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섭 기자의 연예편지 아홉 번째
지난 22일 방송된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맹기용 셰프는 ‘고기보다 맛있는 해산물 요리’이라는 주제로 박준우 기자와 맞대결을 벌였습니다. 소녀시대 써니의 냉장고를 활용한 대결이었는데 써니는 대결에 앞서 “나는 고기 마니아로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평소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기에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을 계기로 해산물과 친해지고 싶다는 써니의 바람이 녹아든 주제였습니다. 고기 마니아인 써니에게 고기보다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만들어 줘야 하니 상당히 어려운 주제입니다. 해산물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비린내를 싫어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맹기용과 박준우는 모두 ‘비린내를 완벽하게 잡아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완수하며 ‘고기보다 맛있게’ 요리를 완성해야 했습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 화면 캡쳐
결과는 맹기용의 승리였습니다. ‘맹모닝 논란’ 당시 꽁치 비린내로 고전한 맹기용이지만 이번엔 오징어의 비린내를 완벽하게 잡아내고 감칠맛까지 더한 ‘오시지’를 완성했습니다. 고기 마니아로 평소 소시지를 좋아하는 써니의 입맛까지 배려한 최고의 음식이었죠.
“맛있다. 오징어가 아닌 돼지고기 같다. 돈 주고 사먹으라고 하면 비싸게 사먹겠다.”
써니의 평이었습니다. 평소 해산물을 싫어하는 고기 마니아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평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로써 2승을 거둔 맹기용은 서서히 ‘맹모닝의 악몽’을 극복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네티즌들의 미운털은 쉽게 빠지지 않았습니다. 네티즌들은 맹기용의 오시지가 네이버 유명 요리 블로거 ‘꼬마츄츄’가 지난 2010년 1월에 공개했던 ‘수제 오징어 소세지’와 비슷하다며 표절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맹모닝의 악몽’을 힘겹게 벗어난 맹기용에게 이번엔 ‘오시지 표절 논란’이라는 또 하나의 악재가 드리우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JTBC측은 “맹기용 셰프의 레시피 도용 의혹과 관련해 레시피는 전적으로 셰프들의 몫으로 이에 대해 제작진이 의견을 내기는 어렵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사실 레시피 도용 의혹으로 촉발된 표절 논란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블로거 ‘꼬마츄츄’가 정식으로 문제제기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논란이 불거진 뒤 꼬마츄츄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두 레시피는 엄연히 다르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습니다. 이어 “갑작스럽게 5년 전 제 레시피가 비교 언급되는 부분 역시 이해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며 “셰프님 또한 이번 일로 인해 마음고생이 심하실 텐데, 격려와 함께 멀리서나마 응원을 드린다”는 말로 오히려 맹기용 셰프를 응원했습니다.
사진 출처 : 꼬마츄츄 블로그
사실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을 생각하면 표절이나 레시피 도용 문제는 그리 큰 사안이 아닙니다. 해당 프로그램은 오히려 순발력을 중시합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유명 연예인 등 셀러브리티를 게스트로 초대해 그가 실제로 집에서 사용하는 냉장고 속 재료로 요리 대결을 펼치는 프로그램입니다. 우선 두 MC를 통해 셀러브리티의 냉장고를 공개하는 형식으로 살짝 셀러브리티의 사생활, 정확히는 식생활을 공개합니다. 그리곤 셀러브리티가 제시한 두 가지 주제에 맞춰 네 명의 고정 게스트(대부분 셰프)가 주제 별로 두 명이 맞대결을 펼치고 셀러브리티가 승자를 뽑는 방식입니다. 또한 15분의 제한시간 안에 요리를 마치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결국 대결에 나서는 셰프에게 중요한 대목은 그날 공개된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제한된 식재료를 가지고 현장에서 제시된 주제에 맞춰 15분 안에 요리를 완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제한된 식재료와 요리 시간, 그리고 현장 주제에 맞춰 요리를 하는 것이 <냉장고를 부탁해>의 주요 포인트입니다.
물론 유명 셰프들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대부분 이런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멋진 요리를 만들어 냅니다. 이런 요리의 완성도가 실질적인 <냉장고를 부탁해>의 저력인 셈이죠. 이번엔 그렇게 완성돼 승리를 거둔 맹기용의 오시지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는데 사실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완성된 모든 요리가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음식은 아닙니다. 따라서 표절만 놓고 의혹을 제기한다면 맹기용의 오시지 외에도 여러 음식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껏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까닭은 제한된 재료와 현장 주제, 그리고 15분의 제한 시간 등 순발력이 더 중시되는 해당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맹기용의 오시지가 논란이 된 것은 ‘맹모닝 논란’ 이후 그에 대한 곱지 않은 네티즌들의 시선이 그 기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맹기용의 오시지 표절 논란은 더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고 말았습니다. 만약 냉장고 속 재료와 주제 등을 출연진에게 사전에 공지해줬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맹기용이 현장에서 ‘고기보다 맛있는 해산물 요리’라는 주제를 처음 접했으며 냉장고에 오징어가 있는 것을 보고 현장에서 즉석으로 ‘오시지’라는 요리를 생각해내고 15분 만에 완성했다면 그 자체로 훌륭합니다. 실제로 맹기용이 과거 ‘꼬마츄츄’의 블로그에서 해당 레시피를 봤으며 그걸 바탕으로 15분 만에 자신만의 레시피로 응용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적어도 <냉장고를 부탁해>의 취지에는 적합한 요리였다고 보입니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방송 화면 캡쳐
그런데 만약 방송 녹화를 앞두고 미리 제작진에게 냉장고 속 재료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접해 ‘오징어’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고기보다 맛있는 해산물 요리’라는 주제까지 파악한 상황이었다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이를 바탕으로 ‘오시지’를 만들 구상을 미리 해두고 연습까지 가쳐 현장에서 15분 만에 완성했다면 프로그램의 순수성에 큰 상처가 남게 됩니다. 사전에 관련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위해 ‘오시지’라는 요리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면 표절 의혹 역시 중요한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사전 정보 제공 여부는 <냉장고를 부탁해>를 둘러싼 판도라의 상자 같은 부분이었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의 저력은 현장에서 처음 접한 제한된 재료와 주제를 바탕으로 단 15분 만에 너무 완벽한 음식을 완성해 내는 것이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를 두고 의혹도 많았습니다. 그만큼 훌륭한 셰프 등 출연진이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지만 너무 완벽한 요리가 이어지면서 어느 정도의 사전 정보(냉장고 속 재료나 주제 등)를 출연진에게 제공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곤 했던 것입니다.
결국 맹기용의 오시지 논란은 표절이 중요한 대목이 아닌 사전정보 제공 여부가 핵심입니다. 그렇지만 이 부분이 무너지면 <냉장고를 부탁해>는 프로그램 존재의 당위성에 큰 상처가 남게 됩니다. 프로그램 존폐까지 거론될 만큼 민감한 사안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맹기용의 오시지 논란은 표절 의혹보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둘러싼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렸다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로 보입니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