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가는’ 먹잇감에 ‘공룡들’ 몰려드네
이달 중순 본입찰을 진행할 예정인 동부익스프레스 매각은 현재 CJ대한통운과 신세계그룹, 현대백화점그룹 3곳의 전략적투자자(SI)와 사모펀드(PEF)인 한앤컴퍼니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중 한앤컴퍼니는 데이터룸 실사 결과 동부익스프레스가 동부그룹의 의존도가 높고 수익성 하락 등의 이유로 본입찰 참여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앤컴퍼니마저 발을 빼면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은 유통 대기업 간 경쟁으로 좁혀진다.
하반기 최고 빅딜로 꼽혔던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 열기가 식어가는 가운데 CJ대한통운·신세계·현대백화점이 경쟁 중이다.
동부익스프레스는 지난해 5월 동부그룹 구조조정 과정에서 M&A시장에 나왔다. KTB PE와 큐캐피탈은 동부그룹이 경영권을 유지·우선하는 조건으로 지분 100%를 310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그러나 우선매수권을 보유한 동부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경영권을 상실했다. 이에 KTB PE와 큐캐피탈은 동부익스프레스 매각 작업을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이다.
CJ대한통운은 2020년까지 5조 원을 투자해 매출 25조 원의 글로벌 5위권 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덩치를 키우기 위해서는 동부익스프레스 인수가 필요하다.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의 의지도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의 경우 온라인몰 급성장으로 택배시장이 커지면서 물류 비용을 줄이기 위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이마트가 온라인몰 전용센터를 만드는 등 상품 배송에 대한 요구가 커져 물류사를 확보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노림수로 풀이된다.
신세계는 2006년 그룹의 물류를 담당할 신세계드림익스프레스를 설립했지만 본사와 영업소 사이의 마찰 등으로 지분 100%를 한진그룹에 매각한 바 있다. 물류사를 설립해 실패한 경험이 있어 아예 물류사를 인수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몰 확대로 택배업무가 중요해지면서 유통업계는 물류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신세계가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 뛰어든 표면적 이유는 물류사 확보지만 그 속에는 동부익스프레스가 보유한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11.11%가 자리잡고 있다. 신세계는 현재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 48.29%를 보유하고 있다.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면 신세계그룹은 안정적인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지분 50% 이상을 확보할 수 있다. 신세계는 지난해 10월 한일고속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 9.55%를 930억 원에 사들이는 등 지분을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신세계가 서울고속터미널 지분 확보에 신경 쓰는 데에는 롯데그룹을 견제하려는 측면도 있다. 롯데그룹이 제2롯데월드 건설 등으로 잠실을 ‘롯데타운’으로 만들면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서울고속터미널을 ‘신세계타운’으로 꾸밀 필요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이미 이명희 회장의 30년 숙원사업이었던 명동 신세계타운 조성에는 마침표를 찍은 상황이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옆에 있는 옛 제일은행 본점 건물을 850억 원에 인수했으며 인근에 짓고 있는 비즈니스호텔도 위탁운영할 예정이다.
강북 신세계타운에 이어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 강남 신세계타운을 구성하면 명동과 강남에서 롯데와 경쟁하는 데 뒤처지지 않을 수 있다. 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이 내년에 증축을 완료할 예정이어서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면 강남 신세계타운 조성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명희 회장이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 큰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강남에 신세계타운을 만들기 위해서는 동부익스프레스가 가진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지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수 ‘실탄’은 충분하다. 신세계와 이마트는 지난 5월 보유 중이던 삼성생명 주식 600만 주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했다. 신세계와 이마트가 각각 300만 주씩을 6552억 원에 매각했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예비입찰에서는 경쟁자가 많아 흥행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나니 동부익스프레스에 대한 매력을 느끼지 못해 몇몇 후보는 포기했다”며 “그러나 CJ대한통운과 신세계, 현대백화점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본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현대백화점은 동부익스프레스가 가진 물류회사로서 매력에 주목하고 있다. 자체 물류 배달 외에 소셜커머스와 홈쇼핑 규모가 커지면서 물류사에 대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범현대가인 현대로지스틱스에 택배업무를 위탁했던 현대백화점은 롯데가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하면서 새로운 물류사 확보가 절실하다.
경쟁사인 롯데그룹이 현대로지스틱스를 인수한 상황에서 계속 이용하면 현대백화점의 주 고객층 등 영업기밀이 빠져나갈 수 있는 리스크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현대상선이 운영하던 현대로지스틱스를 특수목적회사를 통해 인수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자체 물류사 부재로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등을 이용해 물건을 배송하고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현대백화점과 현대홈쇼핑, 한섬, 현대리바트 등 그룹 계열사들은 연간 1000억 원가량의 물류 비용을 쓰고 있다. 동부익스프레스를 인수하면 물류 비용을 줄일 수 있고 새로운 성장동력도 확보할 수 있다.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몰이 커지면서 택배업무도 유통업체에 중요한 부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신세계와 현대백화점이 동부익스프레스 인수전에 참여하는 등 물류사 확보에 열을 올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동부익스프레스는 한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매각가격이 1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일부 인수 후보들이 포기하면서 열기가 사그라졌다. 그러나 CJ대한통운과 신세계, 현대백화점 등 대기업들이 여전히 관심을 보이고 있어 매각 가격이 최소 7000억 원 이상에서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진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