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천사’ 안경 너머 약에 찌든 ‘벼락부자’ 모습이…
‘기부 천사’ ‘검소한 사업가’ 이미지의 유정환 전 몽드드 대표가 엽기 질주를 벌여 큰 충격을 낳고 있다. 몽드드 빌딩 전경. 아래는 유 전 대표의 기부 활동 모습.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마치 음주 운전자처럼 보였던 문제의 남성은 놀랍게도 아기 물티슈 업체 ‘몽드드’의 유정환 전 대표이사(35)였다. 그런데 유 전 대표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음주상태는 아니었지만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횡설수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경찰서로 찾아온 회사 관계자는 “며칠 전부터 이상행동을 보였는데 오늘은 특히나 심한 것 같다”며 병원치료를 원했다.
당시 유 전 대표는 사고의 여파로 발목이 퉁퉁 부은 상태였으며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큰 사고였던 만큼 머리 부상도 충분히 의심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유 전 대표는 회사 관계자를 신원보증인으로 내세워 병원치료를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지 않고 사건현장을 떠날 수 있었다. 강남경찰서 한 관계자는 “신원확인도 됐고 부상의 우려도 있어 병원으로 보냈다. 그런데 사건 직후에는 연락이 잘 되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전화를 피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에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14일 강남 삼성동의 한 호텔에서 유 씨를 긴급체포했다”고 말했다.
다시 경찰을 찾은 유 전 대표는 사고 당일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고 한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횡설수설하던 모습은 전혀 없고 완전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불면증 때문에 처방받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벌인 일이라는 말만 할 뿐 별다른 진술도 하지 않았다. 굉장히 차분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씨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국립과학연구원에서 그의 소변과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필로폰이라 불리는 매스암페타민 양성반응이 나온 것. 그제야 유 씨는 “최근 동남아에서 술을 마시다 우연히 마약을 접했다”고 시인을 하면서도 “사고 당시에는 불면증으로 처방받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벌어진 일”이라고 항변했다.
결국 유 전 대표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도주차량, 도로교통법상 사고후 미조치, 무면허 운전, 절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지난 23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는데 그의 평소 모습을 기억하는 이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몽드드의 한 직원은 “사고 소식도 언론을 통해 들었다. 회사 일에도 열정적이었고 그런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다”며 당황스러워했다.
CCTV에 잡힌 유정환 전 대표의 엽기 질주 모습. 차량 3대를 들이받았으며, 바퀴가 빠진 상태로 500m를 더 달렸다. SBS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 Y> 방송화면 캡처.
그도 그럴 것이 유 전 대표는 성공한 사업가보다는 ‘기부 천사’ 이미지가 강했다. 연예인들과 탄탄한 인맥을 자랑했던 유 전 대표는 사업 초반부터 친한 연예인들과 정기적인 사회봉사 활동을 하며 이를 통해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힌 뒤부터는 희망 나눔 연중 캠페인 ‘3.6 프로젝트’를 통해 연탄 나눔,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밥차, 아동복지 시설 지원, 아프리카 케냐 의료지원 및 봉사활동 등 국내외로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을 이어나갔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창립 5주년 행사를 대신해 피해자 가족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덕분인지 유 전 대표는 회사규모가 커져도 ‘검소한 사업가’라는 이미지를 잃지 않았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 결과 유 전 대표의 기부 천사 이미지 뒤에는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도 감추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단 그는 ‘검소한 사업가’와는 거리가 멀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평소 그는 소박한 기업가 이미지를 내세우며 맨손으로 몽드드를 키워낸 만큼 소비자들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겠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유 전 대표의 주변인들도 “월급만 조금 받을 뿐 본인 손에 남는 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4년 9월 물티슈 유해성 논란 때 “회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 한번만 도와 달라”고 읍소를 한 바 있다. 이때 소비자들은 ‘검소한 사업가’의 호소를 진정성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고 그는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최고급 외제차 벤틀리를 타고 엽기질주 사건을 일으켰다. 그간 그가 쌓아온 ‘검소하고 진정성 있는 사업가’의 이미지는 가면을 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고 소비자들도 “지난해 호소를 할 때 그렇게 믿었는데 뒤로는 벤틀리 최고급 외제차를 타고 다니며 온갖 일들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모르겠다”며 개탄했다.
그는 또한 지난 2012년부터 출장을 이유로 동남아를 들락거리면서 현지에서 최고급 차량을 타고 다니는 모습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는가 하면 몽드드 외에도 다른 사업체도 경영하고 있었다. ‘오리앤닭’이라는 브랜드로 유명한 다이어트 식품 업체인 ‘추푸드’가 그것. 대외적으로 그룹 마이티마우스의 상추(본명 이상철)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등기부등본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상추는 사내이사일 뿐이었으며 추푸드의 주소지는 몽드드의 사무실과 똑같았고 설립 직후부터 지금까지 유 전 대표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한편 어쩐 이유에서인지 유 전 대표는 불면증 외에도 10여 가지 이상의 약물도 복용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의 경찰 관계자는 “유 씨가 복용하고 있는 약이 10여 가지가 넘는다. 통풍도 앓고 있다는데 2년 동안 처방받은 약만 해도 엄청났다. 변호사는 유 씨의 봉사활동 기록 등을 모두 경찰에 제출하면서 인간적인 모습도 강조했다. 또한 말 못할 개인적인 사정이 유 씨를 여기까지 끌고 온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경찰은 유 전 대표의 ‘이상행동’ 이유에 대해 “말 못할 개인적인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기자에게 언급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지칭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말 못할 개인적인 사정’이 자신의 사생활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철저하게 ‘두 얼굴의 사나이’로 살아온 결과인지,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고향 사람들이 본 유 전 대표 “고교 중퇴하고 외지로… ‘모 아니면 도’ 인생 예감” 연매출 500억 원이 넘는 기업체를 운영하는 유정환 전 대표(35)였지만 학창시절 친구 등 그와 절친한 관계임을 밝히는 이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에 <일요신문>은 지난 22일 그가 나고 자란 유 전 대표의 경기 화성시 송산면의 고향을 찾아가봤다. 유 전 대표가 고향을 떠난 지 15년이 훌쩍 넘었지만 마을 어른들은 여전히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남다른 구석이 있었어. ‘모 아니면 도’가 될 인생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지.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않고 외지로 나가버려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사업에 성공했다며 찾아왔더라고. 돈을 많이 벌었는지 부모에게 커다란 2층 집도 지어주고 비싼 개들도 몇 마리 선물해줬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말처럼 유 전 대표가 부모에게 선물했다는 집은 마을 전체에서 가장 크고 화려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비싼 개’로 불리는 여러 마리가 날카롭게 짖어댔는데 그 소리에 유 전 대표의 어머니가 집밖으로 나왔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그는 “우리 아들은 잘못 한 게 없는데 언론이 사람을 죽여 놨다”며 열려있던 대문을 세게 닫고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유 전 대표는 영국 유학 중 피아니스트 이루마를 만나 현재의 몽드드를 일으켜 세운 인연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일부 주민들은 그가 고등학교도 채 마치지 않고 외지로 나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다른 기업 대표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최종학력에 대해 한 번도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다. 그는 화성 S 고를 졸업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요신문>이 학교 측에 확인한 결과 “입학은 했지만 졸업은 못했다”고 대답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