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별꼬리’ 자르던 검 ‘반쪽’ 됐네
▲ 2002년 연예비리 수사를 지휘한 김규헌 검사. 왼쪽은 당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나오는 서세원. | ||
이런 상황으로 인해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김규헌 현 서울고검 검사에게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수사 도중 충주지청장으로 인사발령을 받아 ‘외압설’에 휘말렸던 그가 이번에는 ‘고문 의혹’으로 연예뉴스에 이름을 올려놓은 것.
연예계 관련 대형 사건은 워낙 관심이 집중되는 사안이라 ‘스타 검사’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2002년 연예계 비리수사 이후 김 검사는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연예인 관련 대형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들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연예계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었던 ‘그때 그 검사들’을 찾아봤다.
최근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른 김규헌 서울고검 검사(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는 성균관대 법대 출신으로 23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87년 부산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001년 서울지검 강력부장에 오른 김 검사는 2002년 ‘연예계 비리사건’을 담당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2년 연예계 비리수사는 75년과 90년에 이은 ‘3차’에 해당되는데, 우연인지 필연인지 앞선 두 차례 연예계 비리수사를 지휘한 심재륜 변호사와 김 검사는 동서지간이다.
당시 연예계 비리수사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시작됐다. ‘PR비’ 관련 수사로 시작해 ‘성상납’ ‘주식로비’ 등 다양한 의혹을 양산했고 일부 국회의원의 이름까지 거론됐던 것. 하지만 그는 수사 도중 청주지검 충주지청장으로 가게 돼 수사는 탄력을 잃고 말았다.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정치권의 간섭으로 부장검사가 지방으로 쫓겨났다”며 좌천설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 실제 김 검사의 인사는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지방지청장에서 부장검사로 진급하고 이후 차장검사가 되는 게 수순인데 유독 그는 부장검사가 지방지청장으로 내려앉은 형국이라 ‘좌천설’이 설득력을 얻었다.
▲ 정선태 대구지검 1차장. | ||
2002년 8월22일 김 검사 후임으로 서울지검 강력부장이 된 노상균 변호사(당시 부장검사)는 김 검사의 ‘서울고-성균관대 법대’ 1년 후배로 사법고시 23회에 함께 합격한 남다른 인연의 소유자다. 서울지검 형사 6부장으로 재직하던 와중에 김 검사의 후임이 된 것. 그러나 연예계 비리수사를 인수인계한 그 역시 다른 일로 인해 2002년 11월5일 옷을 벗었다. 같은 해 10월 발생한 일명 ‘서울지검 피의자 고문 사망사건’의 지휘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한 것. 그는 현재 법무법인 동인에서 변호사로 활동중이다.
2002년 연예계 비리수사가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 데에는 바로 직전까지 세간을 시끄럽게 한 연예계 마약 수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작은 2001년 11월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속된 황수정이었다. 이 사건은 수원지검 강력부 소속이던 이상철 부장검사(당시 검사)가 담당했다.
청순한 이미지의 황수정이 필로폰을 투약하고 유부남과 간통까지 범했다는 이유로 이 사건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이 검사를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만들었다. 30회 사법고시에 합격해 91년 변호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한 그는 94년 창원지검 진주지청에서 검사생활의 첫 발을 내디뎠다. 황수정 사건 이후 그는 부부장검사를 거쳐 지금은 수원지검 안산지청 부장검사로 재직중이다.
당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이 검사는 황수정 사건에 대해 별다른 의미 부여는 하지 않았다. “이미 다 잊어 별 다른 기억은 없다. 그동안 맡았던 사건들에 비해 그다지 큰 사건은 아니었다”고 얘기할 뿐. 실제 그는 대규모 경륜 비리 등 굵직굵직한 사건으로 여러 번 신문지상에 소개된 바 있다.
