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단계 거쳐 이뤄져” 정권차원 개입 냄새가…
2009년 대검 중수부장으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 변호사가 당시 국정원의 언론플레이를 폭로해 파장이 일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평생을 검사로만 살고 싶다’는 소신을 버리며 사직서를 내야만 했던 이 변호사가 한 발언이라는 점에서, 그의 발언을 두고 갖가지 해석이 난무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에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선개입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구속된 마당에 또 다시 국정원이 거짓 언론플레이를 해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 몰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긴급히 관련 상임위 소집을 요구, 이번 사건이 정쟁으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그때 당시 이미 내부에서 자체 조사한 결과 사실 무근으로 밝혀졌다. 우리가 흘린 것이 아니라 대검에서 흘렸다.”
이인규 변호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살로 내 몬 책임을 국정원 탓으로 돌린 것에 대한 국정원 관계자의 ‘반론’이다. 이 관계자는 “이 변호사 발언이 나오니 추가로 한 번 더 들여다보겠다고 밝힌 것일 뿐이다. 이미 시계 얘기는 당시 검찰 출입 기자들이 알고 있던 정보였다”고 덧붙였다. 국정원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것이 아니라 당시 대검이 그런 얘기를 흘렸다는 주장이다.
국정원 건물 전경.
이렇듯 국정원 측이 이 변호사의 폭로와는 정 반대되는 입장을 밝히면서 이번 사건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이 변호사의 주장대로라면, 국정원이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선물로 받은 고가의 명품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공작 수준의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2009년 4월 30일 노 전 대통령이 대검 중수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고 그로부터 13일 후인 5월 13일부터 ‘논두렁’이란 단어가 언론에 대대적으로 등장했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논두렁’ 보도가 나온 열흘 뒤인 5월 2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변호사는 <경향신문> 법조팀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국정원의 책임 관련한 내용의 폭로를 하고 해당 내용이 기사화가 된 직후부터 휴대전화를 꺼 놓고 잠적에 들어갔다. 그가 근무하는 ‘법무법인 바른’으로도 몇 차례 연락을 해 봤지만 그때마다 “외근중이다”라는 답변만 돌아왔고 결국엔 “외근이 많아 바빠서 인터뷰를 못 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전달해 왔다. 이슈화만 시켜 놓고 빠져서 상황을 관망하는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이다.
2009년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 씨.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하지만 그가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하는 위치에 있었던 만큼 그의 발언이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어 보인다. 특히 당시 국정원장은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최측근 심복이었던 원세훈 씨였고, 원 씨는 국정원장 취임 직후부터 심리전단을 3차장 산하 독립 부서로 편제하고 심리전단 내 사이버 팀을 계속 확대하는 등 정치개입을 공공연히 지시한 것은 물론 지난 대선까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터다. 이 같은 사실이 인정돼 최근 또다시 법정구속 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정황의 연속선상에서 원 전 원장의 국정원이 이 변호사의 발언대로 언론플레이를 하며 수사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국정원이 이처럼 검찰의 수사와 별개로 여론전에 나섰던 배경은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쉽게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노 전 대통령 수사가 이뤄진 2009년은 MB 정부 2년차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등으로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었던 시점이라 MB 정권은 어떻게든 여론을 반전시켜야만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MB의 최측근으로 통했던 원 전 원장이 행정안전부 장관에서 국정원장으로 자리를 옮긴 2009년 2월은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노무현 수사’로 본격적으로 바뀌던 시점과도 맞아 떨어진다. 원 전 원장으로선 이 같은 여론전을 통해 MB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국정원은 어떻게 수사 정보를 알게 됐을까. 이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아무리 국정원이라고 해도 검찰 그것도 대검 중수부의 수사 정보를 알기는 힘들다. 대검에서 정보를 국정원에 직접 줄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윗선에서 수사 정보가 공유됐을 경우엔 또 다른 문제다. 국정원이 그렇게 확보한 수사 정보를 과장해서 언론에 흘렸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직접 담당했던 라인엔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이 변호사를 비롯,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 우병우 중수1과장(현 청와대 민정수석)이 포진돼 있었다.
홍만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은 현재 서울 서초동 소재 법무법인 ‘에이치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이 변호사 발언의 진위를 확인할 목적으로 홍 변호사에게 몇 차례에 걸쳐 전화로 메시지를 남기고 직접 해당 법무법인을 찾았으나 “바쁘다”는 이유로 인터뷰는 끝내 거절했다.
2009년 당시 민정수석으로 노 전 대통령 수사의 몸통이라는 뒷말이 돌았던 정동기 변호사. 연합뉴스
윗선의 정보 공유와 관련해 야당 일각에서는 당시 노 전 대통령 수사에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이 모종의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MB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정동기 씨였다. 정동기 씨는 MB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참여하며 MB 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데 이어 비록 낙마하긴 했지만 감사원장에 내정되기도 했던 인물이다. 또한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과는 검찰 선·후배 사이인 동시에 서울 경동고등학교 선·후배 지간이기도 하다. 현재 이 변호사와 ‘법무법인 바른’에서도 함께 근무 중이다.
당시에도 노 전 대통령 수사의 몸통이 정 수석이라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로 통했다. 이와 관련, 야당 한 관계자는 “정동기 수석이 검찰의 수사를 직접 지휘하고 그 내용을 보고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MB로서도 큰 관심사일 수밖에 없었던 중대한 사안의 수사였기에 둘의 친분으로 볼 때 어떤 식으로든 정 수석이 이 부장으로부터 수사 내용을 보고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어 청와대 민정이 국정원에 수사 내용을 전달하고 역할을 요구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이 변호사가 국정원의 언론플레이에 대해 “몇 단계를 거쳐 이뤄졌으며 나중에 때가 되면 밝힐 것”이라고 말한 것을 비춰 볼 때도 청와대 민정이 수사에 직접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2009년 수사 당시부터 제기된 청와대 민정의 역할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법무법인 바른’의 고문변호사로 재직 중인 정동기 변호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직접 서울 대치동의 ‘법무법인 바른’을 찾았으나 정 변호사 역시 ‘바쁘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