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연기 잘허니께 이덕화가 싫어져부러”
초반 4회분이 방영된 시점에서 광주 시민들은 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기자는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지난 4일 이른 아침 공기를 가르며 봄볕 속으로 내달리는 광주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광주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은 낮 11시경. 기자는 먼저 5·18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택시 기사는 드라마 을 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 한 번 봤을 뿐”이라며 “뻔한 얘기 아니냐”는 반응이다.
택시는 금남로를 지나 요란한 물줄기의 분수대가 보이는 전남도청 건너편 도로변에서 멈췄다. 시간 탓인지 거리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행인들에게 에 대한 소감을 물었지만 이 드라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한 50대 남성에게 들은 “1·2회는 봤지만 전두환 설치는 모습 보기 싫어서 이후에는 안 본다”는 반응 정도가 그나마의 수확. 광주 시민들 사이에 드라마 속 5·18이 어떻게 그려질지에 대한 얘기가 오가지 않느냐고 묻자 이 남성은 “드라마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차라리 방영하지 않은 게 나았을 것”이라며 “여전히 5월이면 광주는 침울해진다. 이제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린 이들이 대부분”이라고 얘기한다.
금남로에 이어진 번화가 충장로에서 만난 젊은이들의 반응은 더욱 냉담했다. 10여명의 젊은이들에게 물어봤으나 을 봤다는 이는 고작 3명. 그것도 케이블TV에서 해주는 재방송을 어쩌다 봤을 뿐 별다른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남도청 뒤편 남동에 위치한 광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민언련) 사무실을 찾았다. 신문과 방송 모니터를 주된 활동으로 하는 민언련이지만 은 아직 모니터 대상에 오르지 못했다. “신문의 경우 지역 언론이 주된 모니터 대상이나 방송은 대부분 전국방송이라 총선 등 특이한 경우에만 모니터하고 있다”는 이승원 사무국장은 “의 경우 앞으로 5·18 관련 부분은 모니터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지난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도청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위). 지난 4일, 5·18 25주년과 드라마 속 5·18을 앞둔 도청 광장 앞은 고요했다. | ||
이 사무국장은 이 역사를 접근하는 방식에 대해 우려감을 표시했다. “10·26을 그리는 방식을 보니 분명 객관적인 잣대를 의식, 현재 공식적으로 알려진 자료에 충실하더라”면서 “이는 사실에 기초한 것일 뿐 진실은 아니다. 5·18을 직접 접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드라마를 통해 단편적인 모습으로 5·18을 판단하게 될까봐 걱정”이라고 얘기한다.
역시 사람이 가장 많은 곳은 재래시장. 광주를 대표하는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을 찾은 기자는 다양한 시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흥미진진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시민이 있는가하면 다 아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있다. 여전히 가장 흔한 반응은 전두환씨에 대한 반감. 심지어 한 생선가게 상인은 “전두환 역할의 이덕화가 너무 연기를 잘해 싫어졌다”고 얘기할 정도다.
한 40대 남성은 를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에서는 5·18이 최민수를 미화하는 도구 정도로 쓰였다”면서 “지금 흐름이면 5·18이 전두환을 미화하는 수단으로 쓰일 것 같은데 그럴 경우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양동시장에서 조금 걸어가면 광주 MBC 건물이 나온다. 이곳은 5·18 당시 가장 먼저 불탄 곳이다. 신군부 입장을 대변하는 왜곡보도에 격분한 시민군의 반감이 광주 MBC 방화로 이어진 것. 이런 이유로 왜 하필 MBC에서 을 방영하느냐는 의견을 보인 광주 시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5·18수사기록검증위원회 정동년 위원장은 “이후 MBC는 노조를 중심으로 5·18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가장 애쓴 방송사다. 당시 일에 대한 감정은 없을 것”이라 설명한다.
그 다음으로 상무지구에 위치한 5·18기념공원을 찾았다. 오후의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쬐는 공원에선 산책 나온 시민들이 보였다. 전두환씨에 대한 반감 때문인지 에 대한 호의(?)를 나타내는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공원에 위치한 팔각정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에서 전두환의 숨겨진 재산을 밝혀낸 기사를 봤다”면서 “그런 희대의 악당을 영웅으로 그려내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격분했다.
5·18기념공원 내에 위치한 5·18기념문화관 건물 2층에는 5·18기념재단이 자리잡고 있다. 5·18기념재단 조진태 사무처장은 에 대한 우려감이 크지만 나름대로 기대하는 부분도 있다고 얘기한다. 이미 1년 전 이곳을 찾아 충분한 자료조사를 하고 망월동 묘역까지 들린 유정수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 유정수 작가(왼쪽), 임태우 PD | ||
그렇다면 광주 시민들은 을 통해 5·18이 어떻게 그려지길 바라고 있을까. 이에 대해 조 사무처장은 세 가지 사안을 언급했다. 우선 첫 번째는 대한민국에서 이런 무자비한 학살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그려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당시 광주 시민들이 왜 무기를 들어야 했는지, 잔인한 진압 앞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민들의 심정을 제대로 그려달라는 내용이다. 마지막은 광주 시민의 높은 도덕성이다. “5월22일부터 5일 동안 자치공간 내에서 해방공동체로 지내며 보여준 광주 시민의 높은 도덕성을 보여줘야 한다”는 대목에서 조 사무처장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밤 8시경 기자는 다시 광주종합터미널에서 서울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직은 4회분밖에 방영이 안 된 탓인지 광주 시민들의 반응은 다소 밋밋했다. 다만 전두환씨에 대한 반감이 상당하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민들이나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얘기처럼 드라마가 5·18에 다가갈수록 광주는 점차 달궈질 전망이다.
유정수 작가와 임태우 PD 등 제작진은 ‘태동해선 안됐던 정권’이라는 평가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객관적인 시각의 역사 해석을 위해 그 동안의 법원 판결과 청문회 기록 등의 자료를 근거로 삼겠다는 방침.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현재 공식적인 자료에 드러난 5·18은 여전히 진실과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고 주장한다. 정 위원장은 “희생자 숫자만 보더라도 발표 결과와 광주 시민의 생각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면서 “실종자 암매장 의혹은 물론 발포 책임자가 누구인지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올해로 5·18은 25주년을 맞이한다. 광주 시민이 진정으로 안타까워하는 부분은 드라마가 이를 어떻게 그려낼지의 여부가 아닌,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