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깐깐한 채권단이 왜 이리 관대해졌지?
금융권에서는 채권단이 금호산업 우선매수청구권을 쥔 박삼구 회장에게 매각가를 깎아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사진은 금호아시아나 빌딩. 우태윤 기자
금호산업 인수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지난 5월 7일, 본입찰 단독 응찰자인 호반건설에는 한 통의 이메일이 배달됐다. 금호산업 매각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와 산업은행 M&A(인수합병)실이 보낸 이메일에는 “호반건설은 금호산업 인수 본입찰 결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음을 통보한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특이한 것은 금호산업 주변의 반응이었다. 채권단은 물론 입찰 당사자인 호반건설조차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단독응찰에서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지 못하는 보기 드문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다들 무덤덤한 모습들이었다. 심지어 호반건설은 우선협상자 탈락을 자축(?)하는 ‘쫑파티’까지 열어 의문을 자아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을지 여부는 인수가격과 자금력에 따라 결정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 두 변수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잘 짜여진 시나리오가 작동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우선 매각 가격에 관해 금융권에서는 채권단이 박 회장을 위해 결국 금호산업 매각가를 깎아줄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호반건설이 제시했던 6007억 원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팔릴지도 모른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금호산업에 우발채무가 많은데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 지급 보증 등으로 인한 손실 예상액도 7500억 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회계법인은 이런 상황을 반영해 금호산업의 가치를 5000억 원 초반대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박삼구 회장이 할인을 요구할 것은 뻔한 수순이라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시중은행 한 고위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사업가”라면서 “금호산업의 우발채무를 인수가격을 깎는 협상 카드로 들고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 회장이 인수자금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관해서도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박 회장은 자체 자금만으로는 사실상 금호산업을 인수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박삼구 회장은 당초 5000억 원 가까운 자금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에 3000억 원이 훨씬 넘는 사재를 출연했기 때문에 남은 자금은 1500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무리 가격을 깎는다 해도 금호산업을 품에 안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다.
다만 박 회장에게는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다른 자산이 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넓은 인맥이 그가 가진 또 하나의 자금줄이다. 박삼구 회장은 재계의 마당발로 이름을 얻고 있는 인물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인 그는 한·중우호협회장,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 한국프로골프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정·재계에 두터운 인맥을 쌓아왔다.
금호산업 인수전이 과열 양상을 보이던 시점에는 직접 재계 오너들을 만나 인수전에서 빠질 것을 요청해 관철시키기까지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의 최대주주이자 금호그룹의 지주회사 역할까지 하고 있는 회사인 만큼 대기업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매물이다. 그에 비해 매각가는 최대 1조 원가량으로 가치에 비하면 헐값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였다. 이 때문에 신세계그룹이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하며 사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신세계는 “경쟁사인 롯데가 뛰어들지 않았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들며 LOI 제출 하루 만에 곧바로 이를 철회하기도 했다.
박삼구 회장은 이렇듯 두터운 정·재계 인맥을 발판으로 자금 조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박삼구 회장은 인수 자금의 상당 부분을 차입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로비나 특혜시비 등 경남기업 워크아웃 과정에서 불거졌던 부작용들이 재현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박삼구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한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 임종룡 금융위원장, 김용환 농협금융 회장(왼쪽부터).
금융권에서는 이미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여럿 연출되고 있다. 우선 농협금융 회장 출신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행보가 주목을 끈다. 임종룡 위원장은 지난 2월까지 NH농협금융 회장으로 재임할 당시부터 박 회장을 도울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룡 위원장은 NH농협금융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채권을 상대적으로 적게 보유하고 있어 부담이 덜하고, 박삼구 회장의 재기를 도운 뒤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을 때 얻는 실익이 더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판단이 순수한 득실계산이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농협금융은 주채권은행도 아닌데다, 금호산업을 비싼 값에 팔아 채권을 회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남는 장사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남기업 워크아웃 당시에는 기업회생보다 채권회수를 우선시하며 금감원의 압력조차 물리치며 지원을 거절했다는 점에서 일관성 없는 잣대라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임종룡 위원장은 박 회장의 히든카드인 ‘인맥’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 의문의 핵심 포인트다. 박삼구 회장은 연세대 경제학과 63학번으로, 78학번인 임종룡 위원장의 15년 선배다. 75학번인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연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우리나라 경제와 금융을 한 손에 쥔 거물들이 박삼구 회장의 직속 후배인 셈이다.
박 회장은 연대 동문회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인물로, 특히 상경계열 동문들을 많이 챙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지난 5월 30일 연세대 대우관 지하 1층 각당헌에서 열린 상경·경영대학 창립 100주년 기념식에는 이들 세 사람이 나란히 자리해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다.
