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수족들을 솎아내라’
검찰의 전방위 사정작업이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들을 겨누는 모양새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18일 여야가 자원외교 국정조사에 합의한 가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친이계 인사들과의 회동을 위해 서울 신사동 식당에 도착한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18일 오전 8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위치한 경남기업 본사에 검찰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100억 원대 비자금 혐의로 압수수색을 당한 지 5일 만이다. 경남기업 압수수색은 포스코건설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 신호탄이 됐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수사 성격은 다소 다르다는 관측도 있다. 포스코건설이 협력 업체와의 내부거래에 의한 비자금 조성 의혹이 수사의 주안점이라면, 경남기업은 ‘자원외교 비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 한 법조계 관계자는 “포스코그룹이 대기업 사정의 신호탄이라면 경남기업은 자원외교 수사의 신호탄인 셈”이라고 분석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은 특수 1부에서 경남기업과 한국석유공사를, 특수 2부에서 포스코그룹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화력을 두 갈래로 나눠서 집중할 만큼 해당 수사는 부패와의 전쟁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사로 꼽히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인력이 부족할 정도로 정신이 없다”라고 전했다.
그만큼 검찰의 수사 의지가 확고한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포스코그룹, 경남기업, 한국석유공사를 관통하는 ‘연결고리’가 심상치 않다는 점이다. 검찰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재임 시절 갖가지 의혹들을 들여다보고 있고, 경남기업은 성완종 회장의 사기와 횡령 의혹에 수사력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경남기업과 같은 날 오후 압수수색을 당한 한국석유공사는 강영원 전 사장 재임 시절 이뤄졌던 자원외교(러시아 캄차카 광구 개발 프로젝트 부실투자 건) 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교롭게도 수사 대상이 되는 업체와 기관의 최고 수뇌부는 모두 ‘MB맨’으로 꼽히는 인물들이다. 정준양 전 회장은 이명박 정권 시절에 정권의 지원하에 회장에 등극했다는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성완종 회장은 이명박 정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하며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친이계 인사로 분류됐다(지난해 6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강영원 전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망교회 인맥으로 꼽힌다. MB맨으로 꼽히는 인사들이 대거 수사에 연루된 만큼 수사의 최종 칼끝이 결국 이명박 정권으로 향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검찰 안팎에서 유력하게 떠오르고 있다.
관건은 수사가 향후 어느 식으로 번져나갈지에 대한 것이다. 일단 검찰은 특수 2부에서 진행하는 대기업 사정과 관련해 포스코그룹 외에는 선을 긋는 모양새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수사 초기 언급됐던 신세계, 동부, 동국제강, SK건설 등은 내사 종결됐거나 첩보만 보관해 놓은 상태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특수 1부에서 진행하는 자원외교 수사다. 현재 특수 1부가 손에 쥐고 있는 수사는 총 6건으로 해당 기관과 업체는 경남기업, 한국석유공사, 한국광물자원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동서발전 등이다.
공교롭게도 수사 대상에 오르는 한국광물자원공사 김신종 전 사장과 한국가스공사 장석효 전 사장은 모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대통령직 인수위 출신이다. 결국 특수 1부 수사의 최종 칼날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을 거쳐 이 전 대통령을 향하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다시 제기되는 이유다. 한 특수부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에서는 자꾸 MB정권 비리와는 관계없이 ‘환부’만 도려내는 수사를 하겠다고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연루된 이상, 수사를 하다보면 전 정권 핵심과 관련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다. 수사는 생물이라 하지 않느냐. 언제 어디서 거물급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자원외교 수사가 전 정권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인 가운데, 특수 1부에서 진행하는 포스코그룹 수사도 향후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현재까지는 포스코그룹에 화력을 집중한다고 하지만 ‘포스트 포스코’로 수사 대상에 오를 대기업이 과연 어디일지가 핵심이다. 이 가운데 제2롯데월드 건축허가 특혜 의혹 등으로 대표적인 ‘친MB’ 기업으로 꼽히던 롯데그룹이 언급되고 있다. 검찰은 2011년과 2012년 롯데쇼핑 본사에서 롯데마트와 롯데백화점, 롯데시네마 등 사업본부로 수십억 원대의 의문의 돈이 흘러간 첩보를 오래전 포착했는데, 최근 ‘부패와의 전쟁’ 선포 후 이 사안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다는 전언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이 사안은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에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롯데쇼핑 관계자는 “일각에서 제기된 비자금 조성 의혹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올 초 이동 자금에 대해 충분히 잘 소명했다. 추가적으로 해소할 부분이 있으면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롯데쇼핑 외에도 최근 언론에서는 검찰이 수사 또는 내사 중인 기업으로 신세계, 동부, 동국제강, SK건설 등이 대표적으로 언급되기도 했다. 그만큼 ‘포스트 포스코’ 수사에 대한 관심이 상당한 것. 하지만 검찰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신세계는 내사 종결한 상태, 동국제강은 자료 확인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동부그룹은 1년 전에 첩보가 입수됐으나 사실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SK건설이 그나마 유력한데, 16일 김진태 검찰총장은 ‘새만금 방수제’ 입찰 담합에 대해 직접 ‘고발요청권’(검찰의 요청이 있을 때 공정위가 고발을 의무화하도록 개정한 법)을 발동해 대대적인 수사를 예고하기도 했다.
한편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 중 대표적인 친MB 인사가 수뇌부로 있는 A 사가 검찰 수사를 앞두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기도 했다. 다수의 계열사가 있는 A 사는 지방 본부에 비자금 세탁소를 따로 둘 정도로 대규모의 비자금이 마련돼 있다는 주장이다. A 사 비자금에 대해 검찰에 제보한 한 핵심 관계자는 “검찰에서 충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A 사 관계자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항상 사정의 도마 위에 오르긴 했지만 별다른 수사 움직임은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박근혜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으로 여러 기관과 기업들이 사정권에 오르는 가운데 수사의 칼끝이 이명박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에게로 향해가는 움직임에 친이계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친이계의 좌장 격인 이재오 의원은 최근 박근혜 정권의 ‘부패와의 전쟁’에 대해 “이미 이명박 정권 사람들 가운데 비리 관련된 사람은 (박근혜) 정권 창출 이전에 감옥 갈 거 다 갔다. 친형(이상득 전 의원)까지 다 갔다. 그 사람 조사해서 감옥 갈 때 지금 제기되는 것 조사 안 했겠느냐”라고 말했다. 특히 이 의원은 “수사란 게 가장 가까운 것을 하는 것이다. 5~6년씩 묵혀놨다가 정권 끝나고 뒤집으면 그건 수사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 검찰이 그때 권력의 부패를 잡아내야지, 그 때 부패는 가만 뒀다가 정권이 바뀌면 한다? 그러니까 ‘정치검찰’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권 3년차에 ‘허송세월한 것’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박근혜 정권이 이완구 총리를 내세워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부패와의 전쟁’은 개전 초기부터 친이계의 저항 등으로 순탄치 않은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