이렇게 이 검사가 스타덤에 오르는 동안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는 비상이 걸렸다. 당시 황수정이 검거된 곳은 서울, 그것도 서울지검 인근이었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가 눈앞의 대형사건을 수원지검에 빼앗긴 모양세가 된 것. 게다가 당시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를 이끌고 있던 이는 마약수사로 잔뼈가 굵은 정선태 대구지검 1차장검사(당시 부장검사)였다. 정 차장검사는 80년과 81년 1년 사이에 24회 행정고시 23회 사법고시를 연달아 합격한 서울대 법학과 출신의 엘리트 검사다. 마약 관련 수사에서 상당한 실적을 올린 그는 이미 지난 93년 사진작가 김중만, 가수 이현우, 그룹 H2O의 리더 김준원 등을 대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한 바 있다. 그런데 한참 후배인 평검사에게 황수정 사건을 빼앗기고 만 것이다.
▲ 지난 2000년 백지영 모습(왼쪽), 지난 2001년 이태란. | ||
결국 정 검사가 이끌던 서울지검 마약수사부는 2002년 3월 엑스터시 복용혐의로 성현아를 구속시키며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후 연예계는 더욱 흉흉해졌다. 서울지검 마약수사부가 ‘연예인 엑스터시 리스트’를 확보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성현아와 가깝게 지내던 연예인들에게 의혹이 집중된 것. 이런 와중에 연예인 여러 명이 도핑테스트를 받았지만 사건은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다. 연예계는 당시를 ‘마약 한파’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후 정 검사는 창원지검 진주지청장으로 인사 발령을 받아 김규헌 검사와 비슷한 ‘좌천설’이 제기됐지만 2004년 의정부지검 차장검사로 진급했다. 의정부지검에서 정 차장검사는 이철우 전 의원 선거법 위반 사건을 지휘했다. 당시 정 차장검사는 경찰의 불기소 의견에도 불구하고 이 전의원을 기소해 ‘편파수사’ 논란에 휘말렸지만 이 전 의원은 결국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현재는 대구지검 1차장으로 재직중이다.
‘백지영 비디오’를 담당했던 정진섭 대전지검 전문부장검사(당시 부장검사)는 경희대 법대 출신으로 21회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컴퓨터 수사 및 지적재산권분야 전문 검사로 정평을 얻었다. 그가 컴퓨터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서울지검에 근무중이던 지난 89년. 이후 컴퓨터 관련 수사에 전념해 지난 2000년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가 창설되며 초대 부장을 맡았다. ‘백지영 비디오 사건’은 그가 초대 서울지검 컴퓨터수사부장이 된 뒤 올린 첫 번째 성과였다.
“인터넷이 활성화된 이후 몰래카메라 등 인권 침해 사례가 빈번해지면서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백지영”이라고 언급한 정진섭 전문부장검사는 “몰래 찍은 비디오를 영리를 목적으로 미국 사이트에 올려 국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것은 매우 악의적인 소행”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그는 포털사이트에서 유통되는 음란물 관련 수사와 ‘소리바다’의 음악 저작권 침해 수사도 담당했다. 현재는 대전지검에서 전문부장검사로 재직중이다.
탤런트 이태란이 전 매니저 안아무개씨를 ‘폭력 및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한 사건 역시 세간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 이유는 안씨가 이태란과 성관계를 가진 뒤 이를 미끼로 상습적인 협박을 가했다고 주장했기 때문. 심지어 안씨가 갖고 있던 ‘이태란 비디오’를 검찰이 입수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당시 담당 검사는 신만성 변호사(당시 부장검사).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사법고시 22회 합격생인 신 변호사는 서울지검 형사2부 부장검사로 재직중이던 2001년에 이태란 사건을 맡았다. 이후 2002년 변호사로 개업해 현재는 법무법인 태일에서 활동중이다.
몇몇 유명 사건의 검사들을 살펴본 결과 ‘연예인 관련 사건이 검사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속설이 사실과 상당한 괴리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가장 대규모였던 2002년 연예계 비리 수사를 담당했던 김규헌 지청장과 노상균 변호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반면 확실한 자기 분야를 바탕으로 이와 연관된 연예계 수사를 담당했던 정선태 차장검사와 정진섭 전문부장검사는 검찰 내에서 확고한 자기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