무색했다. 연애의 가능성보다는 연애의 불가능성을 절절히 느끼고 돌아간 날이 아니었길 바란다. 골목을 나오니 비둘기 두 마리가 다른 방향으로 날아오르는 게 보였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