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횡령수법 총동원 수십억 챙긴 원장도…
어린이집 보육교사 아동학대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황제 원장’의 존재도 부각되고 있다. 네 살배기 여아 폭행 사건이 발생한 인천 연수구 어린이집 전경.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3년 정도 바짝 하면 아파트 한 채 정도는….”
서울에서 5년 동안 민간 어린이집을 운영했던 한 전직 원장은 기자에게 어린이집 원장 수익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적자에 쓰러지는 어린이집도 꽤 있지만, 결국 어린이집 운영에 너도나도 나서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 앞서의 전직 원장은 “이 바닥도 능력에 따라 수익이 다르다. 그런데 그 능력이 아이들을 잘 케어하는 능력이면 좋겠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돈 있는 원장들은 다 그만한 ‘노하우’가 있다”라고 전했다.
어린이집 업계에서 ‘노하우’란 결국 돈을 불리는 방법이다. 문제는 이런 돈을 불리는 방법에서 각종 편법이 동원된다는 점이다. 현재 어린이집 회계 규정은 국공립과 민간 구분 없이 비영리회계인 ‘사회복지법인 및 사회복지시설 재무회계규칙’을 따른다. 즉 민간 어린이집이라도 비영리단체로 구분되기 때문에 엄격히 말하면 수익을 추구할 순 없다. 이에 민간 어린이집 측에서는 “회계규칙이 민간 어린이집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다”며 끊임없이 항의를 해왔다.
때문에 편법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원장이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고 복수의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민간 어린이집 한 관계자는 “정원이 꽉 찰 경우 어린이집 원장이 평균 가져가는 수익(월급)은 ‘250만 원’에서 많으면 ‘300만 원선’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정원이 차지 않는 경우가 꽤 있고 여러 부가비용이 들기도 해 월급만 갖고는 쪼들리는 원장들도 상당히 많다”라고 전했다.
통상 업계에서는 ‘황제 원장’의 반열에 들기 위해서는 연간 ‘1억~2억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려야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신의 영역’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를 위해서는 갖가지 수법이 동원되어야 하는데, 그 실상은 상당히 충격적인 것으로 파악됐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에 따르면 우선 가장 흔한 수법은 ‘식비 빼돌리기’다. 정부가 지원하는 보육료 중 어린이 1인당 하루 급식비는 최소 ‘1745원’이다. 일부 어린이집 원장들은 이 돈을 받아 식자재 납품업체와 짜고 횡령하는 방식을 쓴다. 어린이집의 비리를 고발한 책 <어린이집이 엄마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50가지 진실>(사회복지법인 큰하늘어린이집 이은경 대표 지음)에 따르면 일부 원장들은 식자재 납품업체와 계약할 때 업체에서 ‘대포통장’과 ‘대포카드’를 갖고 오지 않으면 계약을 해주지 않고 버틴다고 한다. 대포통장에 급식비를 전부 이체 시켜놓고 후에 현금으로 뽑아서 차액을 챙긴 후, 다시 납품업체의 ‘진짜 계좌’로 입금하기 위함이다. 여기서 대포통장은 후에 회계 점검이 나올 때 ‘면피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차액을 챙겨 식자재 가격이 낮아지다 보니 학부모에게 나눠주는 식단표와 실제 식단은 차이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경기 지역에서 어린이집 교사를 하고 있는 이 아무개 씨(여·24)는 “식단에는 갈비탕으로 되어 있는데 실상은 주먹만 한 고기 한 덩이를 넣고 30명쯤 되는 아이들을 먹인 적이 있었다. 양심에 찔려서 ‘이래도 되느냐’ 원장에게 물어봤더니 ‘뭘 그런 걸 물어보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더라”라고 전했다. 이밖에도 닭 한 마리로 ‘90명’을 먹였다는 한 어린이집의 얘기는 업계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아직도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선량하고 양심적이지만 악의를 가지고 자신들의 배만 채우려고 할 경우 얼마든지 불법행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는 것이다.
