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레드카펫에 ‘특별한 별들’이 떴다! “아름다운 밤이에요~”
지난 1일부터 이틀간 제주 서귀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회 신스틸러 페스티벌’. 영화와 드라마를 종횡무진하며 주연배우 이상의 역할을 해내는 국내 최고 ‘신스틸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행사가 끝난 후 이어진 뒤풀이 현장에서도 열기는 계속 되었다.
신스틸러(Scene Stealer)는 ‘장면을 훔치는 배우’라는 뜻으로 영화와 드라마 등에서 훌륭한 연기력과 독특한 개성으로 장면을 압도한 배우를 부르는 표현이다. 주연급 스타는 아니지만 다양한 작품을 통해 대중과 만나면서 더욱 친근한 느낌을 주는 배우들이다.
신스틸러 배우들 가운데에는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것이 처음인 이들이 상당수였고 레드카펫 행사조차 처음인 이들도 있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의 중추임에도 주연 배우들의 스타성에 밀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들이 이날만큼은 주인공이었다. 그만큼 이들의 수상 소감도 남달랐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상을 처음 받아본다. 제가 이렇게 드레스 입은 모습을 보니 마음이 벌렁벌렁하다.” (황석정)
“상금 없는 시상 거부하겠다. 이번 우리들의 희생으로 내년부터는 상금 있는 시상식, 뒤풀이가 더욱 더 풍성한 시상식이 됐으면 좋겠다.” (박철민)
“장면을 훔치기보다 팬들의 시선과 감정을 훔치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 (정만식)
“오늘처럼 예쁘다는 얘기 많이 들은 날은 처음인 것 같다.” (이미도)
“시상식에 와서 오늘처럼 외모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은 적은 처음이다. 평등하고 평준화된 시상식 참 아름답다.” (이재용)
공로상을 받은 남포동
뒤풀이 초반, 배우들은 각자의 스태프들과 함께 테이블에 앉았다. 평소 친분이 두터운 배우들이 두세 명씩 한 테이블에서 어울리기도 했지만 초반 분위기는 다소 어색했다. 연극배우 출신이 많아 서로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배우들도 있지만 함께 작품 활동을 하지 않아 서로 잘 모르는 배우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술자리가 이어지다 기념으로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배우들이 모이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박철민은 셀카로 20여 명의 단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며 대단한 시도를 하기도 했다.
단체 사진 촬영이 끝난 뒤 신스틸러 배우들과 남포동, 윤제균 감독 등이 모두 한 테이블에 모여 건배를 하는 등 술자리 분위기를 띄웠다. 그렇게 이들은 제주도 푸른 밤에 하나가 됐다. 오랜 인연으로 옛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며 첫 인연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었다.
윤제균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김)정태가 만식이라고 얘기해 깜짝 놀랐다”며 “만식이가 더 형 아니냐?”고 물었다. 그렇지만 73년생인 김정태가 74년생인 정만식보다 나이가 많다. 이에 윤 감독은 “배우들 가운데 정만식과 고창석은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조심스럽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윤 감독은 69년생이고 고창석은 70년생이다.
나이와 관련된 얘기에선 65년생인 김뢰하의 한 마디도 눈길을 끌었다. 남포동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떠나자 모든 배우들이 따라 나와 인사를 했다. 남포동이 떠나자 김뢰하는 “남포동 선생님은 내가 태어난 해에 데뷔하셔서 지금까지 활동하신다. 참 대단하시다”며 대선배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했다. 44년생인 남포동은 1965년 영화 <나도 연애할 수 있다>로 데뷔했다.
60년대 생과 70년대 생이 대부분인 가운데 50년대 생으로 최고참인 장광과 기주봉도 후배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다. 술자리가 끝날 즈음 한 중년 여성이 배우들에게 숙취 해소 음료를 나눠줘 눈길을 끌었는데 그는 바로 기주봉의 부인이었다. 조용한 내조가 돋보이는 풍경이었다.
이날 시상식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배우는 “제주 서귀포가 고향인 서귀포의 아들 박철민”이라고 소개한 박철민이다. 이어 “죄송하다. 큰 박수 받으려고 거짓말했다. 사실 전라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죽을 때는 꼭 서귀포에서 죽겠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뒤풀이 도중에 기자를 만난 박철민은 “이런 페스티벌은 세계 최초다. 그만큼 의미가 남다른 행사”라며 “좋은 의미를 가진 행사인 만큼 좋은 기사 부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우들은 술잔을 주고받으며 이번 신스틸러 페스티벌의 남다른 의미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새벽 1시를 즈음해 뒤풀이가 끝났다. 아쉽게 이미 인근의 술집들은 대부분 문을 닫아 장소를 옮겨 술자리를 이어가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끝내 아쉬움이 남았는지 장광, 황석정 등 일부 배우들은 스태프들과 함께 편의점으로 술을 사러 가기도 했다.
가장 눈길을 끈 배우는 진경이다. 뒤풀이가 끝나자 숙소인 호텔 앞 벤치에서 동행한 스태프들과 함께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것. 늦은 밤 길거리에서 여배우가 벌인 노상 와인 파티였는데 나중에 김뢰하, 이철민 등의 배우들이 합석해 제주도 푸른 밤의 정취를 더했다.
제주=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