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식 반어법 “그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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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남은 최근 친일 논란으로 인해 14년간 진행해온 <체험 삶의 현장>을 떠나야만 했다. | ||
필자 역시 기자 초년병 시절 그런 경험을 했는데, 10년 넘는 타사 선배로부터 물(?)을 단단히 먹은 적이 있었다.
기자생활 1년차였던 91년 겨울의 일이었다. 당시 SBS 개국과 함께 탄생했던 <쟈니윤쇼>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가수 조영남씨가 보조 MC로 출연을 했다. 그런데 1년쯤 방송이 계속된 후 느닷없이 조영남씨가 폭탄선언을 했다. “더 이상 보조MC로 출연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에 대한 욕심도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던 조영남은 녹화 당일 출연하지 않겠다고 통보를 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잡지사의 데스크는 내게 ‘조영남 독립선언’이라는 주문(?)을 했다.
<자니윤쇼>의 녹화가 예정된 날 폭설이 쏟아져 내렸다. 필자는 눈길을 헤치고 당시 조영남씨가 살고 있던 흑석동의 한 아파트로 달려갔다. 조영남씨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외출복을 입고 있지 않아서 “정말 녹화를 하지 않을 작정이구나”하는 생각에 쉽게 취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30분 정도 ‘조영남의 독립선언’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있는 동안 <쟈니윤쇼>의 제작진으로부터 전화가 수없이 걸려왔다. 그때마다 조영남은 “안 간다니까”라며 버티었다.
사진촬영만 남았을 무렵 초인종이 울렸다. 연예기자로 대선배인 H기자였다. 그리고 <한밤의 TV연예> 연출자로 잘 알려진 이충룡 PD가 당시 <쟈니윤쇼>의 조연출이었는데 그도 함께였다.
물론 그들의 목적은 ‘조영남의 독립선언’이 아니라 ‘조영남, 녹화합류’였다. 나와는 입장이 너무나 달랐다.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필자는 “그만두시는 것 잘 결정하셨어요”였고, H기자와 이충룡 PD는 “형, 조금만 더 해야지 않겠수. 이렇게 불미스럽게 끝낼 일은 아니잖아요”였다. 문제는 조영남씨가 내가 말할 때는 “녹화 절대 안 해”였다가, 그쪽에서 이야기하면 “조금만 기다려볼까”라며 중심을 못 잡았다.
그러다 H기자가 “형, 우리 배고픈데 나가서 뭐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라고 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 역시 동행을 했다. 조영남씨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었고, 아파트 상가에 있는 칼국수집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에서도 실랑이는 계속됐다. 서로 이야기를 하느라 칼국수가 팅팅 불을 정도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왔을 때 이충룡 PD와 H기자는 타고 온 차에 조영남씨를 태우며 “형, 녹화 안 해도 되니까, 마지막 인사라도 하게 녹화장에는 갑시다”라고 했다. 조영남씨는 “어! 어”하며 얼떨결에 그 차에 올랐다. ‘조영남 독립선언’이라는 기사가 물 건너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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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 삶의 현장> 녹화현장 | ||
며칠 전 필자가 몸담고 있는 CBS에서 조영남씨와 다시 조우를 했다. 물론 ‘친일발언 논란’에 휩싸인 이후였다. 조영남씨는 기자의 얼굴을 알아보곤 “우린, 왜 맨날 이럴 때만 만나냐”며 고개를 푹 숙였다. CBS의 한 생방송에 출연한 후 그와 늦은 저녁식사를 했는데 무려 4시간 동안 ‘친일발언 논란’이 주 화제였다.
격의 없는 대화에서 느낀 점이 있다면 그의 ‘친일(親日)’은 일본을 이롭게 하는 일반론적인 ‘친일(親日)’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그가 주장하는 친일은 ‘국민과 국민이 친해져 망발을 일삼는 일본 우익이 엉뚱한 주장을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參拜)’는 <산케이신문>의 정정보도로 해명이 된 셈이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독도문제나 일본의 교과서 왜곡 문제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대중적인 정서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는 10여 군데와 인터뷰를 하며 독도에 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이렇게 이야기해주었다고 한다.
“마누라가 옆에 있는데 어떤 남자가 갑자기 ‘이 여자는 내 여자여’라고 하면 두 가지 반응이 있을 수 있어. 한 가지는 “무슨 소리야! 맞을래?”일 테고, 또 하나는 “아이구 또 미친 소리를 하는구만. 당연히 오랫동안 살아온 내 마누라인데 무시해야지”하는 반응일 거라고. 난 후자에 가까워”라면서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를 문제화시키고 있는 일본의 교활함이 우리보단 한수 위”라고 말했다.
이번 ‘조영남의 친일발언 논란’을 보면서 언론으로서 많은 반성을 해야만 했다. 혹시 그의 반어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몇몇 단어에 휩싸인 채 피눈물 나는 일제 강점기를 거친 우리 국민으로서는 좀처럼 받아들일 수 없는 ‘친일’이라는 낙인을 찍은 것은 아닌지 하는 반성이다. 그는 이런 오해로 인해 14년간 방송을 하며 정이 든 <체험 삶의 현장>의 마이크를 놓아야만 했다.
필자는 그에게 “형! 이제 반어법 좀 쓰지 마세요”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나는 ‘친일’이 옳다고 본다. 다음에는 ‘친북’을 할 것이고 ‘친중’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과 더 친해져서 ‘독도는 우리 땅’을 노래하겠다”라고 말했다.
노컷뉴스 방송연예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