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밥상 넘보다 제 밥그릇 뺏겼다’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이 지난 14일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자리에서 형의 해임에 대해 “회장님(신격호 회장)이 하신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답한 것과 신 전 부회장이 ‘사임’이 아닌 ‘해임’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사실을 종합, 유추해보면 ‘신 전 부회장이 아버지인 신격호 회장의 뜻을 거슬러 사달이 났다’고 요약할 수 있다.
‘일본롯데는 장남 신동주, 한국롯데는 차남 신동빈’이라는 롯데그룹의 후계구도에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3년. 신동주 전 부회장은 그 해 8월부터 롯데제과 주식을 꾸준히 매입해 지난해 3분기까지 지분율을 3.92%까지 높였다. 롯데제과 3대주주인 신동빈 회장의 5.34%에 1.42% 차이로 좁힌 것.
신 전 부회장의 롯데제과 지분 매입이 주목받은 이유는 롯데제과가 그룹 지주회사 격인 롯데쇼핑 지분 7.86%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 ‘롯데제과→롯데쇼핑→롯데알미늄→롯데제과’의 순환출자의 핵심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신 전 부회장의 롯데제과 지분 매입은 지난해 8월 말까지 계속됐다.
재계에서는 신 전 부회장이 무려 1년여에 걸쳐 한국 롯데제과의 지분을 매입하는 이유를 궁금해 했다. 일본롯데를 책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큰돈을 들여가며 한국 롯데제과의 지분을 지속적으로 매입할 이유가 없었다. 롯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경쟁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당시 롯데 측은 “책임경영과 상호출자 해소 차원”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그룹 지주회사 격인 롯데쇼핑의 최대주주는 신동빈 회장으로 13.4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신 회장이 지주회사 격인 롯데쇼핑을 지배하면서 한국롯데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쇼핑 2대주주는 신동주 전 부회장이다. 그런데 신 전 부회장의 지분은 13.45%로 최대주주인 동생 신동빈 회장과 불과 0.01%포인트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주식 수로는 1744주 차이다.
지난 16일 현재 롯데쇼핑 주가는 25만 원으로 4억 3600만 원만 투자하면 1744주를 살 수 있다. 신 전 부회장이 경영권에 욕심이 있었다면 주당 180만 원이 넘는 롯데제과 주식을 매입하기보다 롯데쇼핑 주식을 매입하는 것이 훨씬 빠른 길이다. 두 회사 모두 코스피에 상장돼 있어 매입하기도 쉬울 뿐 아니라 롯데쇼핑 주가는 롯데제과의 7분의 1밖에 안 돼 돈도 적게 든다.
재계 일각에서는 장남 신동주 전 부회장이 차남 신동빈 회장(왼쪽) 몫의 한국롯데를 넘보자 아버지 신격호 회장(오른쪽)이 이를 보다 못해 직접 손을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일요신문 DB
롯데그룹 지분 구조를 들여다보면 신 전 부회장이 롯데쇼핑이 아닌 롯데제과 주식을 사들인 까닭을 짐작할 수 있다. 신동빈·신동주 형제 다음으로 롯데쇼핑 지분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주는 ㈜호텔롯데로 8.83%다. 그 다음 한국후지필름㈜과 롯데제과가 각각 7.86%씩 보유하고 있다. 롯데쇼핑 3대주주인 호텔롯데의 최대주주는 19.07% 지분을 보유한 일본롯데홀딩스다. 다시 말해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제과만 본인 쪽으로 끌고 오면 한국과 일본 롯데 모두를 장악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를 보다 못한 신격호 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의 일본 내 모든 지위를 박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일본롯데홀딩스 최대주주는 27.6% 지분을 갖고 있는 ‘광윤사’이고 광윤사의 최대주주가 바로 신격호 회장이기에 신동빈 회장의 “아버지의 뜻”에 부합한다.
신 전 부회장 해임으로 신동빈 회장의 입지가 더 공고해졌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신 회장이 한국롯데뿐 아니라 일본롯데마저 ‘접수’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도 적지 않다. 신 회장이 지난 10일 일본을 방문해 일본롯데 상황을 파악한 사실은 이 같은 예측에 힘을 보탠다. 하지만 롯데 측은 “신 전 부회장 해임은 실적 부진에 대해 (신격호 회장이) 경고한 것”이라며 “신동빈 회장이 일본롯데를 경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롯데 측 말마따나 신 전 부회장 해임이 실적 부진에 대한 경고 차원인지 경영권 다툼의 불씨를 제공한 것에 대한 단죄 차원인지는 오는 3월 안에 판가름 날 듯하다. 신동주 전 부회장은 한국 내 롯데 계열사, 즉 롯데건설·롯데알미늄·호텔롯데 등의 등기이사로 올라 있다. 이 중 롯데건설 이사 임기가 오는 3월 만료된다. 재계에서는 신 전 부회장의 이사 재신임 여부가 곧 롯데그룹 후계구도의 길을 알려줄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알미늄 등기이사직은 오는 6월, 호텔롯데 등기이사직은 내년 3월 각각 만료된다.
한편 신 전 부회장의 해임은 일본 현지 언론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산케이신문> 등 일본 언론은 ‘형제 분업의 종말’이라는 데 초점을 맞춰 신 전 부회장 해임 소식을 알렸다.
<요미우리신문> <아사히신문> 등은 신 전 부회장 해임에 대해 롯데홀딩스가 “사내 기밀 사항이라며 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전했다. <산케이신문>은 “재산분할을 둘러싼 다툼에서 신격호 회장의 노여움을 사 해임으로 연결됐다는 견해도 나온다”며 보도했다.
이 사안을 가장 크게 다룬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롯데홀딩스 관계자 말을 인용, “신동주 전 부회장과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롯데홀딩스 사장 사이에서 경영 방침을 둘러싼 갈등이 있었다”며 “형제간 다툼과 관계없다”고 전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