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할 ‘이유’ 있어 자식 목 졸랐나
그런데 사건 발생 5일 만에 경찰에 붙잡힌 범인의 정체는 충격적이었다. 경찰과 구급대원들에게 아이들을 살려내라며 울부짖던 어머니 이 씨가 바로 범인이었던 것. 지난 5일 경찰에 긴급 체포된 이 씨는 우울증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우발적으로 아이들을 살해하게 됐다고 자백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가 진행될수록 이 씨의 자백과 다른 ‘특별한 정황’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의문을 낳고 있는 부분은 이 씨가 과연 무슨 까닭으로 어린 자녀들을 살해했느냐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아이들을 죽인 동기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댔다.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이 씨는 경찰에서 “우발적으로 아이들을 살해한 후 동반자살하려고 했지만 순간 겁이나 그러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사 결과, 생활고와 우울증을 살해동기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우발적인 범행이었다는 부분도 치밀한 계획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선 이 씨의 진술에서 가장 의심이 가는 대목은 생활고를 겪었다는 부분이다. 경찰수사 결과 이 씨는 극심한 생활고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현재 의정부 가능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보증금 500만 원에 월 30만 원짜리 사글세방(66㎡ 약 20평형)에서 살고 있다. 거주하고 있는 집만 보면 이 씨 가정은 경제적으로 여유 있다고 볼 순 없지만 월 수입을 따져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먼저 이 씨의 남편이 서울의 한 피아노 업체에서 조율사로 근무하며 월 200여 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고, 이 씨 또한 간호조무사로 일을 하며 한 달에 130여 만 원의 월급을 받아왔다. 두 사람의 수입을 합치면 연 평균 4000여 만 원에 이른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 부부는 월세 30만 원을 내는 것 외에는 특별한 채무도 없었다.
이 씨가 우울증으로 인해 아이들을 살해했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우울증을 앓기는 했지만 단 한 차례도 약물 치료를 받지 않았다. 이 씨와 함께 직장생활을 한 동료들과 이웃들은 경찰 조사에서 하나같이 “이 씨가 평소 상당히 밝은 성격에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경찰은 “우울증이 범행 원인이 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다.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이 씨의 진술 역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2월 21일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서 내시경 검사에 쓰이는 수면유도제 앰플 한 개와 일회용 주사기 두 개를 훔쳐 범행 전까지 집에 숨겨놓고 있었다. 수사 결과 이 씨는 이 수면유도제를 아이들에게 감기예방주사라고 속여 주사한 후 두 아이를 목 졸라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 비정한 엄마가 남매를 죽인 사건 현장모습. MBC 화면 캡처 | ||
특히 경찰이 이번 범행을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로 보는 데에는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내막이 있다. 수사기법상 강력사건에서 경찰이 가장 먼저 의심하고 수사하는 부분은 바로 피해자의 주변 인물들.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처음 아이들의 숨져있는 상태를 보자마자 어머니 이 씨는 용의선상에서 제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여자아이는 하의가 벗겨져 속옷만 입고 있는 상태로 숨져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당연히 성범죄로 의심을 했고 어머니인 이 씨는 당연히 용의선상에서 제외했다는 것. 경찰은 “이 씨가 의도적으로 아이들의 하의를 벗겨 용의자를 남성으로 한정짓게 만들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경찰은 “아이들을 살해한 직후 이 씨가 태연하게 남편을 데리러 갔던 점, 집안을 강도로 위장하기 위해 어질러놓은 점 등 일련의 행각들이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범행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씨가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한 후 아이들을 살해했고 사후에 취할 행동까지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편 경찰은 “이 씨가 자백을 하지 않고 있지만 범행동기에는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씨의 범행에 또 다른 내막이 있을 가능성을 비추고 있다. 특히 이 씨의 부부사이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이웃들을 탐문수사한 결과 지난해 말부터 부부싸움이 상당히 잦았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아직 부부싸움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씨가 고향친구인 한 남성과 유달리 통화를 많이 했다는 점이 드러났다. 이 남성이 부부싸움의 원인이 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찰은 현재 이 남성과 이 씨의 내연 관계에 대해서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난 1년여간 충북 제천에 거주하는 A 씨와 한 달 평균 30통씩 통화를 해 왔으며 두 사람의 통화는 길게는 한 시간 이상씩 이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 씨는 이에 대해 “단지 고향에서 알게 된 오빠 동생 사이일 뿐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라고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이것이 범행 동기가 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과연 이 씨가 자신의 어린 아이들을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씨가 현재까지 진술한 범행동기가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는 점에서 경찰이 현재 진행 중인 수사결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