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사 먹이고 빅딜도 대비 젖 짜는 ‘캐시카우’
한화그룹이 삼성과의 빅딜자금을 마련할 창구는 한화생명이라는 것이 증권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사진은 한화금융센터 전경.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수의계약으로 진행된 이 거래는 지난 6월 30일 사외이사 5명이 참석한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주)한화는 한화생명 외에 한화손해보험과도 브랜드 사용료 계약을 맺었다. 금융계열사들로부터 받는 사용료가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
이에 대해 한화생명 측은 “2년 전부터 브랜드 사용료 지급을 논의했으며 최근 법률적 검토작업이 끝나 계약을 체결한 것”이라며 “비용을 투명하게 처리하자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험업계는 지금까지 다른 계열사들에게 한 번도 받지 않던 브랜드 사용료를 한화생명 등 금융 계열사들에게 집중적으로 거둬들이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한화생명은 2년여 전 대한생명에서 한화생명으로 이름을 바꿀 때 막대한 자금을 지출했다”면서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다면 사용료도 그때부터 적용했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한화생명은 당시 탤런트 김태희를 모델로 내세운 TV광고 등을 통해 대한생명 대신 한화생명이 소비자들에게 각인되도록 각별한 노력을 쏟은 바 있다.
앞서 실시된 한화생명의 배당도 구설수에 올랐다. 대규모 현금지출을 우려한 금융감독원이 제동을 걸었음에도 (주)한화 등에 1000억 원이 넘는 배당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한화생명은 올해 1주당 180원의 현금배당을 실시했다. 지난해보다 35.9% 증가한 금액으로, 총 배당금액은 1488억 4000만 원에 달한다.
현금배당액이 크게 늘면서 배당성향도 전년의 28.16%에서 35.99%로 훌쩍 뛰어 동종업계 최고를 기록했다. 생명보험업계 부동의 1위인 삼성생명의 올해 배당성향은 30.09%에 그쳤다. 지난해는 35.66%였지만 올해의 경우 저금리로 인한 수익성 우려 등을 감안해 배당액을 조정했다. 한화생명과 업계 2위를 다투는 교보생명은 15.9%로 한화생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1500억 원에 육박하는 배당금은 누가 챙겨갔을까. 자금난에 시달리는 한화건설이 가장 많은 현금을 받아갔고, 그룹 지주사인 (주)한화 역시 또 등장한다.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한화생명의 1대주주인 한화건설은 이번 배당을 통해 389억 원을 챙겼다. 3대주주 (주)한화는 339억 원을 배당받았다. 이밖에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1520만 4166주, 1.75%)도 27억 3000만 원가량의 배당금을 받았다. 2대 주주 예금보험공사가 받은 배당금도 387억 원에 이른다.
금융당국은 한화생명의 거액 배당에 못마땅한 심경을 드러냈다. 저금리로 자산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다,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는 마당에 대규모 현금유출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자제하라”고 권고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앞으로 한화생명을 둘러싸고 더욱 큰 이벤트가 진행될 조짐이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한동안 잠잠했던 ‘한화생명 지분매각설’과 ‘자사주 매입설’에 다시 군불이 지펴지고 있다.
사실 자사주 매입과 지분 매각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가 현금을 동원해 주식시장에서 자신의 주식을 사들이는 것이고, 지분 매각은 말 그대로 주식을 파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시장에서 모순된 두 행보가 동시에 거론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화생명이 사실상 두 가지 모두를 비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우선 자사주매입의 경우 2대주주인 예금보험공사의 압박이 거세다. 대한생명 시절 공적자금을 투입한 예보는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한 뒤에도 22.75%를 보유한 2대 주주로 남아 경영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예보는 주가를 높이기 위해 대규모 자사주 매입에 나서라고 한화생명을 압박하고 있다. 곽범국 예보 사장이 직접 “한화생명은 주가에 대한 고려를 해야 한다”며 “자사주 매입, 배당률 등 요구할 부분은 요구할 것”이라고 공언할 정도다.
지분매각은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가 상승할 경우 다음 단계로 단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주가가 오르면 향후 비싼 값에 지분을 매각해 시세차익을 얻는 방법이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한화그룹이 삼성그룹과의 ‘빅딜’ 자금 마련을 위해 한화생명 지분을 팔 것이라는 관측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지분매각설에 대한 한화생명 측의 반응이다. 한화생명은 언론에서 지분매각에 관한 물음표를 제기할 때마다 “경영권 매각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단호한 입장 같지만 알고 보면 이는 “경영권만 지키는 수준에서 팔 수 있다”는 얘기와 다르지 않다. 실제로 한화그룹은 한화생명 지분매각과 관련해 한국거래소로부터 이미 수차례 조회공시를 요구받았는데, 이에 대해 한결같이 “결정된 사항이 없다”고 답했다.
기업들은 근거가 없는 사안에 대해 증권당국의 조회공시가 들어올 경우 “사실무근”이라거나 “검토한 적 없다”고 공시하는데, 이렇게 공시했다가 향후 결정을 뒤집으면 허위공시로 무거운 제재를 받게 된다. 때문에 하긴 해야 하는데 아직 공개하기에는 이른 사안일 경우 “결정된 사항이 없다”며 즉답을 피한다. 이 때문에 시장은 이를 사실상 “곧 실행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결국 한화그룹은 한화생명 지분매각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남은 관심사는 지분매각으로 확보된 막대한 현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다. 회사 측은 극구부인 하지만, 시장에서는 한화생명이 현금배당 등을 통해 대주주인 (주)한화 등을 지원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증권사에서는 “한화는 M&A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현금 배당 능력이 가장 좋은 자회사인 한화생명으로부터 배당금을 많이 받아야 할 것”이라는 리포트가 나오기도 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한화그룹은 한화생명을 빼면 돈 버는 계열사가 많지 않다. 회사 측은 태양광사업 등을 열심히 홍보하고 있지만 수익성을 확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당장 삼성과의 빅딜자금을 마련할 창구는 한화생명이라는 것이 증권가의 시각”이라고 전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