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엔 ‘그때 그사람’ 없다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10·26을 그려내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두 작품의 중심점이 누구인가 하는 부분이다. 영화 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중심점을 두었다면 은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씨가 중심점이다. 박 전 대통령이 중심인 은 그의 여성편력을 암시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엔카를 듣고 일본어로 대화하는 장면을 통해서는 친일적인 성향을 그려냈다. 이로 인해 박 전 대통령의 장남 박지만씨는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냈고 5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가처분 신청 일부 인용 판결을 받아 몇 장면이 삭제된 채 개봉됐다. 반면 은 전두환씨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 측의 반발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더욱 확연한 차이점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창작물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실적인 근거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부분이다. 영화 의 경우 당일 정황의 자세한 묘사를 위해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의혹들을 영화 속에 그대로 투영했다.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 이상의 것을 예술적 차원에서 접근했고 이에 따른 진통이 각종 소송으로 연결된 것이다.
반면 은 철저히 공식 자료에 의해 10·26을 기술하고 있다. 이렇게 검증된 내용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에 별다른 충돌 없는 무난한 방영이 가능했다.
이에 대해 5·18수사기록검증위원회 정동년 위원장은 “의 실질적인 작가는 전두환”이라고 얘기해 눈길을 끈다. 당시 10·26 수사는 전두환씨가 담당했다. 결국 드라마의 주된 자료인 수사 기록을 작성한 책임자가 전씨인 만큼 그가 실질적인 작가라는 얘기.
“여전히 김재규의 박 전 대통령 살해 동기는 불분명하다”는 정 위원장은 “수사 기록이라는 사실 이면에 숨겨진 진실에 다가가지 못한 채 드라마가 너무 피상적으로 흘렀다. 좀 더 스케일이 큰 접근이 요구된다. 이는 5·18 역시 마찬가지”라고 얘기한다.
그렇다고 이 수사기록에만 100% 매달린 것은 아니다. 취조를 받던 김재규가 수사관에게 “미국에서 연락이 없었느냐”고 묻는 장면을 통해 김재규의 배후에 대한 암시를 남겨둔 것. 하지만 여기까지가 전부다. 10·26의 진실에 대한 의혹이 여전한 상황에서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게 방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