오비이락격인지 농협금융 회장을 거쳐 금융당국 수장이 된 임종룡 금융위원장의 의중은 그의 뒤를 이은 새 회장을 통해 그대로 현실이 됐다. 지난 4월 29일 농협금융 회장으로 공식 취임한 김용환 회장은 박삼구 회장에게 대규모 자금을 지원키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회장은 우선 금호산업 인수를 위해 NH농협금융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NH농협금융의 증권 계열사인 NH투자증권 IB(투자은행)본부는 금호산업 우선매수권 행사에 필요한 수천억 원대의 자금을 투자확약서(LOC) 형태로 지원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수익확보 차원에서 IB(투자은행)파트 중심으로 지원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다만 “그룹 차원에서 전방위로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고 전했다.
금융권에서는 NH투자증권이 직접 재무적투자자(FI)로 나서기보다는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박 회장을 지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NH투자증권은 이미 IB본부장인 정영채 부사장이 금호산업 재인수에 관한 재무자문 총괄까지 맡으며 적극 지원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농협은행은 박삼구 회장이 노리는 또 다른 ‘먹잇감’인 금호고속 인수를 돕기로 했다. 농협은행은 박 회장이 우선매수권을 행사하기로 합의한 금호고속 재인수 거래에 2700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금호고속을 4000억 원에 매입할 예정인데, 이 중 3분의 2에 달하는 2700억 원을 농협은행이 맡아서 해결해주기로 한 것이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행보 역시 많은 의문을 낳고 있다.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계열사 대출금을 출자전환한 금액은 무려 3조 원에 달한다. 이 때문에 금호산업을 1조 원에 판다해도 2조 원이 넘는 손해를 보는 셈이다. 호반건설이 제시한 6007억 원을 거절한 표면적인 이유도 액수가 적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박삼구 회장은 이보다도 못한 가격에 금호산업을 사겠다고 나올 공산이 크다. 우선 박 회장은 호반건설이 제시한 제안가인 1주당 3만 1000원가량을 기준으로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5200억 원 정도로 50%+1주를 살 수 있다. 채권단으로서는 호반건설에 팔 때보다 800억 원가량을 손해 보는 셈이다. 여기에 박 회장이 앞서 언급한 우발채무 등을 근거로 가격을 깎으려 들면 매각가는 이보다 더 낮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신세계 등 대기업에 팔았다면 1조 원, 호반건설에 매각했다면 6000억 원을 받을 수 있었던 매물을 굳이 수의계약까지 하며 더 싸게 팔게 되는 셈이다.
금융사 한 관계자는 채권단의 움직임이 어딘지 수상쩍다며 의구심을 표했다. 급할 것 없는 입장인 채권단이 어찌된 일인지 스스로를 코너로 몰며 박삼구 회장에게 칼자루를 쥐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채권단은 경쟁입찰로 팔 수 있었던 기회를 마다하고 박삼구 회장과의 개별협상을 선언했다”면서 “박 회장에게 헐값에 팔리거나 최악의 경우 매각이 실패할 경우의 책임을 채권단이 져야하는 이상한 상황을 만들어놨다. 이미 주도권은 박 회장에게 넘어간 셈”이라고 전했다. 온갖 ‘특혜’ 의혹을 뚫고 박삼구 회장이 금호산업을 인수하게 된다면 금융권에 ‘게이트’의 먹구름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이영복 언론인
산업은행 ‘아리송한 구조조정’ 누구 손은 맞잡고 누구 손은 내치고 기업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산업은행을 둘러싼 잡음이 이어지면서 “도대체 기준이 뭐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이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관련 이중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일요신문 DB 산업은행이 박삼구 회장 등에게는 특혜에 가까운 기회를 주는 반면 일부 기업에게는 오너퇴진과 사재출연을 요구한 뒤 사실상 그룹 해체작업을 진행하는 등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STX그룹과 동부그룹이다. 이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산업은행과 갈등이 깊었던 기업들로, STX는 이미 공중분해됐고, 동부그룹은 사실상 해체과정을 밟고 있다. STX그룹을 세웠던 강덕수 전 회장은 지난 2013년 STX그룹 구조조정 당시 기업 부실의 책임을 물어 주요 계열사의 대표이사직과 이사회 의장직을 박탈당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워크아웃을 신청한 박삼구 회장에 대해서는 산업은행이 나서 등기이사 선임을 추진하는 등 사실상 우군 역할을 자처했다. 당시 STX그룹은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한 상태였고, 금호산업은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강덕수 전 회장이 경영권을 보장받고, 박삼구 회장이 퇴진할 것으로 봤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동부그룹도 사정이 비슷하다. 주력계열사인 동부제철의 경우 STX그룹과 똑같이 대주주 100 대 1의 무상감자를 통해 경영권이 채권단으로 넘어갔고, 경영진도 교체됐다.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산업은행에 적극 협조했으며, 구조조정의 성공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상상할 수도 없던 일이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다”며 섭섭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STX그룹에 출신 한 재계 인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덕수 전 회장은 금융권과의 원활한 관계를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지만 은행들의 반응은 냉랭했다”면서 “강 회장이 다시 그때 상황이 된다면 법정관리를 신청했으면 했지 절대 산업은행과 손을 잡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