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이후 ‘방콕’ 중년 괴물로 돌변
한가로운 산골 마을이 순식간에 참극의 무대로 변했다. 지난 3월 9일 아침. 일본 효고현 경찰청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부모님과 할머니가 칼에 찔렸다”는 30대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자택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60~80대 여성 2명과 남성 1명을 발견,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모두 숨지고 말았다.
이어 100m 남짓 떨어진 가정집에서도 80대 남녀 시신 2구가 추가로 발견됐다. 사체 상반신에는 30여 차례 칼에 찔린 자국이 나 있었고, 혈흔이 천장에 튈 정도로 범행 현장은 참혹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일을 벌인 걸까.
수사 결과, 5명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은 같은 마을에 사는 히라노 다쓰히코(40)라는 남성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는 체포 당시 피로 물든 옷을 입고 있었고 혐의 일체를 인정했다. 아직까지 정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용의자는 중학교 시절 왕따를 당해 등교를 거부. 20년 이상 칩거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집에서는 아주 가끔 나왔기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본 적 없는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특이한 사항은 용의자 남성이 피해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원한을 가졌다는 점이다. 현실과 달리 용의자는 인터넷상에서 활발히 활동했는데, 그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는 피해자를 헐뜯는 글들이 수없이 올라와 있다. 사건 전날에도 그는 마을 사람들의 실명과 주소 등을 공개하며 터무니없는 비방을 펼쳤다.
가령 100여 명의 마을 주민 명단을 적은 후 ‘일본에서 활동하는 간첩리스트’라고 언급하는가 하면, 피해자 일가를 ‘인류를 위협할 적’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그들이 전자파를 이용해 범죄를 꾸미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
이와 관련, 경찰은 “용의자에게서 피해망상으로 대표되는 망상성 정신장애가 엿보인다”면서 “정신감정 의뢰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용의자는 2013년 10월까지 정신병원의 통원 치료를 받았던 기록이 있는 만큼 형사 책임을 면피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건처럼 히키코모리가 모두 ‘위험한 존재’인 것은 당연히 아니다. 히키코모리인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섬세한 감수성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타인의 이목을 지나치게 신경 쓰는 나머지 스트레스를 자초하는 사람이 많다. 더 이상 상처 받기 싫고,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아 결국 자신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사회적 고립을 선택한다.
용의자 히라노 씨와 같이 중학교 시절 왕따 당한 것을 계기로 등교를 거부. 그대로 칩거 상태가 장기화돼 어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대개는 집이나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범죄와는 거리가 멀지만, 드물게 공격적인 성향으로 발전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원인은 자신이 이렇게 쓰라린 경험을 하는 것은 ‘남 탓’이라고 책임을 돌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느 은둔형 외톨이가 중학교 시절 자신을 괴롭힌 ‘녀석’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운다고 하자. 그런데 오랜 분노의 표출이 괴롭힘을 가한 이가 아닌 약자를 향할 때가 있다. 즉 자신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 노인, 어린이를 향해 분풀이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최근 히키코모리와 관련된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일본에서는 “범죄를 개인 탓으로 돌리기에 앞서 사회적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과 사법의 힘뿐만 아니라 의학적인 치료 및 사회의 지원이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세계 각국과 비교했을 때 일본은 히키코모리가 유독 많은 편이다. 2014년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히키코모리의 평균 연령은 33세, 평균 칩거 기간은 약 10년”으로 확인됐다. 심각한 것은 30~40대 히키코모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초·중학교에서 왕따를 당한 10대 학생이 등교를 거부한다거나 20세 전후의 청년이 취업에 실패해 집에 틀어박히는 사례가 많았으나 최근에는 불경기로 인한 구조조정과 실업, 인간관계에 따른 갈등 등으로 칩거하는 중년층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부모의 간병 때문에 일을 중단했다가 사회로 복귀할 수 없게 된 케이스도 두드러진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지방으로 갈수록 심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신과 의사인 미야지 나오코 씨는 “흔히 가족들이 히키코모리가 집에 있는 것을 ‘집안 망신’이라 생각하고, 그 존재를 감추고 싶어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을 빌리자면,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그 트라우마와 어떻게 마주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트라우마를 비밀로 하고 감추면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없게 돼 결국 또 다른 증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야지 씨는 “칩거 기간이 장기화되면 여러 증상이 2차적으로 발생하는 위험이 더 높아진다”면서 “사회가 이들과 어떻게 공생해 나가야할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최근 히키코모리 범행 기록 초등·여고생 등 ‘약자’ 납치살해 △2015년 2월: 와카야마현에서 초등학생을 살해한 혐의로 무직인 남성 나카무라 사쿠라(22)가 체포됐다. 그는 원하던 고등학교의 입시 실패 후 삐뚤어지기 시작해 특별한 직업 없이 칩거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6월: 도치기현에서 7세 소녀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가쓰마타 다쿠야(32)는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했고, 그 원한으로 인해 모교에 다니는 아동을 납치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2014년 5월: 구마모토현에서 여고생을 납치 살해한 범인 아카이시 와타 루(47)는 몇 년 전부터 우울증을 앓아 이웃과의 교제도 거의 없이 집에서만 보냈다고 한다. 그가 유일하게 매달렸던 곳은 ‘인터넷 만남사이트’였다.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