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사마’가 안 통한다!
▲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그러나 다양한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역시 핵심은 연예계의 호황을 주도하고 있는 ‘한류’에 대한 위기론이다. 다행히 지금까지 제기된 ‘한류 위기론’은 대부분 ‘이래서는 안된다’는 권고성 위기론이었을 뿐, 실제 징후가 포착된 사례는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일본 출판계에서 최초로 한류 위기론의 징후가 발견됐다. 일본 출판계를 주도할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던 ‘한류 잡지’의 판매량이 급락하고 있는 것. 일본 한류 잡지의 한국 주재 기자들을 통해 한류 위기론의 실체에 접근해봤다.
최근 어느 영화 기자시사회가 끝난 뒤 일본 한류 잡지 한국 주재 기자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이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은 ‘한류 잡지 판매량 급락’이었다. 이미 몇몇 한류 잡지가 문을 닫은 터라 이들 역시 불안한 속내를 감추지 않아 그 분위기는 상당히 냉랭했다. 과연 얼마나 심각한 상황일까.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취재에 응했지만 익명을 요구했다. 워낙 분위기가 좋지 않아 매체명을 밝히고 취재에 응할 수 없다는 게 그의 부탁이었다.
“지금 보면 한류 잡지 붐은 심각한 불황에 허덕이던 일본 출판계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벤트였던 것 같다”는 그는 “한류 붐을 이용해 불황을 타계하려는 출판사들이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하지 않고 우후죽순 격으로 한류 잡지를 양산해왔다”고 얘기했다.
일본에 한류 잡지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난 것은 지난해 중반부터다. 당시 창간한 몇몇 한류 잡지는 초판부터 엄청난 양을 인쇄했고 ‘한류 잡지=대박’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올해 들어 급변했다. 2~3월부터 반품이 급증한 것. 반품 비율이 30%를 넘기면 ‘적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는데 50%를 넘겨 아예 문을 닫은 곳이 생겨날 정도다.
반품량이 확인되려면 3개월의 유통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한류잡지 판매가 급감한 시점은 지난해 연말부터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최소한 일본 출판계의 한류는 지난해를 정점으로 감소 추세에 들어섰음을 알 수 있다.
일본 현지에서 한류 관련 제품의 판매량 급락이 포착된 것은 한류 잡지가 처음. 그런데 이 한류 잡지 기자는 “스타를 직접 만날 수 있는 이벤트(일본 현지 팬미팅이나 한국 관광상품)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류 관련 업계가 하락기에 접어들었다”면서 “집에서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 이외에는 한류 잡지 구독이 가장 손쉬운 한류 접근 방식임을 감안할 때 지금 한류가 그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 드라마 <첫사랑>의 배용준. | ||
또한 드라마의 수준 저하 역시 문제점이다. 그동안 한국 스타의 활동방식은 대부분 탤런트로 떠서 영화계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영화에는 톱스타가 출연하고 드라마는 신인이나 영화흥행에 실패한 브라운관 스타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한류스타들 역시 드라마보다는 영화 출연을 선호하고 있다. 올해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콘텐츠는 드라마 <슬픈 연가>. 한국에서는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권상우라는 한류스타가 출연한 드라마라는 이유로 일본에서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대작 드라마가 1년에 채 5편도 되지 않는다.
이런 콘텐츠의 부재로 인해 스타의 예전 작품이 방영되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스타의 이미지를 깎아 먹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 NHK BS를 통해 방영된 배용준의 예전 출연작인 드라마 <첫사랑>은 매우 저조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겨울연가>를 방영해 일본의 한류열풍을 주도한 NHK BS 역시 예상치 못한 <첫사랑>의 저조한 시청률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보다 경쟁력이 확보된 영화로 일본 시장에 진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극장 시스템의 특성상 어려움이 크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극장 시스템은 ‘정해진 시간과 좌석 없이 아무 때나 극장을 들어가고 나올 수 있는’ 방식이었다. 최근 국내와 같이 ‘시간과 좌석이 지정된’ 티켓을 판매하고 있는데 한류 팬의 대다수인 주부층이 이런 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시스템이 바뀐 극장을 찾아 힘겹게 봐야 하는 영화보다는 집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드라마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한류의 핵심 소비층인 일본 관광객들은 ‘화류가 대세’라는 반응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지난 3월 영화 <외출> 현장공개 때 기자와 인연을 맺은 일본인 관광객 오시우이 요코씨는 최근 대종상 영화제 시상식에 맞춰 다시 한번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일본은 섬나라인 관계로 늘 갇혀 있다는 강박관념이 심해 외국 문물에 관심이 많다”면서 “이런 이유로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에 열광했고 이제는 한류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서서히 중국쪽으로 관심이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같이 방한한 친구 후지키 다카오씨를 가리켜 “막차를 탔다”고 얘기할 정도다. 기존 한류 팬들이 최근 들어 한류스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들을 ‘막차 탄 한류팬’이라 지칭하곤 한다고.
중화권 연예계 역시 오랜 기간 일본인들의 관심을 받아왔지만 늘 ‘2% 모자란’ 상태였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의 문화연예산업이 한 단계 성숙하면 한류가 상당한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게다가 최근 대만의 인기 가수 Jay와 F4 등 중화권 스타들이 본격적인 일본 진출을 시작했다. 또한 대만 드라마도 한국 드라마보다 저렴한 판권을 경쟁력으로 ‘화류’를 주도하고 있다.
이미 한국 연예계는 수익의 상당 부분을 한류에 기대고 있다. 일본 자금이 국내 연예계로 유입되어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류가 그 위력을 잃어갈 경우 한국 연예계는 그 근간부터 흔들릴 위험성이 상당하다. 마냥 웃을 때가 아니란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