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 조용 ‘남들’만 발끈
먼저 화제가 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영화 관람이었다. 노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를 비롯해 이병완 비서실장 등 청와대 수석·보좌관들과 함께 지난 1월21일 롯데시네마 애비뉴엘관에서 ‘왕의 남자’를 관람했다. 영화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엮어가는 상상력이 뛰어나다”는 짤막한 감상평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노 대통령의 관람 직후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이 정계의 ‘왕의 남자’ 신드롬에 불씨를 당겼다. 지난 24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왕의 남자’ 감상평을 남긴 것. 이 글에서 전 의원은 연산군과 노 대통령을 비교해 눈길을 끌었다. 비교 포인트는 크게 네 가지. ▲‘내가 왕이 맞느냐’는 연산군와 재신임을 묻는 노 대통령 ▲생모 죽음에 한을 품고 칼부림하는 연산군과 근사한 친구의 가방을 면도칼로 그어 버린 어린 시절의 노 대통령 ▲종4품으로 임명될 정도로 왕의 총애를 받은 공길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공길과 그림자놀이를 하며 손뼉 치고 좋아하는 연산군과 지지자들과 공무원의 글에 댓글 달며 신나했을 노 대통령을 대비시켰다.
이렇게 전 의원의 영화평이 화제가 되자 25일 이계진 한나라당 대변인도 자신의 블로그에 영화평을 올렸다. [‘홍녹수’의 아양에 눈 먼 노산군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 대변인은 ‘연산군→노산군’, ‘장록수→홍녹수(국정홍보처)’, ‘광대 각인→조·중·동 등 언론’으로 빗대 노무현 정부와 언론과의 관계를 성토했다.
게다가 한나라당은 당 차원에서 ‘왕의 남자’에 나오는 연산군에 빗댄 패러디 홍보물을 만들어 당원들에게 배포했다. 패러디 사진을 보면 연산군은 노 대통령, 장생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공길은 이상수 노동부 장관 내정자로 바뀌어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 최악의 개각 광대극’이라는 부제를 달아 놓았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전 의원의 영화평을 ‘대꾸할 가치도 없는 천박한 문화 비평’이라 규정한 보도 자료를 통해 “문화를 정치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정쟁의 관점으로만 해석하는 영화와 현실에 대한 몰지각한 발언은 대중문화에 대한 분명한 모독이다”라는 입장을 분명히했다.
신민섭 기자 ksim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