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 상승 기대하고 소재지 밖 지역·랜드마크 이름 붙여…“소비자 기만 여부 공정위서 판단해야”
‘서울숲’과 관련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서울숲’은 서울 성동구 성수1동 1가에 위치해 있는데, 성수동에서 벗어나 있는 ‘서울숲’ 아파트가 과반이다. '일요신문i' 조사 결과 ‘서울숲’을 연상하게 하는 성동구 내 아파트 이름은 모두 10곳이다. 이 중 성수동 소재거나 조망권에 드는 아파트는 5곳에 그쳤다. 서울숲푸르지오1, 2차아파트는 서울 성동구 금호동 소재이며 서울숲한신더휴아파트와 서울숲삼부아파트는 행당동 소재다. 특히 서울숲삼부아파트는 서울숲과 거리가 지하철로 3개 역 이상이고, 오히려 약 200m 거리에 떨어져 있는 왕십리역과 가깝다.
서울숲푸르지오1, 2차 아파트의 시공을 맡은 대우건설 관계자는 “서울숲푸르지오아파트는 2007년 분양 당시 지금의 아파트명이 아니라 금호 푸르지오였는데 입주 후 아파트 조합원에서 지금 이름으로 바꾼 것”이라며 “소재지를 헷갈리도록 했다고 해서 이를 금지하거나 제재할 수 있는 법이 따로 없기에 법을 어긴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신정동에 있는 힐스테이트가 목동 힐스테이트로 분양된 사례도 있듯 우리 건설사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에도 비슷한 사례가 적지 않다. DMC한강자이 더 헤리티지, DMC자이 더리버, DMC한강숲중흥S-CLASS 아파트는 모두 아파트명에 ‘DMC’를 포함했다. DMC라 불리는 디지털미디어시티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하지만, 위 세 아파트는 경기 고양시 덕양구 소재로 행정구역이 아예 다르다.
얼마 전에는 서울 동작구 흑석 11구역 재개발 사업에서 착공 관련 자료를 배포하면서 아파트 단지명을 ‘서반포 써밋 더힐’이라고 소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흑석동 대신 ‘서반포’를 붙여 부촌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반포를 연상시켰다는 이유에서다. 더욱이 ‘서반포’라는 지명은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다. 시공사인 대우건설 관계자는 “우리가 쓴 자료가 아니고 신탁사가 쓴 것이긴 하지만 ‘서반포’라는 명칭은 사실 2019년, 2020년부터 종종 쓰였기에 아예 없는 말을 쓴 게 아니다”면서 “그렇게 따지면 고양시에 있는 ‘서서울CC’ 골프장도 해당 지명이 없는데 비슷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소재지와 무관한 아파트 단지명을 붙이는 배경에는 아파트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꼽힌다. 서울 성동구에 거주하는 한 시민은 “아파트를 분양받을 때 누구나 아는 랜드마크가 붙은 이름의 아파트면 더 선호할 것 같다”며 “위치나 집값 등 정량적 가치가 비슷하다면, 아파트 이름에 유명 랜드마크가 포함되는 곳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흑석 11구역 재개발 단지에 대한 문의가 최근 급증했다”며 “‘서반포’가 진짜 맞냐는 고객들도 늘었는데, ‘반포’라는 지명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지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작명이 실제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기는 힘들다고 말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더 좋은 아파트 혹은 명품 아파트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조합원이나 아파트 계약자들을 유인하기 위한 마케팅 효과를 노릴 수는 있겠지만 집값 상승을 견인하는 요소가 되기는 어렵다”고 했다. 김 소장은 먼 거리의 랜드마크나 고급 지명을 가져다 쓰는 것과 시세 상승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이 같은 단지명은 시행령 위반에 해당될 수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부동산의 표시·광고에 대한 심사지침에 따르면 '공익시설이나 편의시설 등이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가까이 있는 것처럼 표시·광고함으로써 생활 여건이 실제보다 유리한 것으로 표시·광고하는 경우 부당한 표시·광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이에 따라 부당광고로 판단되면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라 최대 5억 원의 과징금을 받을 수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는 분양 신청 전 현장보다 모델하우스에 먼저 가는데, '서반포' '서울숲' 'DMC' 등을 명시해 놓은 광고에 속아 넘어가도 어쩔 수 없게 된다”며 “해당 명칭이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오도한다는 여부는 공정위에서 빠른 시일 내에 판단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양보연 기자 by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