식비 빼돌리기가 소액을 횡령하는 비리 방식이라면 ‘특별활동비’는 그보다 좀 더 규모가 크다. 특별활동비란 어린이집에서 보육교사가 아닌 외부 강사가 영어, 미술, 음악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따른 비용을 말한다. 어린이집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상 학부모들이 내야하는 특별활동비는 한 달에 10만 원에서 20만 원선이다. 이 돈은 몇몇 원장들 사이에서는 ‘비자금’으로 유용하게 쓰인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앞서의 어린이집 교사 이 씨는 “특별활동비는 부풀려 받아도 부모들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쓰이는지 알 수 없다. 따로 강사를 어떻게 섭외해서 강사료를 얼마나 주는지는 오로지 원장 권한이기 때문에 사실상 ‘눈먼 돈’이다”라고 전했다.
아동 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인천 어린이집 휴원 안내문.
이밖에 ‘유령 교사’를 동원하는 방법도 종종 쓰인다. 보육교사 자격증만 빌려오고 실제로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교사를 쓰는 방식이다. 남편을 원장으로 올려놓고 실질적인 운영은 아내가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전해진다. 모두 국가보조금을 타기 위해 ‘꼼수’를 쓰는 셈이다. 육아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어린이집에서 ‘황당한 제안’을 해왔다는 글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30대 엄마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첫째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원생이 꽉 차 둘째를 등록 못 시켰는데 어린이집 원장이 둘째를 미리 이름만 등록시켜 놓자고 하더라. 알고 보니 양육수당을 나눠먹자는 얘기였다”라고 밝혔다. 현재 정부가 어린이집에 다니는 취학 전 아동에게 지원하는 보육료는 만 0세의 경우 월 39만 4000원, 만 1세 월 34만 7000원, 만 2세 28만 6000원, 만 3~5세 22만 원이다. 앞서의 경우와 같이 ‘유령 원생’을 등록시킨다면 대략 30만 원을 원장과 학부모가 나눠 15만 원씩 갖는 셈이 된다.
이렇게 갖은 수법으로 탈탈 턴 비자금은 일부 원장들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등장한 ‘황제 원장’들의 얘기는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전해지고 있다. 기자와 직접 만난 한 어린이집 전직 원장 B 씨는 수도권 지역에서 유명한 한 ‘황제 원장’의 얘기를 들려줬다. B 씨는 “내가 알고 있는 원장은 경기도 지역에서만 어린이집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었다. 비용으로만 치자면 수십억 원 자산가인 셈이다. 하지만 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고 가끔 들러서 잔소리만 하는 식이었다. 심지어 에어컨도 못 틀게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교사는 자르기로 유명했다”며 “오로지 그 원장의 역할은 어린이집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여기저기 사람을 만나고 다녔는데 혼자서만 온갖 회에 대게에 맛있는 것을 먹고 아이들은 멀건 김칫국만 먹이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다. 그러다가 사람을 많이 알아서인지 보육 전문가로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지금 보면 로비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전했다. 이밖에 황제 원장들은 어린이집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골프회원권을 사거나 집, 땅을 사는 등의 전언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부 ‘황제 원장’들은 브로커를 끌어 들여 권리금을 얹은 어린이집을 파는 방식으로 이윤을 챙기는 경우도 있다. 권리금을 받으면 합작한 브로커와 반반 나누는 식이다. 해당 방식은 어린이집 내부 공금 횡령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한다(박스기사 참조). 그만큼 수익성이 좋다는 것. 브로커와 접촉해봤다는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원장이 신경 쓰지 못하는 일을 대신 해결해주기 때문에 브로커를 끼는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불법적인 요인도 상당 부분 생긴다”라고 전했다.
결국 ‘황제 원장’으로 등극하기 위해선 갖가지 편법적인 요인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일부 어린이집 관계자는 “부자 원장은 거의 극소수이고 실상은 빚내고 어린이집 차려서 쪼들리다가 파산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라고 반박했다. ‘구조적인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17년 동안 어린이집 원장으로 있었던 사회복지법인 큰하늘어린이집 이은경 대표는 “보건복지부와 여성가족부의 일방적 지시와 명령에 순종해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어린이 원장들이 ‘알아서 각자 해먹는 것’을 택했다. ‘다른 어린이집도 다 하는데, 어디 나만 하나. 못하는 원장이 바보고 안 하는 원장이 등신이지.’ 이렇게 자신들의 그릇된 행위를 정당화하는 자위와 조롱과 비웃음만 난무했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