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맞서야 ‘용’ 대우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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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02년 2월 유석 조병옥 박사 기념사업전시회에서 만남 김영삼 전 대통령(오른쪽)과 이회창 전 총재가 어색하게 서로를 외면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
단임제의 또 다른 약점은 대통령이 임기 중반을 넘어서면 레임덕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더구나 차기 대권주자로 부상하려는 정치인들은 현직 대통령과의 ‘맞장’ 승부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급부상시키려고 한다.
이는 역대 정권의 예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산행’이 대표적인 승부수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000년 재선 의원으로서 정풍운동을 주도하며 ‘권노갑 죽이기’를 이끌어내 ‘전국구’로 떠오르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도 김근태의 ‘계급장 논쟁’, 고건 전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의 각료 제청권을 거부한 사례 등은 권력과의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넓힌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역대 정권에서 권력에 도전장을 내민, 용감했던 차기 주자들의 ‘투쟁’을 따라가 봤다.
역대 정권에서 차기 주자들의 행보는 주로 ‘투쟁형’에 속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같은 경우는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주군’을 공격했던 경우에 속한다.
노태우씨는 90년 3당 합당으로 여소야대의 국면에서 탈출하게 된다. 노씨는 차기 대권 후보로 내심 박태준씨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각제 합의 때문에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에게 발목을 잡히고 만다. 하지만 노씨는 기회만 있으면 언제든 대권 후보를 바꾸고 싶어했다. 그래서 노씨 진영은 김영삼 깎아내리기에 들어간다.
합당선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90년 봄부터 합당 시에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돌다가, 10월이 되자 아예 내각제 합의 각서 사본이 한 일간지에 공개되며 본격적인 YS 흠집내기에 들어갔던 것. 이에 격분한 김영삼 민자당 대표는 즉각 당무를 거부하고 마산행을 결행하고, 민주계 소장파들은 분당을 배수진으로 하여 YS에게 힘을 실어 주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YS의 이 ‘마산행’을 차기 주자의 대표적인 ‘승부수 전략’으로 본다.
이밖에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투쟁적인 차기 주자에 속한다. 그는 총리 재임 전 감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공직사회 부조리 척결 등의 개혁 이미지로 국민들에게 신망을 얻고 있었다. 이를 알고 있던 YS는 취임 1년도 안 돼 이회창씨를 총리에 전격 기용하게 된다. 하지만 YS는 ‘새끼 호랑이’를 기른 셈이 됐다.
이회창 당시 총리는 법조인 출신답게 취임하자마자 6법 전서를 앞에 놓고 “모든 것은 법대로 한다”는 기본입장에서 문제를 처리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꼬장꼬장한’ 스타일은 청와대와의 필연적인 갈등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 총리는 임명 4개월 만에 청와대로부터 ‘경질’된다. 이 총리가 대북 관계와 관련, 정부 내에 설치된 통일안보 정책조정회의 내용이 총리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에 보고되는 사례에 불만을 토로하고 법적인 논리를 편 것이 퇴임의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 총리가 끊임없이 자신의 위상을 격상하려고 한 데 대한 청와대의 반격이 숨어 있었다. 이 총리의 경질 배경에는 그의 ‘월권행위’도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김영삼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이 총리가 국방부와 일선 부대를 시찰하고 지휘관으로부터 정식보고를 받은 사실을 청와대 비서진과 여권 일각에서 곱지 않게 보았다는 것이다. 결국 이 총리는 역대 총리 경질 인사 중 본인의 사표가 청와대에 도착하기도 전에 후임 총리가 발표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하나의 태양을 거스른 자의 고달픈 정치 행보였다. 하지만 국민들의 지지도는 그에 반비례해서 커져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김대중 정권 시절 ‘정풍운동’을 주도하며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지난 2000년 12월 집권 여당 민주당은 극심한 내홍에 시달리고 있었다. 재선이었던 정동영 최고위원이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하는 최고위원 회의를 통해 당시 최고 권력 실세였던 권노갑 최고위원의 2선 후퇴를 촉구한 것이다. 당시 정 최고위원이 김 대통령과 당사자 면전에서 ‘사선(私線)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동교동계 좌장이자 자신에게 공천을 준 은인인 권 최고위원의 퇴진을 요구한 것은 충격이기에 충분했다. DJ의 오랜 측근이었던 권 최고위원은 ‘순명’이라는 말을 남기며 쓸쓸하게 역사의 뒤안길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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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고건, 추미애, 정동영, 김근태 | ||
그런데 이인제 민주당 최고위원은 당 쇄신 여파 뒤 내리막길을 걷다가 이듬해인 01년 11월에 청와대의 최고위원회의 참석을 거부하고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 YS의 마산행을 모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인제 위원은 당시 민주당 내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였지만 당내 지지기반이 갈수록 약화돼 비상 처방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그는 최고위원회의에 참석을 권유하는 청와대와 당 등으로부터의 연락을 일체 받지 않는 등 ‘낙향작전’을 썼다는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이 위원의 지방행은 하루 일정이었기 때문에 YS의 극단적인 낙향작전과는 차이점이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도 ‘잠룡’들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먼저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은 노무현 정권 들어서자마자 노 대통령에게 정면 도전해 차기 주자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추미애 의원은 당시 노 대통령의 개혁 정책에 사사건건 딴죽을 걸었다.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노 대통령과 정반대 노선을 걷는가 하면 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분열된 것과 관련해선 노 대통령을 ‘독재자’로 몰아세우며 극심한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추 의원의 노무현 때리기는 그가 민주당 수석부대표에까지 오르게 되는 발판을 제공했다.
김근태 복지부 장관도 가끔 ‘돌출 발언’으로 대권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계급장 떼고 치열하게 논쟁하자”는 발언. 김근태 당시 의원은 열린우리당이 아파트분양원가를 총선공약으로 내세웠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이 끝나자마자 자기 뜻이 아니라고 한 것에 대해 아파트 원가공개 문제에 대해 계급장(대통령직함) 떼고 한번 논쟁하자며 대통령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김 장관은 그 뒤에도 정부의 ‘뉴딜정책에 국민연금 투자 방침’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 노 대통령에게 또 한번 반기를 들었다는 비판을 들은 바 있다.
고건 전 총리도 ‘점잖게’ 노 대통령에게 ‘개긴’ 적이 있다. 고 전 총리는 퇴임 직전 3개 부처 신임장관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제청권 행사 요구를 거부해버린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노 대통령의 탄핵을 기각한 다음 날 고 전 총리가 사의를 표시했고 대통령도 그 자리에서 수락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 뒤 노 대통령이 고 총리에게 ‘차나 한잔하자’며 청와대로 부른 뒤 각료 제청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고 전 총리는 대통령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워 다음 날 노무현 정권에 우호적인 신문만을 골라 각료 제청에 반대하는 전문가의 견해를 직접 메모한 뒤 사표를 작성했다. 그리고 각료 제청은 끝까지 거부한 것이다.
고 전 총리의 이런 소신 있는 행동이 알려지자 그의 인기도 수직 상승하는 계기가 되었다. 권력을 얻기 위해 권력을 거슬러야만 정치인의 숙명은, 정글의 법칙과도 너무 닮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