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도저’ 타고 ‘입성’ 꿈꾸는 ‘그들’
▲ 지난 3월9일 이명박 서울시장이 프로축구 개막전 FC서울과 대구FC의 경기에 와서 서울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 내에 ‘이명박 신당론’이 커지면서 그 배경에 ‘수투위’ 인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최근 들어 잠재적 대권주자인 이명박 서울시장의 대선구도를 중심으로 한 ‘신당설’이 정가에 나돌고 있다. 이 시장을 염두에 둔 신당 논의는 박근혜 대표 체제의 한나라당 분해를 뜻하는 것이라 한나라당 내는 물론 정가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논의는 행정수도특별법 처리 과정에서 이 시장과 이해를 같이 하는 당내 수도권 의원들이 박근혜 대표를 비판하기 시작하면서 수면 위로 급부상했다. 일부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신당 창당’을 언급하면서 정치권 내 ‘이명박 신당설’을 확산시키고 있다.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의 ‘선명야당’ 발언은 ‘이명박 신당설’의 불을 지핀 계기로 주목받는다. 지난 3월21일 〈시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김 의원은 ‘한나라당이 야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신당 창당이 불가피할 것’이란 의견을 밝혔다. 김 의원은 최근 수도분할반대투쟁위(수투위) 활동을 통해 ‘반 박근혜, 친 이명박’성향으로 분류돼 온 인사다.
김 의원의 ‘신당 발언’ 다음날인 3월22일 부산 출신의 3선 정의화 의원은 〈폴리뉴스〉와 국민대 정치대학원이 공동 주최한 포럼에 참석해 ‘탈 지역정당’ 탄생을 예견했다. 정 의원은 수투위 활동에 적극 참여하진 않았지만 여권과 한나라당 지도부가 합의한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해온 대표적인 부산권 정치인이다.
바로 다음날인 3월23일 박세일 전 정책위의장은 탈당계를 제출해 비례대표 의원직을 버렸다. 박 전 의원은 탈당계를 제출하며 “한나라당은 외연 확산을 통해 당을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재창당할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기득권을 포기해야 할 것”이라 밝혀 주목을 받았다. 얼마 전까지 박근혜 대표의 책사로 불렸던 박세일 전 의원이 행정수도 처리문제로 탈당을 하며 ‘신당 창당’을 언급한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연달아 터져 나온 ‘신당론’에 대해 정가 인사들은 이명박 시장을 주목한다. 한나라당의 한 3선 의원은 “반 박근혜 대표 성향 인사들이 행정수도 특별법 문제에 대해 박 대표 비판의 수준을 넘어 신당을 스스럼없이 언급하는 것은 당내 대권 지형이 바뀌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행정수도 법안 처리과정에서 박 대표의 위상이 급격하게 흔들린 사이 국회 본관 한나라당 대표실 바로 옆 사무실에서 박 대표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했던 전재희 의원에게는 위로방문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수도이전 반대활동으로 촉발된 박 대표에 대한 반감이 수도이전을 반대해온 이 시장에게 시선을 쏠리게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MBC 사장 출신으로 한나라당 경기 오산·화성 지역구 의원이었던 강성구 전 의원이 ‘수도이전 반대’ 명분으로 지난 3월25일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정세분석에 밝은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이방호 의원 같은 중진들은 김덕룡 전 원내대표가 물러난 선에서 당 내홍을 수습하려 했다. 그런데 당내 수도권 인사들이 수도이전 반대를 외치는 것을 넘어 박 대표 체제에 대한 비난을 노골적으로 행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약진하고 있는 이명박 시장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했다.
▲ 지난 3월6일 단식중인 전재희 의원(왼쪽)을 위로 방문한 이명박 서울시장. | ||
그렇다면 ‘이명박 신당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수투위 소속 인사들은 이 시장과의 연계성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명박 신당설’을 접하는 정가 인사들은 대부분 수투위가 그 동력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수도권 의원은 “어차피 영남 대 비영남으로 대선을 치르면 한나라당은 또 패한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이회창이란 걸출한 후보를 내고도 이기지 못했다. 지금 당이 행정수도에 찬성해도 충청권 민심을 얻기 어렵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수도권뿐”이라 밝힌다.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수도권 민심과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이 시장의 상징성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룰 경우 엄청난 파괴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투위 중심의 신당 창당은 무리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영남권의 절대적 지지 없이 여권을 상대로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는 점, 역대 대선이 대부분 1·2당 후보들의 싸움으로 귀결됐다는 점, 당을 깨고 나간 대권후보의 마지막이 좋았던 전례가 없다는 점 등에서 ‘이명박 신당’ 가능성은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시장의 한 측근의원도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 뭐 때문에 신당 같은 무리수를 두겠는가”라며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다수의 한나라당 인사들은 ‘이명박 신당설’의 현실성보다 촉발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당내 영남권파에 비해 그 세력과 영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수도권 인사들이 당지도부에 대해 전례 없을 정도로 노골적 비판을 가하는 자신감의 배경에 무엇이 있겠는가”라 지적했다. 즉, 비교적 선수가 낮은 수도권 인사들이 영남권 일색의 당지도부에 대항해 당내 입지를 강화시키는 방편으로 이명박 시장의 상징성을 택했다는 것이다.
당내 영남권 인사들은 이들이 이 시장을 방패삼아 목소리를 높이려는 이유로 내년 지방선거를 지목한다. 한나라당의 한 영남권 중진의원은 “수투위에서 수도 이전 반대투쟁을 이끌었던 대부분의 인사들이 내년 서울시장·경기도지사를 노리고 있다”고 밝힌다.
실제로 수투위 투쟁을 이끌었던 이재오 의원은 서울시장직, 김문수 의원은 경기도지사직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단식농성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전재희 의원도 이번 일을 통해 경기도지사직에 한 걸음 다가갔다는 평을 듣는다. 이들이 수도이전 반대 투쟁과 ‘이명박 효과’를 맞물려 당내 입지를 강화해 내년 지방선거 후보 경쟁을 유리하게 이끌려 한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이명박 신당설’ 효과가 금세 수그러들 것이라 평하는 시각도 있다. 최근 박근혜 대표는 “조기전대를 실시하면 출마하지 않겠다”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대선후보로 밀어주겠다”는 식의 발언을 하고 있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경우처럼 당내 지지도보다 대중적 인기가 대선후보로서의 강점이라는 것을 감안한 박 대표의 자신감이 표출된 것이며 동시에 이 시장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분명한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