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환갑’ 맞이 특별이벤트 성사될까
2007년 3월 16일 참여정부의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취임 인사차 서울 상도동 김영삼 전 대통령을 방문해 악수를 나누고 있는 모습. 문재인 대표의 DJ·YS 세력 껴안기 플랜이 적중한다면 적어도 호남발 신당의 명분은 좁아진다. 연합뉴스
명분과 실익은 다 갖췄다. 명분은 동서 화합을 통한 ‘국민대통합’이다. 영·호남 민주화 세력의 만남을 통해 분열의 시대를 끝내자는 것이다. ‘부마항쟁의 요체’ 부산·경남과 ‘민주화의 심장’ 광주·전남의 대통합인 셈이다.
실익은 ‘외연 확장’이다. 중도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으로 양분된 민주화 세력을 통합한다면 정국은 ‘민주 대 반(反)민주’ 구도로 재편될 수 있다. 1987년 6월 항쟁의 촉진제 역할을 했던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세력이 한데 모일 경우 차기 총·대선에서 ‘51 대 49’ 싸움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문 대표의 동진정책이 2012년 총선 직전 정세균 새정치연합 의원이 제안한 ‘남부민주벨트의 제2버전’으로 불리는 이유다.
“오랜 기간 준비했다.” 친노(친노무현)계 인사가 문 대표의 YS 세력 껴안기 전략과 관련해 던진 말이다. 실제 그랬다. 새정치연합 창당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장인 전병헌 최고위원은 지난 4월 서울 모처에서 YS 차남 김현철 전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만났다. 전 최고위원은 대표적인 정세균계로 꼽힌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지난 2월 문 대표가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국민대통합’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받아들였다. 전 최고위원은 이 자리에서 야당 60주년 역사 재조명 작업에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러한 기류에 당초 김 전 부소장은 긍정적 반응을 보였지만 4월 재보선에서 친노가 참패하자 한 발 물러선 것으로 전해진다.
야권 내부기류는 뚜렷이 갈렸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정치의 상수로 자리매김한 상황에서 박정희 군부독재에 저항한 DJ·YS 세력이 힘을 합쳐 ‘범보수 대 범진보’ 구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현실론’부터, 야권 지지층의 와해를 초래할 것이란 ‘한계론’이 터져 나왔다. 찬성론자들 핵심은 ‘기울어진 운동장’ 담론이다. 보수가 압도하는 한국 정치의 특성상 2012년 총·대선에 버금가는 빅텐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다. 새정치연합의 인사는 “2012년 대선에서 범야권이 대동단결했지만, 결국 49%의 벽을 넘지 못했다”며 “여기에 부산·경남의 YS 세력까지 함께한다면, 셈법상 우리에게 유리한 것은 맞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YS계가 아니었느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결국 총·대선 필승 전략은 세력 통합밖에 없다. 기울어진 운동장 탓에 여론 지형도 불리하고, 세대 분포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최근 남북 고위급 회담으로 이슈 주도권까지 놓친 형국”이라며 “우리가 새누리당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문재인’이라는 인물 구도와 범보수에 맞서는 세력 규합”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4·29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문 대표의 차기 대선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지만, 인물 구도에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등 여권의 대권잠룡보다 비교우위에 있다는 자신감으로 읽힌다.
실제 역대 대선 결과를 보면 인물 구도에서 앞선 경우 지지층에 반하는 정치행보를 하더라도 지지층 이탈은 거의 없었다. YS가 주도한 3당 합당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때도 그랬다.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복지 담론을 들고 중도로 외연 확장에 나섰지만, 범보수층은 이탈하지 않았다. 인물 구도에서 우위를 보일 경우 지지층 이탈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분석과 맥을 같이하는 지점이다.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 김대중 민추협 공동의장이 1987년 7월 11일 사면복권 후 첫 공식회동에서 5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영·호남 복원 작업으로 당의 원심력을 억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문 대표의 승부수에 한몫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현재 새정치연합 내부에선 박주선 의원을 비롯해 구민주계 신당그룹 등이 당의 원심력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문 대표의 ‘DJ·YS 세력 껴안기 플랜’이 적중한다면, 적어도 호남발 신당의 명분은 좁아진다. 여기에 야권발 신당의 핵심 변수인 천정배(무소속 의원) 신당 역시 동력 약화가 불가피하다. 문 대표가 영·호남 끌어안기 의지를 피력하는 것만으로도 소위 ‘남는 장사’에 해당한다는 얘기다. ‘DJ·YS’ 세력 껴안기 플랜이 문 대표의 꽃놀이패라는 분석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문제는 ‘역풍’이다. 호남의 약한 고리를 안고 있는 문재인호가 섣불리 ‘영남 끌어안기’를 시도할 경우 영·호남 민심이 엇박자를 낼 수 있는 이유에서다. 특히 야권의 핵심 지지층인 호남 민심을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산토끼(비지지층)를 잡으려다가 집토끼(지지층)를 잃을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인 한국갤럽의 셋째 주 정례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7%) 결과에 따르면 새정치연합 호남 지지율은 32%에 불과했다. 새누리당은 12%, 정의당은 9%였으며, 무당층은 무려 47%였다. 호남 유권자 2명 중 1명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셈이다. 전체 지지율은 새누리당 40%, 새정치연합 24%, 정의당 5%, 무당층 31%였다. 야권 대선 전략과 상충한다는 딜레마도 있다. 통상 야권은 진보층에서 출발해 중도층을 공략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하지만 문재인호의 YS 세력 껴안기는 ‘중도층 선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486그룹 관계자는 “야권 지지층조차 투표장으로 불러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도보수층을 먼저 공략하는 것은 전략적 오판”이라고 했다. 비노계 관계자도 “1987년 야당 분열 역사 이후 DJ계와 YS계는 흩어져 ‘각자도생’했다”며 “지금 영·호남 세력을 복원한다고 한들, 어느 세력이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겠느냐. 문 대표가 동교동계냐, 상도동계냐. 자신의 대권을 위한 정치 공학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친노계 한 관계자는 “야당 역사 복원 작업을 공학적인 눈으로 보지 말아 달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YS계 끌어안기는 1955년 신익희 선생과 조병옥 박사에서 출발한 야당 역사의 복원 작업 중 하나에 불과하지, 전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일련의 과정을 통해 외연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만은 부인하지 않았다.
문재인호는 금명간 김 전 부소장과 YS계 핵심 김덕룡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에게 창당 6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으로 동참해 달라고 공식 요청할 예정이다. 그러나 김 전 부소장은 학계 등이 ‘주도’하고 야당이 ‘참여’하는 형식을 원하고 있는 상황으로 알려져 있어 다소의 입장 차가 감지된다. 결국은 새로운 도전에 나선 문 대표가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