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조작 뺨치는 ‘흥행조작’ NG
영화사와 배급사, 극장에서 어떤 식으로 영화 흥행을 부풀리고 있는지 알아본다.
지난 1월31일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자사 사이트의 영화 코너에서 평점을 조작한 회원들을 발견해 징계 처리한다고 밝혔다. 당시 발각된 회원들은 영화 코너의 이용자 별점을 매기는 곳에서 특정 영화에는 별점 10점을 주고 경쟁작에는 1점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같은 사례를 여러 건 발견한 네이버는 조사를 의뢰한 결과 상당수의 ID가 동일한 주민등록번호란 것을 밝혀냈다.
뿐만 아니라 주민등록번호 중 앞자리는 같고 뒷자리를 조금씩 바꾸거나 주민등록번호 외의 연락처가 전혀 기재되지 않은 채 최근에 모두 신규가입해 교묘하게 위장하는 회원도 적지 않았다. 이건 누가 봐도 의도적인 행위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네이버 측은 이 ID들이 올린 평점과 평을 모두 삭제하고, 같은 일이 반복될 경우 평점과 평 올리기를 금지하는 징계를 취하기로 했다.
그런데 흔히 ‘댓글 알바’라고 불리는 이와 같은 일들이 실제로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영화 홍보를 위한 알바 동원은 영화계에서 공공연한 비밀로 행해진다. 간혹 영화사끼리 이런 일들로 마찰을 겪곤 하지만 절대 없어지지 않을 ‘홍보 수단’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떤 식으로 ‘댓글 알바’가 동원되는 것일까. 전직 영화사 직원 A씨는 이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A씨에 따르면 보통 30~40명의 인원이 두세 명씩 나뉘어 조를 짠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이 ‘각개 전투’ 식으로 각자 곳곳의 PC방에서 서로 다른 ID로 글을 올리게 된다는 것. 하지만 시간차를 두고 올리는 것이 보통이다. A씨는 “요즘에는 댓글 알바에 대한 노출이 많아졌고 단속이 심해 좀 더 교묘하게 활동중”이라고 전한다.
댓글 알바는 영화가 개봉되기 2~3주 전부터 집중적으로 이루어진다. 또 같은 ID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위조된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ID 여러 개를 번갈아가며 쓰기도 한다. 이들이 받는 수당은 보통 하루에 5만~7만원 정도. 여느 아르바이트에 비해 꽤 짭짤한 편이라 이 ‘댓글 알바’만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도 여럿 된다는 것이 A씨의 전언이다.
뿐만 아니었다. 누가 봐도 ‘동원된 알바의 소행’이라는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영화사 측은 이들에게 꽤 구체적인 가이드 라인까지 제공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영화에 대한 일방적인 칭찬보다는 좀 더 구체적인 평을 곁들이도록 한다는 것. 사전에 여러 매체나 화면을 통해 공개된 장면에 대해 언급한다든지, 혹은 출연 배우에 대한 평을 하기도 한다. 또 경쟁 영화사 측에서 동원된 알바에 의해 비방글이 올라올 경우에 대비해 이런 글이 있을 경우 어떻게 답하라는 식의 주문을 한다.
영화사 측은 이와 같은 ‘댓글 알바’ 비용도 마케팅 비용의 일부로 책정한다. 때로는 영화 홍보대행사에서 ‘알아서’ 홍보비 중의 일부를 알바비로 사용하기도 한다. 한 영화홍보사 관계자는 “모든 영화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메이저 영화의 경우 간혹 그런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고 실토했다.
배급사와 극장 측에서도 초반 영화 흥행을 부풀리려는 술수는 사용된다. 흔히 쓰는 방법이 바로 표 사재기다. 표를 대량으로 사들여 사전에 관계자들에게 뿌리는 것은 초반 관객수를 부풀리려는 의도와 함께 또 다른 큰 이유가 있다. 바로 극장 배급망을 확보하려는 것. 첫 주 흥행 성적에 따라 극장 측은 상영 시기를 결정한다. 때문에 보통 표 사재기로 극장을 확보하는 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영화 <홀리데이>의 조기종영과 재상영 사태는 이 초반 순위 싸움이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제작·배급사였던 롯데엔터테인먼트와 <투사부일체>의 제작·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의 힘겨루기가 결국 이와 같은 파문을 낳고 말았던 것. 두 영화는 1월19일 동시 개봉되는 경쟁작이었다. CJ엔터테인먼트의 계열사인 CGV는 국내 최대의 극장체인. CGV측에선 아무래도 <투사부일체>에 더 많은 상영관을 내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홀리데이> 역시 CGV에서 상영되지 못하면 초반 관객 동원에 막대한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사태는 재상영 결정으로 이어지긴 했으나 영화계의 초반 관객 확보를 둘러싼 치열한 다툼을 엿보게 하는 사례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피해를 본 것은 오로지 <홀리데이>를 보려했던 관객들이었다.
취재 도중 만난 한 극장 관계자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기도 했다. “영화가 좋아 극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간혹 이곳이 싫어질 때가 있다. 관객의 영화 선택권까지 거대 회사들에 의해 침식당하는 게 우리나라 극장의 현실이다.”
조성아 기자 zzang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